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세계가 다른 어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를 꼽으라면 '스포츠 정신'을 들 수 있다. 이 스포츠 정신은 승자와 패자를 가려야만 하는 승부의 일면에서 느낄 수도 있고 승패와는 상관없이 하나의 목표를 위한 선수들의 진지한 눈빛과 구슬땀에서도 엿볼 수 있다. 또한 그 어떤 것보다도 스포츠를 즐기려는 열정 자체가 스포츠 정신을 구성하는 주요 덕목이다. 물론 여기에 스포츠 상품의 주체이자 객체인 팬들의 존재는 스포츠를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하지만 스포츠 상업화가 지배적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라는 축구 스포츠에서 팬들의 입지는 다소 소극적으로 비칠 수 있다.

막대한 자본으로 움직이는 프로축구 무대에서 팬들은 스포츠 특유의 어떤 정신들을 만들어내기보다는 구단이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비싼 입장료로 착취당하는 대상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잉글랜드의 모든 팬들이 다 똑같은 것은 아니다. 한 예로 얼마 전 필자가 방문한 맨체스터 지역의 유나이티드 오브 맨체스터 (FC United of Manchester)라는 팀을 소개해 본다. 프리미어리그가 1부 리그라면 이 팀은 8부 리그 정도에 속해 있는 팀이다.

2년 전인 2005년 여름에 창단된 유나이티드 오브 맨체스터는 팬들이 만들어내는 스포츠 정신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는 팀이다. 바로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저항해 팬들이 직접 만든 팀이기 때문이다. 2005년 시민구단의 전형이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미국인 사업가 말콤 글레이저의 손에 인수되자 그동안 맨유에 불만을 품고 있었던 팬들이 모여 자발적으로 팀을 창단했다.

주중에 벌어진 그날 경기에서 유나이티드 오브 맨체스터는 로젠데일 유나이티드를 홈으로 불러들여 5-1 대승을 거두었다. 사실 유나이티드 오브 맨체스터는 현재 독자적인 홈구장이 없다. 그래서 4부리그에 있는 버리 FC(Bury FC)의 구장을 임대해 같이 쓰고 있다.

경기가 끝나고 팬들을 만나 봤다. 그들의 축구에 대한 철학은 뚜렷했다. 40년 동안 맨유를 응원하다 2년 전부터 이 팀을 응원해 왔다는 윌리엄이라는 팬은 "맨유의 축구 상업화 정책이 축구 정신을 망치고 있다"고 단호히 말했다.

구단 운영자의 말에 따르면 팀의 주요 의사 결정은 회원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한다. 현재 4000명 정도 되는 회원들이 구단 운영에도 일부분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나이티드 오브 맨체스터 유니폼에는 선수들이나 스폰서의 이름이 없다. 프리미어리그 팀들의 유니폼에서는 흔하게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유를 묻자 "일단은 팬들이 그런 것을 원치 않았고, 그런 것들은 스포츠가 가져야 할 기본적인 정신에 위배되고 축구를 즐기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말했다. 유나이티드 오브 맨체스터의 서포터스들은 오랫동안 지지하고 사랑해 왔던 맨유라는 팀을 버리고 자신들만의 팀을 만들 때 그동안 느끼고 생각해 왔던 것들을 하나하나 실천해 가고 있었다.

프리미어리그 팀에는 스포츠 정신을 발견할 수 없고, 유나이티드 오브 맨체스터라는 팀이 스포츠 특유의 정신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다양성이 잉글랜드의 축구와 정신을 더욱 역동적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

방상열 영국 런던=FIFA 에이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