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용석 코치
- 지난해 이른 은퇴 이후 2군 지도자 맡아
- 긴장되지만 즐겁게 후배들과 야구하고파
# 나승현 스카우트
- 투수-코치-프런트 거쳐 유망주 발굴 임무
- 좋은 선수 나오면 “고생했다” 말 듣고 싶어
# 안형권 통역
- 뉴욕서 키운 야구선수 꿈, 입단한 데 만족
- 선수 뒤에서 분주한 스태프 노고 알아주길
연륜 있는 기자들은 기억한다. 롯데 자이언츠 1호 버스 기사의 아들 손용석을. 2005년 부산고 출신 손용석이 거인 유니폼을 입었을 때 누구보다 기뻐했던 직업군 중 하나가 프로야구 담당 기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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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용석 코치(왼쪽), 나승현 스카우트 |
삶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누구나 그렇다. 손용석(31)도 지난해 4월 은퇴하고 2군 지도자가 될 때까지 만만치 않은 삶을 견뎠다. 투수 유망주였던 나승현(31)은 파란만장한 현역생활을 접고 스카우트 직함을 달았다. 1군 무대를 한 번도 밟지 못했던 안형권(30)은 통역으로 변신했다.
선수들 사이에서 앤드류로 불리는 안형권은 2루수 앤디 번즈를 담당한다. 번즈와는 경기장 내에서뿐 아니라 밖에서도 동행한다. 비자 문제뿐 아니라 번즈의 개인사나 가족까지 안형권이 챙겨야 할 몫이다. 쉽게 흥분하고 분위기에 휩쓸리는 번즈를 자제시키는 것도 ‘통역’ 안형권의 업무 중 하나다. 그는 “앤디(번즈)가 배려를 많이 하는 성격이라 수월하다”고 오히려 보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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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형권 통역 |
안 통역도 한때 롯데 유니폼을 입고 1군 무대를 꿈꿨다. 요즘도 꽉 찬 관중석을 보면 가슴이 뛴다는 그는 미국 뉴욕 출신으로 8살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다.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에 고양 원더스 입단 시험을 봤는데 덜컥 합격해 한국생활을 시작했다. 2014년 롯데에 신고선수로 입단했다. 주로 2군에 머물렀던 안 통역은 “열심히 했다. 그래도 1군에서 뛰기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회상했다.
훌리오 프랑코 2군 타격 코치를 전담했던 그는 지난 시즌 중반부터 1군 통역을 담당하고 있다. 선수 출신인 만큼 훈련 중에는 글러브를 끼고 1루에서 공을 받는 모습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안 통역은 “팬들이 선수들 뒤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스태프도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손용석 코치는 최근까지 대만 스프링캠프에서 2군 선수들과 부대꼈다. 현역 은퇴가 아쉽지 않으냐고 하자 그는 “팬들의 기대에 너무 미치지 못해 부끄럽다”고 했다.
지난해 이른 은퇴를 선언하고 전력분석원으로 일했던 그는 올해 코치 직함을 달고 시즌을 치른다. 2군 작전코치로 3루에서 주자들의 주루를 지휘한다. 손 코치는 “선수로 더 뛰고 싶은 욕심도 있었지만 제 한계라고 생각했다. 지금 와서 보니 잘한 결정이었다”며 “코치로는 아직 많이 부족해 긴장도 많이 하는데 조금씩 여유를 찾는 중”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자신의 선수 생활과 비슷하게 생활 중인 2군 선수들에게 애정이 많다. “즐거운 분위기에서 선수들이 하고 싶은 야구를 하게 해주고 싶어요. 나이 차이가 별로 안 나서 후배들이 더 잘 다가와 주는 장점도 있죠.”
손 코치와 입단 동기인 나승현 스카우트는 전국을 누빈다. 자택인 경남 양산을 떠나 경기도 광명에 머물며 서울 경기지역 유망주들을 확인한다.
나 스카우트는 “투수 출신이라 주로 투수를 많이 보는데 신체조건이나 경기 내용뿐 아니라 인성도 확인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앞으로 좋은 선수가 롯데에서 나오면 ‘스카우트팀이 고생했구나’라고 한 번만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다”고 전하며 웃었다.
데뷔 첫해인 2006시즌 고졸 신인 역대 최초 두 자릿수 세이브(16개)를 기록했던 나 스카우트는 “너무 의욕이 앞서 투구 밸런스나 폼을 잃은 것이 가장 아쉽다”고 회상했다.
2015년 티볼 순회코치로도 일했던 그는 선수-코칭스태프-프런트를 모두 거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모든 직무를 경험해봤는데 특히 올해는 소통이 더 잘되고 분위기가 좋은 게 느껴집니다. 우승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