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일 동계체전 앞두고 맹훈련
- 장비업체 국내 없어 교체 힘들고
- 전용장소 없어 애먹는 일 많지만
- 상대 스톤 밀어낼땐 짜릿한 쾌감

"3초6!" "4초3!"

자정이 가까워진 지난 16일 밤 부산 북구 실내빙상장. 여고생들의 함성 소리가 높다. 차가운 빙판에 무릎을 끌며 약 20㎏ 무게의 스톤을 미는 시간을 측정하는 이들은 부산 유일의 고등부 컬링팀인 부산외국어고등학교 여자 선수들이다. 주장 격에 해당하는 스킵 3학년 임예진(19) 선수를 비롯해 이은지(19) 하유정(18) 이도은(18) 조은정(18) 선수까지 5명이 제98회 전국동계체전에 부산 대표로 출전한다.

부산외고 여자 컬링팀 선수들이 지난 16일 북구 빙상장에서 훈련 후 동계체전에서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은정 하유정 임예진 이은지 이도은 선수. 배지열 기자

컬링은 '핵'이라는 발판을 밀며 미끄러져 간 선수가 호그라인을 넘기 전 스톤을 놓아야 하는데, 발판을 기준으로 10여 m 떨어진 호그라인까지 3초8 이내에 도달해야 점수를 획득하는 서클 안 '티'에 스톤을 정확하게 배달할 수 있다. 감각을 익히기 위해 무수히 반복 훈련을 하는 선수들은 고등학생인 만큼 평상시 매주 금요일 야간자율학습을 끝내고 빙상장을 찾는다. 동계체전을 앞둔 요즘은 훈련 시간도 늘렸다. 이들은 지난여름 전지훈련의 기억이 생생하다. 전지훈련이라고 거창한 게 아니라 국내 다른 지역의 컬링 전용 경기장을 찾는 것이다. 이은지 선수는 "지난해에는 전북 전주에 있는 컬링장으로 갔는데, 방학을 이용한 합숙훈련으로 팀원들과 더 친해지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선수들은 컬링을 '빙판 위의 체스'라고 표현했다. 총 5명의 선수가 각각 두 번씩 스톤을 던져 티에 가까운 스톤마다 1점씩 얻어 승부를 가린다. 상대 팀 스톤을 밀어내거나 자기 팀 스톤을 원 중심 가까이 붙일 수도 있다. 조은정 선수는 "상대 팀 스톤을 세게 밀어내서 쳐낼 때 들리는 '탕'하는 소리에 쾌감을 느낀다"고 전했다. 하지만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비인기 종목의 현실도 맞닥뜨린다. 하유정 선수는 "컬링에서 스톤이 더 잘나가도록 스위퍼가 하는 일을 '빗자루질'이라고 표현하더라"며 "쉽게 접하는 운동이 아니라서 신기해하는 반응이 많다"고 말했다.

부산외고 여자 컬링팀은 2000년 창단해 이듬해 첫 동계체전 정식종목에서 여고부 정상에 올랐다. 이후로도 매년 꾸준히 선수들이 활동하고 있으나 부산을 비롯한 주변 지역에 전용 컬링장이 없어 훈련에 애를 먹는다. 이규헌 부산컬링협회 전무이사는 "다른 종목 선수들의 연습과 훈련도 이뤄지는 북구 빙상장에서 제대로 된 컬링 연습을 하기 어려운 현실"이라며 "현재 공사 중인 남구 실내빙상장에 컬링 시트 설치를 건의했지만 그마저도 무산된 상황"이라고 전했다. 종목 특성상 장비가 많이 필요하지만 제때 교체하기는 어렵다. 이종선 부산외고 컬링팀 감독은 "국내 생산업체가 없어 전부 수입하다 보니 스톤·컬링화·스틱 등 장비들을 한 번에 몇 개씩만 교체해줄 수밖에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외고를 다니는 만큼 학업에 대한 걱정도 있지만 임예진 선수는 "오히려 집중력도 좋아지고 훈련 시간 외에 나머지 시간 동안 더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어 좋다"고 전했다. 부산외고 컬링팀의 동계체전 첫 상대는 지난해 맞붙어 패배한 적 있는 서울 대원외고다. 이은지 선수는 "그때는 아깝게 패했지만 이번에는 더 열심히 준비했으니 좋은 결과를 보이겠다"고 의지를 불태웠다. 부산외고 여자 컬링팀은 오는 20일부터 경기 이천에 있는 대한장애인체육회 이천훈련원 컬링경기장에서 1년 중 가장 큰 대회인 동계체전을 치른다.

배지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