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센 웽거(58). 1996년부터 '무기고' 아스날을 이끌고 있는 세계적 명장이다. 희끗한 백발에 주름 많은 얼굴 때문에 첫 인상은 다소 신경질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의 별명은 '그라운드의 교수'다. 실제 그는 'The Professor'란 제목의 자서전을 펴내기도 했다. 웽거 감독은 1998년 아스날 지휘봉을 잡은 지 2년 만에 리그와 FA컵을 동시에 석권했다. 지난 2003~2004 시즌에는 프리미어리그 '무패 우승'이란 신화도 창조했다.

국내 축구팬들에게 웽거 감독은 꽤 익숙한 인물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과 자주 설전을 주고받았기 때문. 그러나 정작 그가 더 유명해진 것은 'A매치 비판론' 때문이다. 웽거 감독은 지난해 말 각국의 국가대표팀 감독들을 '자동차 도둑'이라고 몰아세웠다. 멀쩡한 선수들을 데려다가 마음대로 부리고 아무런 보상도 없이 내다 버린다고 꼬집었다. 빡빡한 일정에다 치열한 경기 탓에 A매치 이후 몸을 다쳐 돌아오는 선수가 많은 데 대한 클럽 감독으로서의 불만이었다.

웽거 감독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클럽과 국가대표팀 사이에는 언제나 긴장이 생길 수밖에 없다.

클럽은 적게는 수억 원에서 많게는 수십억 원의 몸값을 주고 선수를 데려다 쓴다. 선수들의 몸은 클럽 입장에선 '재산'이나 다름없다. 때문에 가능하면 선수들이 클럽에 도움이 되는, 즉 리그 경기에서 몸값을 해주길 기대한다.

하지만 '축구 전쟁'이라고까지 불리며 각국의 자존심이 걸린 A매치를 무시하기도 힘든 게 현실이다. 선수들에게도 국가를 대표하는 것은 대단한 명예다. 하루에 1억3000만 원을 버는 잉글랜드 축구의 스타 데이비드 베컴조차도 지난 독일월드컵 이후 대표팀에서 탈락하자 큰 실망감을 드러냈다.

한국 축구가 새해 벽두부터 시끄럽다. 올림픽대표팀 차출을 둘러싼 프로구단과 축구협회의 갈등이 결국 폭발했기 때문이다.

우려도 있으나 오히려 잘됐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어차피 한국 축구가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 거쳐야 할 성장통이라는 것이다. 이 참에 대표팀 중심의 축구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 'FC한국'에만 열광하는 '애국자'들은 섭섭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진짜 한국 축구를 사랑하는 팬들 입장에서는 K-리그가 이제 바로 서 주길 기대한다.

국제대회 성적을 내세워 선수들을 몽땅 끌어다 '장기합숙'을 시키고 외국인 감독을 불러서 하는 '족집게 과외'는 그만둘 때가 됐다. 클럽에서 선수들이 실력을 닦은 뒤 최고의 선수들을 뽑아 대표팀을 구성하는 시스템을 빨리 정착시켜야 한다. 시행착오를 각오하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