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하이 메리어트 호텔에서 열리고 있는 2013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에서도 한국 바둑이 처한 위기는 고스란히 드러났다.

3일 열린 이번 대회 본선 32강전 첫 대국에서 중국과 맞붙은 13명의 한국 기사 중 승리한 기사는 5명뿐이다.

본선 진출자 수에서부터 중국(15명)에 밀린 한국은 불안한 출발을 하며 올해 열린 세계대회 개인전 우승을 모두 중국에 빼앗길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 휩싸였다.

한국기원은 이처럼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한국 바둑이 재도약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지난달 최초로 도입돼 10일 본격적으로 담금질을 시작할 예정인 국가대표 상비군 제도가 그중 하나다.

양재호 한국기원 사무총장은 "대회가 시작하기 전, 두차례 정도 기사들을 모아놓고 서로 대국하도록 했는데 대국료가 매우 적었음에도 다들 치열하게 경기했다"며"한국 바둑이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기사들이 누구보다 마음속 깊이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상비군은 한국 바둑랭킹 1, 2위인 박정환·김지석 9단 등 랭킹상위자 11명과 여자부 8명, 영재부 10명, 상비군 선발전을 통해 선발한 10명, 와일드카드 1명 등 총 40명으로 구성됐다.

이창호 9단과 이세돌 9단, 최철한 9단 등 연령대가 있는 일부를 제외한 한국 정상급 기사들이 한국 바둑의 재부흥이라는 목적하에 모두 모인 것이다.

양 사무총장은 "바둑은 팀으로 하는 경기가 아니니 홀로 모든 것을 해오던 프로기사들이 한데 모여 정해진 틀을 따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중국을 이겨야겠다는 각오 하나로 뭉쳐 함께 연구하고 훈련하려고 의지를 다지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은 국가적 차원의 지원과 전국민적으로 형성된 인기에 힘입어 최근 몇년 간 뛰어난 신예 기사들을 지속적으로 배출했다.

이번 대회 본선에 진출한 '90후 세대(1990년대 이후 출생한 중국 신예 기사들을일컫는 말)'는 10명으로 전체 15명의 3분의 2에 달한다.

1997년생인 커제 4단은 16세로 이번 대회 최연소 출전자다.

반면 한국의 1990년 이후 출생한 본선 진출자는 전체 13명 중 4명뿐이다.

세대교체가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양 사무총장은 "중국에서는 바둑 도장을 열면 중상류층 집안의 어린이들이 몇백, 몇천명씩 모여 바둑을 공부한다"며 "마치 이창호 9단이 전성기를 누리던 15년 전 한국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결국 한국 바둑이 다시 예전처럼의 전성기를 누리려면 저변 확대를 통해 어린 영재들을 많이 육성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게 중론이다.

양 사무총장은 "상비군의 목적은 현재 있는 프로 기사들이 함께 연구하고 훈련하며 중국의 대항할 힘을 기르는 것 외에 영재들을 프로 기사들과 함께 훈련시키며 육성하기 위한 것에도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창설돼 신진서(13)·신민준(14) 초단 등 어린 프로 기사들을 배출한 영재입단제도 또한 한국 바둑의 저변을 넓히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양 사무총장은 "신진서, 신민준, 변상일 등 어린 영재들이 장차 한국 바둑의 미래를 이끌어갈 재목으로 꼽히지만 이들이 과거 이창호 9단이 그랬듯 한국 바둑계 전체에 '붐'을 일으키리라고는 얘기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창호라는 한 명의 천재가 10여 년 동안 한국 바둑 전체를 세계 최강으로 이끌던 시대는 이제 지나갔다"며 "5년, 10년 후 중국 바둑을 제대로 견제할 수 있도록 한국도 많은 영재들을 길러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