- 탈선·비행 등 공격적 모습서 여기저기 '아픈 우울증'까지
- 연령·성별 등 따라 양상 다양, 미취업자 등 범위도 넓어져
- 강한 의지만으로 치유 불가…약물·정신치료 병행해야

30대 후반의 주부 윤모 씨. 전업주부인 그는 남편과 아이들이 없는 낮시간에 집안 일을 하다가 가끔씩 의기소침해지는 기분을 느낀다. 별다른 이유없이 짜증이 나면서 넋을 놓은 상태에서 한참을 보낸다. 이럴 때는 이웃의 방문이나 친한 친구의 전화도 받기가 싫다. 멋 모르고 퇴근한 남편과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은 느닷없이 윤 씨의 화풀이 대상이 되기도 한다. 주위의 권유로 어렵사리 병원을 찾은 윤 씨는 우울증이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았다.

■우울증도 질환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우울증은 심각한 질환에 속한다. 따라서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치료를 받아야 한다.

'마음의 감기'. 우울증을 수식하는 또 다른 표현이다. 문장에서 짐작되듯이 우울증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사소한 것'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일순 그럴듯하게 들린다. 사람들은 일상생활을 하면서 수없이 우울한 기분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런 감정들을 다 질환이라 여긴다면 세상에 건강한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된다. 또 자신의 의지가 강하다면 우울증은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것이라 믿는다.

반면 전문의들은 이에 대해 고개를 젓는다. 더 나아가 환자를 자살로 이끌 수도 있는 중대한 병이 우울증이라고 단호한 정의를 내린다. 일상에서 느끼는 우울한 감정과 병적인 우울증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우울증의 의학적인 공식 진단명은 '주요 우울장애'다. 병적인 우울증의 두드러진 증상은 ▷슬프거나 의기소침하다 못해 잠을 잘 못잔다 ▷밥맛이 없고, 자신감도 없다 ▷사람을 만나기 싫고 만사가 귀찮아 아무 것도 하기 싫다 등이다. 병원에서는 이런 감정의 기복이 나타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상담(진단 기준 표물 참조)을 한 뒤 우울증 여부를 판단한다.

그러나 전문의의 진단이 있음에도 대부분의 우울증 환자들은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흔히 생각하는 전형적인 증상 외에도 우울증은 다양한 형태로 표시되는 까닭이다. 원인과 지속기간, 연령대, 성별, 문화적 요인 등에 따라 우울증은 아주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무기력하고 정신을 놓고 있는 모습만이 우울증의 전부는 아니다. 때로는 우울한 감정보다는 짜증이나 탈선, 비행 등 공격적인 모습을 드러나기도 한다. 어떤 때는 잠시도 가만히 못있고 안절부절 못하는 경우도 있다. 두통, 소화불량, 가슴부위 답답함 등 온 몸의 여기저기가 아픈 우울증도 존재한다.

우울증은 평생 유병률이 15%에 이를 정도로 성인에게 아주 흔한 정신과적 질환이다. 성별로는 여성이 남성에 비해 우울증을 앓는 확률이 배가량 높다. 왜 그런지에 대한 뚜렷한 정답은 없으나 남녀 호르몬 차이. 출산, 정신사회적 스트레스, 학습된 무력감 등이 원인인 것으로 의학계에서는 추정하고 있다. 또 여성들에게 많은 희생을 강요하는 우리나라의 결혼문화나 고부 및 부부갈등 등도 우울증 발생에 관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으로 인해 30대 중반에서 40대 중반의 기혼 여성에게 나타나는 우을증을 '주부 우울증'이라고도 부른다.

■의지만으로 치료되지 않는다

화병과 명절증후군 등도 여성 우울증의 양상이다. 몸에서 열이 나고 가슴 속에 덩어리가 있는 듯 하며 가슴이 답답한 것 등이 화병의 전형적인 증상이다. 화병이 있으면 우울하고 불안하며 매사에 비관적인 성격으로 변하게 된다. 끊임없는 하소연을 하며, 가만히 있지 못하고 어디론가 뛰쳐나가고 싶어하는 행동이 동반된다. 주로 중년 이후의 여성과 사회경제적 수준이 낮은 계층에서 많이 발생한다.

명절증후군 증상은 어지럼증이나 두통, 요통, 소화불량, 복통 등의 애매한 신체이상으로 대표된다. 심하면 손발마비나 가슴 답답함 등이 이어진다. 소심하고 예민한 성격의 주부들에게 많이 나타나는데 명절 등 시댁과 관련있는 큰 행사를 앞두고 주로 발생한다. 최근에는 주부 뿐 아니라 남편, 미취업자, 미혼자, 시어머니, 친정어머니 등으로 그 범위가 점차 넓어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우울증은 스스로 이겨내겠다는 의지만으로는 해결이 힘들다. 따라서 강한 정신력을 가져라는 주위의 조언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이 질환 치료의 기본은 약물을 사용하는 것이다. 2~3주 이상 복용하면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4~6주 정도가 지나면 상태가 눈에 띄게 좋아진다. 그러나 증상이 호전되었다고 하더라도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6개월가량 꾸준히 약물치료를 해야 한다. 우울증 치료에 있어 약물에 의한 부작용은 거의 없다. 약물 치료와 더불어 정신 치료도 우울증 해소에 중요하다. 질환을 앓게 될 당시의 내적 갈등이나 주변 상황의 문제들을 해결해야만 완치를 바라볼 수 있다.

우울증을 없애는데는 가족 등 주위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환자에게 우울증도 질환이라는 점을 알려 정확한 진단과 적절한 치료를 받게 하는 것이 좋다. 또 환자를 따돌리지 말고 많은 이야기를 들어주되 농담이라도 자살이나 죽음 등에 관한 말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

도움말=신수미 좋은문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

우울증 진단 1) 거의 매일, 하루종일 우울한 기분이 지속된다. 2) 거의 모든 일상적인 활동에 대해 흥미나 즐거움이 현저히 저하된다 3) 체중조절을 하지 않는데도 현저한 체중감소나 체중증가가 있다. 4) 거의 매일 불면이나 과다 수면을 보인다. 5) 거의 매일 초조나 운동지체를 보인다. 6) 거의 매일 피로감을 느끼거나 활력을 상실한다. 7) 거의 매일 자신이 가치가 없다고 느끼거나 그럴만한 일이 아닌데도 심한 죄책감을 느낀다. 8) 거의 매일 사고와 집중력의 감소 또는 우유부단함을 보인다. 9) 죽음에 대해 반복적으로 생각한다. ※ 위의 9개 증상 가운데 5개 이상을 2주 이상 연속적으로 보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직업적으로 심각한 고통이나 장애를 일으키면 　 우울증으로 진단. 단 5개 가운데 1) 또는 2)는 반드시 포함되어야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