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축구 팬들은 '기니'를 두고 "가나 짝퉁 아니냐"며 조롱하기도 했지만, 초반 흐름은 한국에게 썩 좋지 않았다. 경기 시작 휘슬이 울리고 한동안 우리 선수들은 기니 선수들의 개인 기량에 정신차리기 바빴다. 실시간검색어엔 당연히 '이승우'가 올라갈 줄 알았지만 웬걸. 오히려 온라인 축구 커뮤니티엔 "기니 등번호 20번 드리블 미쳤다"는 반응이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줄스 케이타였다.
케이타가 보여준 움직임은 기니가 어떤 전략으로 한국전을 준비했는지 가늠할 수 있게 했다. 기니 선수들은 아무튼 공만 잡았다 하면 케이타에게 전달했다. 그러면 케이타는 측면에서부터 야금야금 드리블을 한 다음 직접 슈팅하거나 공간 패스를 시도했다. 위협적이었다. 우리 선수들이 간간이 깊은 슬라이딩 태클을 시도해도 케이타는 요리조리 피해나갔다. 축제처럼 경기를 즐기고 싶었던 팬들은 뜻밖에 조용했다. 전주월드컵경기장엔 긴장감이 맴돌았다.

확실히 기량이 비슷할수록 축구는 흐름 싸움이다. 기니가 몇 차례 찬스를 날려버리자 흐름은 자연스레 우리에게도 찾아왔다. 축구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는 팀이 이기는 게임이다. 이승우는 전반 35분 중앙선에서 차단한 공을 몰고 30m를 질주했다. 이번엔 기니 선수들이 균형을 잃고 차례로 넘어졌다. 순간 이승우는 고민했을 것이다. 왼쪽으로 내줄까, 직접 때릴까. 이승우는 후자를 택했고, 공은 굴절됐다.

축구 팬들은 일순간 탄식했다. 왼쪽에 내줬어야지. 바로 그 순간 굴절된 공 진행 방향이 수상했다. 기니 골키퍼는 역동작에 걸렸고, 공은 높이 떠올라 골문 사각지대로 향했다. 기니 골키퍼 카마라는 어떻게든 공을 건드려보려 풀쩍 뛰어올랐지만, 그는 공이 골문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공을 만져볼 수 있었다. 선제골 주인공은 이승우였다.
다소 침체됐던 이승우는 이 때부터 완전히 흐름을 탔다. 바운스 넘치는 특유의 드리블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절정은 전반 45분. 조영욱과 측면에서 공을 주고받은 이승우는 상대 골문을 앞에 두고 팬텀 드리블로 과감한 돌파를 시도해 기니 수비수들을 바보로 만들었다. 전력질주한 이승우가 골라인에서 문전 앞 조영욱에게 공을 건넸고, 조영욱이 침착하게 득점에 성공했다.
하지만 심판은 달리 판단했다. 공이 터치라인을 나갔다는 판정. 그 놈의 비디오 판독이 문제였다. 정확해도 너무 정확한 것이다. 한 골을 도둑맞은 줄 알았던 축구 팬들도 리플레이 앞에 고개를 끄덕였다. 한 성격하는 이승우도 크게 항의하지 못했다.

후반전 결정적 장면은 결과만 두고 보았을 때 이상헌과 임민혁이 교체되는 순간일 것이다. 이상헌은 이날 경기에서 기대만큼 활약하지는 못했다. 전반전 대표팀 패스가 세 번을 못 넘길 때, 이상헌 역시 패스미스를 몇 번 연출했다. 신태용 감독의 첫번째 용병술이었다. 그리고 이 용병술은 적중했다. 임민혁은 후반 20분에 그라운드를 밟아 10분만에 득점을 기록했다. 이승우 패스도 돋보였지만, 임민혁은 골키퍼가 달려나오는 템포를 완전히 죽여버리는 침착함을 선보였다. 골키퍼 균형을 무너뜨린 임민혁이 공을 툭 차니 골인이었다.
기니는 사실상 이 때 완전히 무너졌다. '20번 케이타'에 일관한 공격은 정태욱과 이유현에게 번번이 차단당했다. 어쩌다 케이타가 다시 공을 잡아도 별 수 없었다. 드리블은 탁월한데, 알고보니 슈팅 능력이 깡통이었다. 그렇게 기니 에이스가 기회를 몇 번이나 날리는 사이에 동료들은 집중력을 잃고 팀 밸런스를 맞추지 못했다.

이 틈에 백승호는 혼자 번뜩였다. 아마 직감적으로 기니 조직력이 무너졌다는 것을 느꼈던 것처럼 보인다. 우찬양이 정태욱의 큰 키를 노리고 높은 크로스를 올렸다. 수비수 정태욱이 성공적으로 문전 앞에 공을 떨어뜨릴 것으로 예상한 백승호는 볼 것도 없이 쇄도했다. 공이 떨어지고 나서 움직였다면 백승호는 득점하지 못했을 것이다. 기니 골키퍼보다 백승호 발이 좀 더 빨랐던 이유는, 백승호가 미리 공 방향을 예측했기 때문이다. 절묘한 로빙슛이었다. 오른발로 돌려놓는 수준은 그가 바르셀로나 소속임을 한 눈에 알아보게 했다.

	(사진 = SBS 중계영상 캡처)

뒤늦게 기니 벤치는 '10번 공격수' 실라와 '7번 미드필더' 카마라를 넣으며 만회골을 노렸다. 대부분 팀내 7번과 10번 선수는 핵심 공격수와 키 플레이어들이다. 이 선수들이 후반전에 들어갔다. 무슨 전략이었던 건지 몰라도 기니는 완벽히 실패했다.

최종 스코어 3대 0. 한국 대표팀은 앞서 아르헨티나를 3대 0으로 이긴 잉글랜드와 함께 A조 선두에 올랐다. 다음 상대는 아르헨티나인데, 1차전을 패배한 '메시의 후예'들이 총력전으로 나설 가능성이 크다. 단단히 대비해야 하겠다. 23일 화요일 오후 8시 전주월드컵경기장. 신동욱 기자 inew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