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침공 부추긴 사상가의 딸 폭사
- 크름반도 잇단 의문의 공격 등
- 러시아선 우크라 배후로 지목
- 오늘 우크라 독립기념일 긴장
- 양국 軍사상자 총 15만여 명
- 식량위기로 세계 물가도 급등

24일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6개월을 맞았다. 8월 24일은 우크라이나의 31주년 독립기념일이기도 하다. 동부 돈바스(도네츠크·루한스크주)를 중심으로 한 교전이 교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 최근 러시아가 점령한 크름(크림)반도와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 인근에서 ‘의문의 폭발’이 발생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배후로 지목해 확전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진다.

지난 2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시민이 24일 독립기념일을 앞두고 ‘야외 군사 박물관’으로 변신한 수도 키이우 거리에서 탱크 등 러시아 군사 장비 전시품을 관람하고 있다. UPI 연합뉴스

■잇단 기습당한 러시아

텔레그래프 등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전쟁 발발 6개월 직전인 지난 20일(현지시간) ‘푸틴의 정신적 지주’인 알렉산드르 두긴의 딸 다리야 두기나(30)가 밤 9시30분께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 외곽에서 도요타 SUV 차량을 몰고 가다 의문의 폭발로 사망했다. 러시아는 애초 두긴이 문제의 차량을 운전할 예정이었던 점에 미뤄 두긴을 노린 고의적 공격으로 본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은 두기나가 운전한 차량에 폭발물을 설치한 용의자로 우크라이나 비밀요원을 지목했다.

두긴은 러시아제국의 부활을 강조하고 우크라이나 침공의 명분이 된 ‘유라시아리즘’을 창시한 극우 사상가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두기나도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아버지의 사상을 두둔했다. 우크라이나가 공격 주체가 맞는다면 이번 차량 테러는 전쟁 후 러시아 수도가 공격받은 첫 사례로 기록된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우리는 러시아 같은 범죄국가도, 테러국가도 아니다”며 부인했다. 배후를 둘러싼 논란은 국제사회로 확대됐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22일 성명을 내고 “두기나의 사망과 관한 모든 것을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앞선 지난 9일과 16일 크름반도에서도 두 차례 의문의 공격이 있었다. 9일엔 사키 공군 비행장 폭발로 1명이 숨지는 등 러시아 흑해함대가 큰 타격을 입었고, 16일엔 크름 북부 잔코이 지역 마이스케 마을에 있는 군부대 탄약고에서 폭발이 발생, 민간인 최소 2명이 다쳤다. 러시아 측은 특히 16일 두 번째 폭발 때 “사보타주(고의적 방해)로 인한 것”이라고 해 우크라이나를 배후로 지목한 바 있다.

크름반도에 이어 본토까지 게릴라성 공격이 이어지자 러시아 매파를 중심으로 전쟁 발발 6개월이 되는 날이자 우크라이나 독립기념일인 24일 국제사회에 러시아의 힘과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이에 이날 러시아가 전세를 뒤집을 대규모 공격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최근 정례 연설에서 “이번 주 러시아가 더 끔찍한, 더 잔혹한 짓을 벌일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로이터통신은 미국 정부 관리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민간 인프라와 정부 시설을 며칠 내 공격하기 위한 활동을 강화한다는 첩보를 입수했다”고 밝혔다고 22일 보도했다.

■전쟁 반년, 피해 눈덩이

올해 2월 24일 러시아가 ‘특별 군사작전’을 선언하며 20만 명에 가까운 병력으로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한 지 벌써 6개월이 지났다. 단시일 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점령하고 괴뢰(친러시아) 정부를 세워 끝날 것 같았던 전쟁은 장기화했다. 전쟁 초반 키이우 점령에 실패한 러시아는 북부 전선을 포기하는 대신 동부와 남부 전선을 중심으로 전장을 다시 꾸렸다. 북부전선에서 물러나면서 부차 등 키이우 인근 소도시에서 민간인이 참혹하게 학살된 현장이 드러나 세계를 경악에 빠뜨리기도 했다. 러시아는 최후의 항전을 벌이던 동남부 요충지 마리우폴을 지난 5월 끝내 점령, 2014년 강제 병합한 크름반도와 육로로 이었고 지난달엔 돈바스 루한스크주를 완전히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후 러시아의 힘이 빠지면서 동남부 전선에서의 교전은 계속 공방 중이다. 영국 국방부는 지난 한 달간 러시아가 돈바스에서 전진한 거리가 평균 3㎞에 못 미치는 것으로 분석했다. 이 사이 우크라이나는 크름과 맞닿은 남부 요충지 헤르손 수복에 나서는 등 반격을 펼쳤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인명 피해도 극심하다. 미국 국방부는 최근 러시아군 사상자가 8만 명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우크라이나군도 러시아에 버금가는 피해를 봤을 것으로 추정돼 양국을 합하면 군 사상자 규모는 15만여 명이나 된다. 민간인 사망자는 1만2000여 명인 것으로 보고된다. 또 우크라이나인 1000여만 명이 피란길에 올라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난민 사태로 평가된다. 킬 세계경제연구소와 미국 주간지 뉴스위크가 집계한 결과 지금까지 전비는 양측을 합해 3100억 달러(약 414조 원)에 달한다. 우크라이나 전 국토가 황폐화해 전후 복구 비용도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데니스 슈미갈 우크라이나 총리는 초토화된 경제 복구를 위해 7500억 달러(약 980조 원)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전쟁은 양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고통으로도 이어진다. 주요 곡물 생산국인 양국의 전쟁 여파로 세계 식량위기가 고조되고, 에너지 가격까지 폭등해 지구촌은 40년 만의 기록적 인플레이션에 허덕인다. 영국은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1년 전보다 10.1% 상승해 주요 7개국(G7) 중에서 처음으로 두 자릿수 물가상승률을 기록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