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교내 체육대회는 늘 친구들의 웃음소리와 함께였다. 지루하기만 하던 수업 대신 운동장에서 하루 종일 뛰놀 수 있어 나를 포함한 아이들은 무척 즐거웠다. 그러나 개·폐회식만은 예외였다. 교감·교장 선생님의 일방적인 훈화 말씀은 우리의 놀이터에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최근 한 체육대회에서 또 한 번 ‘어른’들의 말씀을 일방적으로 들을 수 있었다. 지난 17일 경남 김해에서 열린 ‘제105회 전국체육대회 폐회식’에서였다. 오후 6시부터 1시간가량 진행된 폐회식에서 체육대회의 주역인 젊은 선수들의 참여도는 사실상 ‘제로’에 가까웠다.
종합 시상식에서 입상에 성공한 지자체의 수상자는 모두 언뜻 보아도 만 60세 이상의 각 시체육회 회장과 단장이었다. 만 18세 이상 고등부 시상식에서도 선수 대신 교육청 관계자가 나와 트로피를 들고 관중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전년도 성적 기준 올해 경기 성적이 가장 많이 향상된 시·도에 수여하는 성취상과 대회 기간 가장 모범이 된 시·도에 부여하는 모범상 역시 수상자는 이름 뒤 ‘회장’과 ‘부장’이 붙었다.
딱 한 번 선수가 단상에 오를 기회가 있었다. 최우수선수상(MVP)에 오른 서울선수단 소속이자 한국 여자양궁의 ‘간판’ 임시현이었다. 임시현은 이 대회에서 4관왕을 차지했다. 다만 임시현은 월드컵 파이널 대회 참가를 위해 멕시코로 떠나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고, 서울시체육회 관계자가 대리 수상했다.
이후로는 선수 참여는 제로였다. 박완수 경남도지사를 비롯한 김오영 경남체육회장, 박종훈 경남교육감, 홍태용 김해시장에 대한 감사패 수여를 시작으로 일장 연설이 이어졌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의 폐회사가 끝나자 박 도지사와 홍 시장의 환송사가 시작됐고, 그렇게 폐회가 선언됐다.
그들은 연설 중간중간에 “선수”라는 단어를 내뱉었으나, 정작 그 ‘선수’들은 딱딱한 행사에 지쳐 고개를 숙인 채 휴대폰 화면만 쳐다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온은 낮아져 선수들은 추위에 떨기도 했다. 이에 하나둘씩 준비된 담요를 어깨나 무릎에 둘러 체온을 높이려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주최 측은 폐회식이 시작되기 전 관객석 아래에 담요와 초코 과자가 포함된 선물 꾸러미를 준비했는데, ‘어른들의 행사’가 길어질 수 있으니, 담요를 덮고 초코과자로 당을 채우라는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가장 큰 함성이 들린 것은 불꽃놀이 때였다. 1분 내외의 짧은 폭죽이 터지자, 그제야 선수들은 하늘로 휴대폰을 들어 동영상 찍기에 분주했다. 어린 선수들 입에선 “진작 이런 거나 하지”라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내년도 전국체전은 무려 25년 만에 부산에서 열린다. 경남으로부터 대회기를 받는 부산은 체면을 살리기 위해 이날 행사에 임원 및 선수 200여 명을 동원했다고 한다. 부산에서 열릴 내년 전국체전에서도 올해와 마찬가지로 구시대적 모습이 재연될 지 벌써부터 걱정된다. 각종 이유를 불문하고 전국체전은 선수가 주역이 돼야 마땅하다.
백창훈 스포츠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