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난과 인종차별 극복해 감동
- 바이든 대통령 “美 영웅” 추모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전설의 홈런왕 헨리 행크 에런이 지난 22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8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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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4년 4월 4일 경기에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소속 행크 에런이 베이브 루스의 역대 최다 홈런(714개) 기록과 타이를 이룬 뒤 트로피를 받고 있다. 에런은 나흘 뒤 개인 통산 715번째 홈런을 쳐 루스의 홈런왕 기록을 깼다. AP 연합뉴스 |
그가 평생을 바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구단은 에런이 “평화롭게 영면에 들었다”고 밝혔다. 정확한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1954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1976년까지 선수로 뛴 그는 야구 역사상 최고의 타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에런은 3298경기에 출전해 1만2364타수 3771안타(타율 0.305), 755홈런, 2297타점, 240도루를 기록했다. 23시즌을 뛰는 동안 24차례나 올스타(1959~1962년은 한 시즌 2차례 선발)에 뽑힐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특히 그가 베이브 루스(714개)를 넘어 쓴 개인 통산 755개의 홈런 기록은 2007년 배리 본즈(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762개)에 의해 깨졌으나, 약물 스캔들에 휘말린 본즈보다 에런을 여전히 ‘진짜 홈런왕’이라고 여기는 팬이 많다. 홈런 기록은 깨졌지만 에런이 세운 통산 최다 타점 등 기록은 아직도 그대로다. 통산 안타도 3위다.
1934년 앨라배마주 모빌의 가난한 흑인 가정에서 8남매 중 한 명으로 태어난 에런은 야구 장비를 사지 못해 막대기와 병마개로 혼자 타격 연습을 하며 야구 선수의 꿈을 키웠다. 니그로리그의 마이너리그 구단을 거쳐 1952년 당시 보스턴 브레이브스와 계약한 그는 소속팀이 연고지를 밀워키로 옮긴 직후인 1954년 스무 살의 나이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이듬해 처음 올스타에 선정된 에런은 1956년 내셔널리그(NL) 타격왕, 1957년 최우수선수(MVP) 타이틀을 각각 거머쥐었다. 1957년에는 월드시리즈에서 뉴욕 양키스를 격파하고 우승했다.
메이저리그 사상 최초로 500홈런과 3000안타를 동시 달성하고, 8시즌 40홈런 이상을 치면서 승승장구했지만 에런은 백인들의 우상인 루스의 통산 홈런 기록에 근접하자 극심한 인종차별 모욕과 협박에 시달렸다. 루스의 통산 홈런 기록에 1개 모자란 채로 1974년 정규시즌을 시작하려던 그에게 “은퇴하거나 아니면 죽어버려” 등의 협박 편지가 쇄도했다. 연방우체국에 따르면 에런은 100만 통에 가까운 편지를 받았다고 한다. 이런 그가 1974년 4월 8일 루스의 기록을 넘어 통산 715번째 홈런을 치자 백인 남성들이 그라운드에 난입, 집에서 TV 중계를 보던 가족이 공포에 질린 것은 유명한 일화다. 다행히 이들은 에런의 기록을 축하하려는 팬들이었다. 1975년 밀워키 브루어스로 트레이드된 에런은 두 시즌을 더 뛰고 23년에 걸친 메이저리그 경력을 마무리했다.
그는 1966년 브레이브스가 애틀랜타로 홈구장을 이전한 것을 계기로 흑인 인권운동에도 눈을 떴다. 당시 애틀랜타는 마틴 루서 킹 목사 등이 활동하던 인권운동의 핵심지였다. 은퇴 후에도 인종차별 철폐를 위해 목소리를 냈다. 1982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에런은 2002년 대통령 ‘자유의 메달’을 수상했다. 미국의 복싱 전설 무하마드 알리가 생전에 “나 자신보다 더 존경하는 유일한 사람”으로 에런을 꼽은 것은 그의 위상을 잘 말해준다. 한국과의 인연도 새삼 화제다. 그는 1982년 한국프로야구 창설을 축하하고자 처음 한국에 왔고, 그해 10월에는 애틀랜타 산하 마이너리그팀을 이끌고 다시 한국을 찾아 삼성, OB 베어스 등과 7차례 친선경기를 했다.
가난과 인종차별을 극복한 ‘진짜 홈런왕’ 행크 에런의 부고가 전해지자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애도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3일 SNS를 통해 “에런이 베이스를 돌 때, (야구) 기록만 좇지 않았다. 에런은 편견의 벽을 깨는 게 우리가 하나의 국가로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려줬다. 에런은 미국의 영웅이었다”며 추모글을 올렸다. 에런의 홈런 기록을 깬 본즈는 “경기장 안팎에서 에런은 매우 존경할 만한 분이었다. 그는 상징이자 전설, 진정한 영웅이었다”며 “에런, 당신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모든 것을 잊지 않겠다. 당신은 선구자였고, 선례를 남겼다. 아프리칸 아메리칸 선수들은 당신을 롤모델로 삼고, 꿈을 꿀 수 있었다. 우리 모두 당신이 그리울 것이다”고 했다. ‘아시아 홈런왕’ 오 사다하루(왕정치) 소프트뱅크 호크스 구단 회장도 23일 구단을 통해 성명을 내고 “에런은 홈런, 타점 등 당시 세계기록을 세운 대단한 선수였다. 굉장한 신사이기도 해서,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거울이 됐다. 훌륭한 인생을 살았다. 명복을 빈다”며 동시대에 활약한 에런을 추모했다.
권용휘 기자 rea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