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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널T의 '사진작가 김홍희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촬영 중 피사체를 응시하고 있는 김홍희 씨.(제공=김홍희) |
우리시대의 사진가 김홍희 씨는 바이크(모터사이클) 마니아다. 2007년 EBS 세계테마기행 '사진작가 김홍희의 볼리비아 방랑' 촬영을 계기로 바이크를 배우게 된 그는 "인생이 바이크 타기 전과 타고 난 뒤가 나뉘어졌다"고 말한다. 사진 작업 차 세계 80여 개국을 돌아다닌 '방랑의 사진가' 김홍희 씨의 발은 이제 바이크인 셈이다. 탁월한 글쟁이기도 한 그는 바이크 타면서 느끼는 자신과 세상에 대한 단상, '김홍희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적어가고 있다. "바이크를 탄다는 것은 대단히 즐거운 일이예요."
안데스 5000m 고지.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곳에서 틈만 나면 EBS 탁재형 PD는 바이크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그렇게 재미있으면 너나 타. 나는 이 죽을 것 같은 호흡 곤란에서부터 우선 벗어나고 싶어."
EBS의 세계테마 기행 촬영차 날아온 볼리비아 안데스는 사람을 초죽음으로 몰아 붙였다. 거기서 카메라를 들고 뛰는 탁재형 PD('탁피')를 보면서,
"저 친구는 적어도 심장이 두 개 일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이 고산에서 카메라를 메고 저 언덕길을 구보로 뛰어 올라갈 수는 없지."
그런 생각이 막 끝나기도 전에 탁피는 구보로 올라가던 언덕 길 위에서 뒤를 돌아보며 조연출에게 소리쳤다.
"야, 이새끼야. 자기 전에 맨날 팔굽혀펴기 500개씩 하면 뭐해? 이 씨발놈아. 졸라 가벼운 삼각대 하나 제대로 감당을 못해? 뛰어!"
삼각대를 껴안고 탁피 뒤를 따르며 넘어지고 미끄러지는 조연출을 향해 날아든 돌직구. 맞으면 여지없이 머리통에 구멍이 뚫릴 판.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탁피의 욕설은 때로 음울한 분위기의 흥을 돋우는 조미료로. 때로는 기싸움에서 서슴없이 상대를 제압하는 비수 같은 번득임으로 유명하다. 인터넷 방송 벙커1에서 탁피의 욕설을 듣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는 것도 다 이런 연유다.
그 돌직구는 사실 커브이거나 변화구다. 조연출을 향해 직격탄처럼 날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출연자가 탁피의 연출 욕심을 채워주지 못 하거나, 뭔가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군대서 얼차려를 시키기 전에 근엄하게 들려오는 "전체-차렷!"과 같은 것이다. 돌직구는 여지없이 조연출을 머리를 명중시키고는 휘어져 출연자인 내 귀로 정확히 날아든다.
타겟은 바로 나다. "내가 그 정도도 모를 줄 아니?"
한마디 하고 싶지만 거의 초죽음인 고산 증세로 어떤 반응도 할 수 없다. 있는 그대로 받아 들여야 한다. 닝기리!
며칠 전 우유니로 이동하던 기차 안에서 탁피는 나를 불러 낮술을 권했다. 가볍게 한 두 잔으로 끝날 것 같던 낮술자리는 맥주병이 식당칸 식탁을 거의 다 채울 때까지 진행 되었다. 눈이 풀리고 혀가 꼬일 때까지 마신 탁피는 뭔가 말을 하려다 마는 눈치였다.
"할 말 있습니까?"
만난 지 며칠 안 된 우리는 서로 정중하게 존댓말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방송에서는 PD가 두목이나 당연한 처사. 말을 쭈빗 거리는 그 앞에서 내 머리를 빛의 속도로 회전했다. 방송을 따라 나오기 전에 이미 방송은 PD의 작품이다. 나는 출연자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하겠다. PD가 생각하는 방송의 끝을 나로서는 알 수 없으니 당신이 시키는 일을 충분히 이행해 좋은 작품을 만드는데 일조하겠다고 다짐까지 했는데 뭔가 석연찮은지 탁피는 말을 몇 번이나 삼키는 표정이었다.
"단, 과장된 오버 액션을 취하게 하면 바로 집으로 돌아가겠다."라고 한 것이 걸리나?
"제가......"
한 마디 말을 꺼내는가 싶더니 다시 탁피는 내 눈치를 본다.
"말씀 하세요."
말씀 하세요라고 말은 했지만 내 머리 속은 다시 오만가지 잡생각으로 급회전을 시작 했다.
"제 의도를 잘 읽으시고 하라는 대로 하세요." 이것 일까?
"과하지 않은 한도내에서 날라리 연기 정도는 해 주시면 어떨까요?" 이걸까?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출연자가 버거우니 그냥 집으로 돌아가 주실래요?"
이쯤 되면 최악이다. 내 발로 가야지 니가 시켜서 내가 집으로 돌아가? 그 짧은 순간에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데 탁피가 말 했다.
"제가......, 형님이라고 부르면 안 되겠습니까?"
세상에! 무슨 이런 횡재가 있나? 급회전 하던 머리속이 박하향 같은 향기로 가득 차며 즉각적으로 멘트가 튀어 나왔다.
"Why not?"
아! 이 촐싹 맞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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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방송된 채널T의 '사진작가 김홍희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의 한장면. |
그 날 이후부터 탁피가 나를 보고 정확히 "형님!"이라고 부르는데는 적어도 1주일 이상이 걸렸을 것이다. 아무래도 형님이라고 부르기 보다는 입에 붙어 있던 선생님으로 호칭하는 게 편했던지 아니면 심적 부담을 지우지 못해 선생님과 형님을 번갈아 호칭하다 형님이라는 호칭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 내 분명한 기억이다.
그랬던 탁피가 돌직구를 가장한 변화구를 심심찮게 내게 던지게 되고, 나도 그 돌직구에 익숙해 질 즈음 심심찮게 탁피는 바이크 이야기로 곤혹스런 촬영 중간 중간을 메워주었다.
"형님 바이크란 말이죠, 남자의 로망이자 자유의 상징이예요."
"그래서 어쩌라고?"
시큰둥한 나의 반응에 불을 지른 것은 탁피의 심리전을 방불케 하는 재치였다. 대한민국 육군 정훈장교가 그냥 정훈 장교이던가? 젊은 군인들에게 이념 교육과 군사 선전, 대외 보도와 정신교육. 심리전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쌓아 온 육군 정훈 장교, 중위 출신의 탁피 아닌가.
"형님, 동남아 가 보셨죠?"
"응"
"거기서 혹시 정글을 헤집고 다니는 방물장수 보셨어요?"
방물장수?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국어 교과서에 등장한 인물이다. 머리에 실과 바늘같은 규방 물건은 물론 벽지 산골에서 원하는 물건이 있으면 망태기 같은 것에 담아 머리에 이고 시골 구석구석을 다니던 그 방물장수? 국어 교과서에는 뭔가를 머리에 이고 산길을 걸어가는 아낙의 모습이었는데.
"그래서?"
"동남아에 가면요. 아직도 방물장수가 있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방물을 머리에 이고 다니지 않고 작은 오토바이에 싣고 정글 구석구석을 다녀요. 짐의 높이가 사람 키 보다 높아서 보는 것만으로도 서커스를 보는 듯한 즐거움을 줘요."
뿐만 아니라 장대비가 오는 정글의 미끄러운 길을 넘어지지도 않고 요리조리 잘도 달린다는 말과 그런 것을 취재 하려면 차로는 취재가 안 되고 같이 바이크를 타야만 취재가 된다는 것이었다.
"취재?"
눈이 확 뜨이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하는 일이 뭔가? 세상에 재미나고 신기한 일이 있으면 달려가서 촬영하고 글 쓰고 하는 일 아닌가? 다큐멘터리라는 게 어디 사람 죽어 나가는 전쟁터만 찍는 게 아니잖아? 세상의 부조리만 고발 하는 것도 아니고. 세상의 신기하고 흉내낼 수 없는 다양한 삶을 알려 주는 것도 다큐멘터리의 몫 아니던가.
"그래? 왜 차로는 취재를 못해?"
"생각해 보세요. 좁은 정글을 요리조리 뚫고 다니려면 오토바이 아니고는 갈 수가 없잖아요."
내가 탁피의 말에 완전히 실린 것은 이 대목이었다.
세계테마 기행 볼리비아 편 촬영을 마치고 한국에 오자 말자 바이크 면허를 따고, 면허 딴 뒷날 바로 883cc 바이크를 산 것도 다 이 한 마디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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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방송된 채널T의 '사진작가 김홍희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촬영 중인 김홍희 씨와 스탭들. (제공=김홍희) |
절대 탁피가 권해서 바이크를 탄 것이 아니다. 내가 동남아 방물장수를 취재하기 위해 바이크 면허를 딴 것이다.
맞지? 그렇지?
아무리 우겨 봐도 역시 내 인생을 바이크로 고공비행하게 해 준 것은 탁피였다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 그 인연으로 우리는 세계테마기행 짐바브웨도 했고 인도네시아도 했다. 그리고 결국은 '사진작가 김홍희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라는 채널t 프로도 함께 했으니까.
탁재형 PD야. 고맙데이!
덕분에 내 인생이 바이크 타기 전의 인생과 타고 난 뒤의 인생으로 나뉘어졌다. 50고개 갱년기도 별 탈 없이 잘 지나갔고, 아침에 눈뜨면 하늘을 보며 날씨를 가늠하는 활기찬 생이 다시 시작 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