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맥주 광고 중에 지금은 은퇴한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등장하는 게 있다. 내용은 대충 이렇다. 지금은 백발 노인이 된 보비 롭슨 경과 보비 찰튼 경에서부터 다소 젊은 층에 속하는 브라이언 롭슨 그리고 스튜어트 피어스까지 모여 축구 친선경기를 갖는다.

모두 잉글랜드의 전설적인 선수들이다. 물론 기량은 젊은 시절과 비교할 수 없겠지만 이들의 활약에 울고 웃었던 팬들의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경기가 끝나고 펍(영국식 선술집)에서 맥주로 갈증을 풀면서 서로 덕담을 주고받는 마지막 장면으로 이 광고는 끝난다. 잉글랜드의 축구선수들 대부분이 애주가이지만 술을 오용하거나 남용하지 않겠다는 보이지 않는 메시지도 읽을 수 있다.

지난 7월 열렸던 아시안컵 축구대회 기간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선수 일부가 음주를 즐겼다는 소문이 사실로 밝혀졌다. 인도네시아의 무더운 여름 날씨에 경기 전부터 갈증이 났던 것 같다. 경기가 끝나고 갈증을 풀기 위해 몇 잔 마셨다면 위의 영국 광고와 별반 다를 게 없겠지만 우리 선수들이 중요한 경기 전날 밤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고 해 문제가 커지고 있다.

축구계에서 술과 관련해 다양한 사건들이 벌어지는데 영국도 예외는 아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1986년 팀의 지휘봉을 처음 잡았을 때 '술과의 전쟁'을 선포해야 했다. 당시 잉글랜드 축구계는 선수들의 술 문화에 관대했다.

선수들의 단결을 위해 술 문화는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인 코칭 스태프들도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경기 전 밤새 술 마시고 경기 시작 직전에야 나타나 분위기를 저하시키고 경기를 망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는 데 있다.

퍼거슨 감독은 술 문제를 맨유의 성장을 막는 요소로 파악하고 이에 민감하게 대응하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술에 취해 살았던 팀의 간판 선수 노만 화이트사이드와 폴 맥그라스를 다른 팀에 이적시켰다.

현재 선덜랜드의 감독인 로이 킨도 맨유 선수 시절 술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아일랜드 친구들과 감독 모르게 술을 마셔도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퍼거슨 감독으로부터 호통을 들어야 했다고 로이 킨은 자서전인 '킨'에서 밝혔다. 퍼거슨 감독은 전국에 퍼져 있는 정보망을 이용해 선수들이 어디서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퍼거슨 감독이 맨유로 부임하기 전에 생계 유지를 위해 스코틀랜드에서 술집을 운영했다는 사실이다.

지금의 맨유를 이끌고 있는 웨인 루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리오 퍼디낸드 같은 선수도 나이트 클럽 등에서 술 때문에 종종 사고를 친다. 경기마다 선수들의 최고 컨디션을 유도해 내야 하는 감독 입장에서는 여간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술 때문에 은퇴를 앞당겨야 했던 선수도 많다. 2005년 지병인 간경화로 사망한 북아일랜드와 맨유의 전설인 조지 베스트가 대표적인 예이다. 베스트는 알코올중독으로 축구를 그만둬야 했고 59세의 나이에 세상과 이별을 고해야 했다.

영국 런던=방상열 FIFA 에이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