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자 부산 수영구 민락동 수변공원에 밤마다 더위를 피해 나온 사람들로 붐빈다.

'가진 거라곤 뜨거운 가슴뿐인가/흔한 기교도 없이/그가 덮쳐왔다네//침실은 허락도 없이 젖어버렸고/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어//그토록 뜨겁게 안아주는 이/나에게 있었던가//꾸벅꾸벅 졸던 그가/한낮을 서산에 버리고/또다시 내게 달려오면//그러면 나는/닫힌 문 활짝 열고/속옷차림으로 반겨야겠네'(김호삼의 시 '열대야')

부산 동래구 온천천 인공폭포에서 어린이들이 물놀이를 하며 여름밤을 보내고 있다.

그렇다. 열대야는 우리를 '뜨겁게 안아주는 이'다. 지금 밤마다 기승을 부리고 있는 열대야는 여름의 불청객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어차피 이 여름이면 맞닥뜨려야 할 손님이 아닌가. 그저 받아들이자.

그런가 보다. 열대야를 육감적으로 표현한 김호삼 시인의 재치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열대야를 이 시처럼 '속옷차림으로 반겨야겠네'. 하지만 웃음으로 반길 정도가 아니다. 불면의 고통을 안겨주는 열대야는 여름철 짜증의 대명사일 수밖에 없다.

낮에는 찌는 듯한 폭염. 또 밤에는 열대야가 이어진다. 그래서 잠 못 이루는 밤이 더욱 얄밉다. 도심의 열대야 현상은 심각한 수준이다. 밤에도 식지 않은 아스팔트의 열기와 낮 시간대 후끈 데워진 건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잔열. 이 도시의 더운 공기는 밤 동안에도 제대로 식지 않는다. 아니 머물면서 도시 외곽지역보다 훨씬 더 높은 기온을 유지한다.

이처럼 열대야는 계속된다. 선풍기나 에어컨 등을 동원해 한밤의 무더위를 쫓으려다 잠을 이루지 못한 시민들이 많다. 그들은 결국 시원한 한줄기 바람이라도 찾기 위해 집안 탈출에 나선다.

잠 못 드는 여름밤 시민들이 부산 수영구 민락동 수변공원에서 오순도순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해운대를 비롯해 광안리, 송도, 다대포 등 부산의 유명 해수욕장 백사장마다 밤 더위를 식히려는 사람들로 몰린다. 어디 해수욕장 백사장뿐이겠는가. 수영구 민락동 수변공원 과 온천천, 수영강변에도 한여름밤 잠 못 드는 사람들이 가족 친구들과 함께 돗자리를 펴고 시원한 밤바람에 몸을 맡긴다. 그들은 집안을 탈출해 밤 더위를 식히고 있는 것이다.

그랬다. 여름 밤에는 부산 앞바다를 따라 사람들로 북적인다. 집안 더위를 못이겨 한데서 잠을 자기 위한 시민들이다. 또 있다. 밤을 잊고 운동에 전념하는 시민들을 말한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은 여름 밤이 즐겁다. 부산 기장군 해안에서부터 다대포해수욕장에 이르기까지 해안선을 따라 밤마다 그렇게 사람들로 붐빈다. 특별한 이벤트가 없어도 사람들로 북적이는 바닷가라면 무더위쯤은 잠시 잊을 수 있는 게 이 시점의 여름나기가 아닐까.

가만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 열대야 시즌에는 부산에 사는 것이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부산사람들에게는 밤 더위를 식히는 바다가 가까이 있으니까.

시민들이 부산 서구 송도해수욕장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부산 해운대구 마린시티 앞에서 시민들이 밤낚시를 즐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