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역할은 승부차기 방어입니다. 머릿속에 늘 이 생각을 담고 있죠. 기회만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 나선 태극전사는 23명이다. 대부분 포지션별로 2명씩 꾸려지는 데 유독 골키퍼 요원만 3명이다. 필드 플레이어와 달리 골키퍼는 특수 포지션인 만큼 퇴장이나 부상에 대비해 3명을 등록하게 돼 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까지는 골키퍼 2명과 필드 플레이어 20명을 합쳐 22명이 등록했지만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부터 골키퍼 1명이 추가돼 23명(골키퍼 3명+필드플레이어 20명)으로 늘어났다.
골키퍼는 부상이나 퇴장 등의 상황이 아니면 대부분 대회 기간 내내 교체되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과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는 이운재가 골키퍼 장갑을 독식했고,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는 정성룡(수원)이 조별리그와 16강 경기까지 혼자 치렀다. 이 때문에 '1번 골키퍼'를 뺀 나머지 2명의 골키퍼는 사실상 경기에 나설 기회를 잡기 어렵다.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 나선 골키퍼 요원은 정성룡(수원), 김승규(울산), 이범영(부산) 3명이다.
지난 18일 치러진 러시아와의 대회 조별리그 H조 1차전에서는 2010년 남아공 대회에서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에 큰 몫을 해낸 정성룡이 주전 골키퍼로 출전했다. 오는 23일 예정된 알제리와의 2차전 역시 이변이 없는 한 정성룡이 나설 태세다.
현재 대표팀의 주전 골키퍼 경쟁구도는 정성룡과 김승규로 좁혀져 있다. 홍명보감독은 월드컵 대표팀 출범 이후 정성룡과 김승규 위주로 A매치를 치렀다.
이 때문에 '3번 골키퍼' 이범영은 사실상 출전 기회를 잡기 어려운 상태다. 이범영 역시 이런 사실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지난 16일 훈련장에서 만난 이범영은 "월드컵 대표팀이 소집되고 나서 지금까지'3번 골키퍼' 역할에 대해 스스로 만족하고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3번 골키퍼' 역할을 맡은 최은성(전북)은 훈련할 때필드 플레이어가 모자라면 골키퍼 장갑을 벗고 필드 플레이어 역할을 하며 헌신했다.
이범영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그는 "3번 골키퍼는 동료가 힘을 낼 수 있도록 훈련 파트너 역할은 물론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도 해야한다"며 "그런 역할을 할 마음의 준비가 잘 돼 있다. 더불어 경기에 나설 준비도 완벽하게 돼 있다"고 강조했다.
이범영은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백업 골키퍼로 맹활약하며 한국의 사상 첫 동메달 획득에 큰 공헌을 했다.
런던 올림픽 당시 와일드카드로 뽑혀 주전 골키퍼를 맡았던 정성룡이 영국과의 8강전에서 어깨를 다치면서 교체투입된 이범영은 승부차기에서 상대의 마지막 키커의 슈팅을 막아내 4강 진출의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홍명보 감독이 이범영을 월드컵 대표선수로 발탁한 이유도 특유의 성실함과 뛰어난 페널티킥 방어력 때문이다.
월드컵에서 승부차기는 승패를 가려야 하는 16강전부터 펼쳐진다. 홍명보호가 이번 대회에서 16강에 진출해야만 이범영에게 출전 기회가 돌아올 수 있다는 말과 같다.
이범영은 "제 역할 중의 하나가 승부차기 방어"라며 "이 생각을 늘 머릿속에 담고 있다. 기회가 올 때까지 묵묵하게 준비하고 있다"고 굳은 각오를 다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