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태권도가 2012 런던올림픽에서 역대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한국은 이번 대회 태권도 경기 마지막 날인 11일(현지시간) 남자 80㎏초과급에 차동민(한국가스공사), 여자 67㎏초과급에 이인종(삼성에스원)이 출전했지만 모두 메달획득에 실패했다.
이로써 한국태권도는 이번 대회 네 체급에 출전해 금·은메달 1개씩을 수확하는데 그쳤다.
황경선(고양시청)이 10일 여자 67㎏급에서 대회 2연패를 이루고, 이대훈(용인대)은 8일 남자 58㎏급에서 은메달을 땄을 뿐이다.
2000년 시드니 대회에서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된 이후 한국 출전 선수가 메달을 따지 못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은 2000년에는 금3, 은1개를 수확한 데 이어 2004년 아테네 대회 때는 금2,동2개를 보탰다.
2008년 베이징 대회에서는 금메달 4개를 싹쓸이했다.
한국은 이번 대회 종합순위에서 스페인(금1, 은2), 중국(금1, 은1, 동1)에 이어터키와 공동 3위를 차지했다.
이번 대회는 세계태권도의 전력 평준화를 다시 한번 확인해줬다.
총 32개의 메달(금·은메달 8개씩, 동메달 16개) 중 메달 하나라도 건진 나라가총 21개국이다. 4년 전 베이징 대회 때의 22개국보다는 한 나라가 줄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의미가 다르다.
이번 대회에 걸린 금메달 8개는 8개 나라가 가져갔다. 남자부에서는 스페인과 터키, 이탈리아, 아르헨티나가 금메달을 챙겼고 여자부 금메달은 한국, 중국, 영국,세르비아가 나눠가졌다. 어느 한 나라의 독식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 중 스페인, 영국, 터키,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세르비아 등 여섯 나라는 태권도에서 처음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세르비아 태권도는 여자 67㎏초과급의 밀리차 만디치를 앞세워 올림픽 데뷔 무대에서 금빛 발차기를 날리며 신흥 강호로 부상했다.
금메달 못지않은 값진 메달도 나왔다.
안소니 오바메(가봉)는 남자 80㎏초과급에서 은메달을 따 1972년부터 올림픽에 출전한 가봉에 첫 메달을 선사했다. 콜롬비아도 남자 58㎏급의 오스카 무노스 오비에도가 동메달을 획득, 올림픽 태권도에서 첫 메달리스트를 배출했다.
이처럼 세계태권도는 요동을 치며 급변하는데 한국은 완전히 방향을 잃은 형국이다. 태권도인들은 종주국이라는 지위만 믿고 변화에 발빠르게 대처하지 못한 탓이라고 지적한다.
대한태권도협회는 지난해부터 대표팀 전임지도자 제도를 운영하고 런던올림픽을앞두고 대표 선수들을 상대로 강도 높은 체력훈련과 해병대 극기훈련, 심리기술훈련등을 진행하는 등 땅에 떨어진 자존심을 만회하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하지만 경쟁국들의 준비와 비교하면 늘 한발 뒤처진 모습이다.
특히 전자호구 시스템이 도입된 뒤로 한국의 국제 대회 성적은 계속 좋지 못했다.
2008년 4월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는 남녀부 성적 종합 4위에 머물러 18회 연속 우승이 좌절됐다.
2009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여자부에서 처음으로 중국에 1위 자리를 내줬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남자는 이란, 여자는 중국에 종합 1위 자리를빼앗겼다.
지난해 안방에서 치른 경주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서는 20회 연속 종합우승을 노린 남자부에서 금메달 2개와 은메달 2개를 따는 데 그쳐 이란(금3, 은1, 동2)에 처음으로 최강 자리를 내줬다.
이번 런던올림픽에서는 머리 공격에 대한 점수는 최고 4점까지 주는 등 규정에도 변화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몸통은 내주고 머리 공격으로 분위기를 단번에 바꿔놓는 경기 운영이 주를 이뤘다.
하체가 길고 탄력이 좋은 외국 선수들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갈수록 여건은 한국태권도에 불리해지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협회 관계자는 "신구 경기 스타일이 혼재한 과도기다. 기본을 벗어나더라도 점수만 내면 되는 결과 지향적인 경기가 이뤄지고 있다"고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라면 새로운 시스템과 룰에 맞는 기술 개발이나 전략적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국제무대에서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되풀이되는 이야기지만 태권도인들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적절한 보상이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과거 올림픽에서 다섯 명의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한 김세혁 대표팀 감독은 "태권도는 은메달을 따고도 미안해해야 하는 종목이다. 하지만 이제는 얼마나 노력하고 준비하고 계획을 잘 짜서 이행하느냐가 중요하다"면서 "우리가 독식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밝혔다.
김 감독은 "유도, 레슬링, 양궁 등 다른 종목은 상시체제로 4년간 올림픽을 준비한다. 하지만 그동안 태권도는 3∼5개월 준비가 끝이었다"면서 "이제는 정말 지원과 관심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