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프로축구 세리에A의 인터밀란 시절 호나우두(9번)와 호나우두에게 등번호 9번을 내준 이반 사모라노가 '1+8' 번호판을 달고 나란히 서있다. 국제신문 DB

- 1번 골키퍼, 9·10번 공격수
- 12번은 서포터즈 자리 등
- 55, 66 등 '땡번호' 선호도
- 부산 김주성 16번 영구결번, 김병지는 '500번' 거부 당해

현대 축구에서 등번호는 포지션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1번은 전통적으로 골키퍼, 2~5번은 수비수이며 6~8번은 미드필더 차지다. 9, 10번은 팀의 스트라이커에 주어지는 번호이며 발 빠른 공격수가 대개 11번을 단다. 그래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등번호만 봐도 포지션이나 주전 여부를 알 수 있다.

일본 구마모토 전지훈련을 끝내고 5일 귀국한 부산 아이파크는 올 시즌 선수들의 배번을 결정했다.

1번은 올림픽 대표팀에서 활약 중인 골키퍼 이범영이다. 선배 골키퍼 전상욱(21번)이 양보했다. 이범영을 팀의 간판으로 제대로 키워보자는 선배의 배려다.

부산이 올 시즌 '킬러'로 영입해 큰 기대를 걸고 있는 모따에게는 9번이 주어졌다. '골미남' 임상협은 11번. 공교롭게도 10번이 주인을 찾지 못하고 무주공산으로 비어있다.

부산에는 영구결번이 두 개 있다. 12번은 팀의 '12번째 선수'인 서포터즈를 위해 비워뒀다. 16번도 없다. 축구협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야생마' 김주성을 위한 영구결번이다.

등번호는 포지션뿐만 아니라 선수의 개인적인 선호도 작용한다. 자신이 데뷔 시절 달았던 번호를 끝까지 고집하는 선수도 있고 올해 부산으로 이적해온 방승환처럼 특이하게 99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국내 규정에는 1~99번까지 사용이 가능하다. 2009년 골키퍼 김병지가 500경기 출장을 앞두고 등번호 500번을 신청했지만 프로축구연맹으로부터 거부당하기도 했다.

FIFA 규정은 좀 더 엄격하다. 엔트리에 해당되는 숫자만 허용된다. 엔트리가 24명이면 1~24번까지만 사용해야 한다.

국내 프로리그에서 주전에게 앞자리 번호를 양보하고 뒷번호로 밀려난 선수들은 같은 숫자가 겹치는 55, 66 등 '땡번호'를 선호한다. 그래서 리그 후반에 가면 후보들이 대거 경기에 나서면서 '땡'들의 대결이 펼쳐지기도 한다.

감독이 현역시절 달았던 번호를 아끼는 선수에게 물려주는 경우도 있다. 포항의 황선홍 감독은 현역시절 18번을 달았다. 그래서 황 감독이 맡고 있는 팀의 18번이 주목을 받는다. 부산 감독 시절에는 양동현이 18번을 달았다. 올해 경찰청에 입대한 양동현은 지난해 10골로 팀 내 최다득점을 기록했다. 지금 포항에선 고무열이 그 번호의 주인이다.

부산의 안익수 감독은 현역시절 4번을 달았고 1994년 미국월드컵 때는 31번을 달고 출전했다. 올해 부산의 4번은 '중원의 지휘자'로 올림픽 대표팀에 차출된 박종우, 31번은 신입생 골키퍼 이창근이다.

해외에서는 등번호 때문에 웃기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호나우두(브라질)가 인터밀란으로 이적하자 구단은 골게터 번호인 9번을 부여했다. 기존에 9번을 달고 있던 이반 사모라노(칠레)는 9번에 애착이 많았던 터라 기발한 생각을 해냈다. 등번호 18번을 달면서 1과 8 숫자 중간에 '+'기호를 그려 넣은 것. '1+8=9'라는 고집이었던 셈이다.

스페인 리그에서는 구단이 등번호판을 돈을 받고 팔기도 한다. 팬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선수의 등번호에 이름을 새겨 넣는 대가로 구단에 돈을 지불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