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를 부도에 빠뜨려 국민의 사퇴 압력을 받아온 고타바야 라자팍사 스리랑카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전격 사임했다.

AFP통신 등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마힌다 야파 아베이와르데나 스리랑카 국회의장은 이날 TV 성명을 통해 “라자팍사 대통령이 오는 13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전해왔다”고 밝혔다. 아베이와르데나 의장은 “대통령의 이번 결정이 평화로운 권력 이양을 보장하기 위해 이뤄졌다. 이에 나는 일반 대중에게 법 존중과 평화 유지를 요청한다”고 말했다. 라닐 위크레메싱게 총리도 대통령과 함께 사임하기로 했다. 아베이와르데나 국회의장은 이날 각 정당 대표에 의해 임시 대통령으로 추대됐다.

이 같은 발표는 반정부 시위대가 대통령 집무실·관저 및 총리 자택을 점거하며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등 시위가 격화하자 각 정당 대표가 대통령과 총리의 사임을 공식적으로 요구한 뒤 나왔다. 2019년 11월 취임한 라자팍사 대통령의 임기는 2024년까지였지만 3년도 채우지 못하고 중도 낙마하게 됐다. 정당 지도부는 조만간 의회를 소집, 대통령 직무대행을 공식 선출하고 임시 거국정부 구성 및 선거 일정 발표를 추진할 계획이다.

스리랑카의 최악 경제난이 직격탄이었다. 2019년 부활절 테러와 코로나19 여파로 주력 산업인 관광업이 붕괴하고, 중국 주도의 일대일로 사업 참여 등으로 대외 부채가 급증했으며, 지나친 감세로 재정 정책까지 실패한 것이 원인이었다. 급기야 스리랑카가 지난 5월 1948년 영국에서 독립한 이래 처음으로 공식적인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태에 빠지자 라자팍사 대통령은 야권과 국민 다수로부터 사임 압박을 받아왔다.

대통령의 사퇴로 2005년부터 스리랑카 정국을 사실상 장악해온 라자팍사 가문이 정계에서 퇴출당할지도 관심사다. 라자팍사 대통령의 형 마힌다는 2005~2015년 대통령을 지내면서 독재에 가까운 권위주의 통치를 주도했다. 고타바야 현 대통령은 당시 대통령이 겸임하는 국방부 장관 아래 차관을 맡았다. 마힌다가 2015년 대선에서 낙선, 3선에는 실패했지만 동생 고타바야가 2019년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라자팍사 가문은 다시 정계를 장악했다. 마힌다는 총리에 올랐지만 반정부 시위 격화로 지난 5월 사임했다. 내각에 있던 같은 가문 출신 장관 3명도 모두 사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