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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중국특색사회주의 기원 찾아서 <상> 농촌에서 길을 찾다

노동자 부족했던 시대 … 빈농 주체로 사회주의 혁명 완성

  • 신봉수 고려대 중국학연구소 연구위원
  •  |   입력 : 2021-06-29 19:35:50
  •  |   본지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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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원 50여 명으로 미미한 출발
- 마오쩌둥, 中을 자본주의 아닌
- 농촌경제 의지 반봉건사회 진단
- 도시노동자 전체 인구 1% 안돼
- 농민혁명이 현실적 대안 판단

- 소련 유학파, 시골 산적떼 조롱
- 노동자계급 중심의 혁명 강조

- 마오쩌둥은 무산자 의지 빌려
- 1949년 내전 승리로 이끌며
- 28년 만에 中지배 창대한 결말

- 공식 창당일은 7월 1일이지만
- 문건 분실 탓 정확한 날짜 모호

강대국 중국은 도전인가 기회인가. 개인이나 집단, 지역이 처한 환경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다. 국제적으로 강대국 중국을 도전으로 보는 이들은 미국과의 패권다툼이 전쟁으로 이어지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점친다. 반대로 기회로 보는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 집권 시절처럼 초강대국 미국이 국제 질서를 자신의 입맛대로 좌지우지하는 것을 견제할 수 있다고 본다. 국내적으로 강대국 중국을 도전으로 보는 이들은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지지하는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강조하면서 일당독재체제인 사회주의 중국과 거리 두기를 원한다. 기회로 보는 이들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국에 매년 수천만 달러의 무역흑자를 가져다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본다.
   
1949년 10월 1일 중국 베이징 텐안먼(천안문)에서 마오쩌둥이 “중화인민공화국 중앙인민정부가 오늘 성립했다”고 선포하고 있다. 국제신문DB
강대국 중국이 한반도의 평화는 물론 한국에 기회가 되도록 만드는 것은 우리의 노력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중국은 정치적으로 한반도의 안보에 치명적인 북핵문제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싶어 한다. 경제적으로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1위인 미국의 턱밑에 도달했다. 더구나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는 전망의 시간표도 점점 빨라지고 있다. 2017년에 미국 미디어그룹인 블룸버그가, 2020년에는 영국 경제경영연구소(CEBR)가 2028년에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고 전망한 적이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중국의 추월 시간표는 단축될 것이라는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아 ‘중국특색사회주의의 기원을 찾아서’라는 기획은 강대국 중국이 한국에 기회가 되도록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그러려면 강대국 중국을 양자택일의 논리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위협으로 보는 미국의 입장이나 중국특색사회주의를 강조하는 중국의 입장에서 벗어나 한국의 입장에서 비판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한, 중국의 국가 발전은 사회주의에 자본주의를 접목한 공산당이 일당독재체제를 유지하는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다. 그래서 양자택일이 아닌 한국의 시각에서, 그리고 창당 100주년을 맞은 공산당을 통해 강대국 중국을 분석해야 한다.

이번 기획시리즈는 중국식 발전 과정을 세 시기로 나눠 살펴본다. 첫 번째 시기는 1921년 공산당 창당부터 1949년 사회주의 중국 수립까지로, 중국의 사회주의혁명이 노동자혁명이 아닌 농민혁명이 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농촌에서 길을 찾다’를 제목으로 다룬다. 두 번째 시기는 1949년 사회주의 중국이 수립된 이후 1976년 마오쩌둥이 사망하던 시기까지로, 마오쩌둥이 단행한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이 실패했던 원인을 ‘중국의 길에서 방황하다’는 주제로 다룬다. 세 번째 시기는 1978년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단행한 이후 현재까지로, ‘날아 오른 중화제국의 유령’이라는 주제로 사회주의 계획경제에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접목해 비약적인 국가발전을 이룩한 과정을 추적한다.
   
■창당기념일 논란

1921년 7월 23일. 중국 상하이 프랑스 조차지에 있는 보원(博文)여자학교에 10여 명이 모여들었다. 중국공산당 창당대회를 열기 위해 모인 이들은 이날 창당선언문의 초안을 심사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해 회의는 며칠 동안 이어졌다. 한때 회의 장소가 변경돼 상하이 대표였던 리한쥔(李漢俊) 집에서 열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를 사전에 인지한 경찰이 현장에 들이닥쳐 회의는 무산됐다.

경찰의 감시로 상하이에서 적절한 회의 장소를 물색하지 못하자 상하이 대표였던 리다(李達)의 부인이 나섰다. 그녀는 상하이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자신의 고향인 저쟝(浙江)성 쟈싱(嘉興)의 난후(南湖)를 소개했고, 회의는 난후에서 나룻배를 빌려 속개됐다. 최종적으로 창당선언문이 채택된 데 이어 천두슈(陳獨秀)가 서기로 임명되면서 지도자 인선도 마무리돼 창당대회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아무도 정확히 기억 못 해”

   
지난 18일 중국 상하이에 있는 중국 공산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 기념관에서 관람객들이 마오쩌둥(왼쪽 여섯 번째)을 비롯한 창당 회의 참석자의 모습을 형상화한 동상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 공산당은 공식적으로 7월 1일을 창당 기념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최근 발굴된 다양한 자료는 실제 창당대회가 7월 23일 열렸음을 보여준다. 중국 공산당이 창당일을 놓고 혼란을 빚게 된 이유는 대장정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934년 대장정을 시작하면서 국민당의 추격전을 피해 퇴각하던 공산당이 창당과 관련된 문건을 대부분 분실했기 때문이다. 당사연구실의 부주임을 지냈던 장바이쟈(章白家)는 참가자의 부정확한 기억에 의존해 창당기념일을 정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다음과 같이 술회했다. “창당대회가 열린 날을 누구도 정확히 기억하지 못 했다.”

■농촌농민혁명

중국 공산당이 창당될 당시 당원 수는 50여 명에 불과했다. 당시 중국의 인구가 4억여 명인 점을 고려하면 미미한 출발이다. 그렇지만 중국 공산당은 코민테른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창당될 수 있었다. 코민테른은 소련이 전 세계의 공산화를 위해 모스크바에 설립한 제3인터내셔널로 한반도는 물론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에 사회주의를 확산시키기 위해 활동했다.

공산당은 창당 직후 코민테른의 중재로 국민당과 합작했다. 합작을 주도한 국민당의 쑨원(孫文)이 사망하자 권력은 장제스(蔣介石)에게 넘어갔다. 쑨원과 달리 장제스는 공산당을 탄압해 1차 국공합작은 결렬됐다. 1차 국공합작이 파열음을 내고 결렬됐지만, 일본이 중국을 본격적으로 침략하면서 두 번째 국공합작이 성사됐다. 2차 국공합작은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 패하면서 끝이 났다. 한때 미국의 중재로 공산당과 국민당이 협상을 벌였지만, 내전을 막지는 못했다. 1949년 내전을 승리로 이끈 공산당은 창당 이후 28년 만에 중국을 지배했다. 국민당은 패잔병을 이끌고 대만으로 넘어가야 했다. 시작은 비록 미미했으나 끝은 실로 창대했다고 할 수 있다.

■현실적 대안

중국 공산당이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은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도시노동자혁명이 아닌 농촌농민혁명전략을 선택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선택은 마오쩌둥(毛澤東)이 주도했다. 마오쩌둥은 자본주의가 발전하지 못한 중국은 여전히 농촌경제에 의지하는 반봉건사회라고 진단했다. 그리고 노동자계급이 전체 인구의 1%도 안 되는 중국의 상황을 감안할 때 노동자혁명보다 농민혁명이 훨씬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판단했다.

■산적떼와 녹음기

   
중국 공산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 기념관 앞에서 방문객들이 공산당 기를 앞에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마오쩌둥은 장제스가 반공정책을 펴자 당의 중앙지도부와 달리 일찍부터 근거지를 농촌으로 옮겼다. 당 중앙이 상하이와 같은 대도시에서 지하활동을 할 때 마오쩌둥은 후난(湖南)성에 있는 징강산(井崗山)을 해방구로 삼아 활동했다. 그리고 빈농이 가장 혁명적이라고 주장하면서 중국의 사회주의혁명은 농촌에서 도시를 포위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마오쩌둥의 농촌농민혁명을 반대했던 이들은 소련에서 유학한 이른바 볼셰비키들이었다. 왕밍(王明)이 이끈 소련 유학파는 시골에서 무슨 마르크스레닌주의냐는 핀잔과 함께 징강산에 해방구를 건설한 세력을 ‘산적떼’라고 조롱했다. 소련 유학파는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따라 도시에서 노동자가 주도하는 것이 사회주의혁명이라고 했다. 그러나 마오쩌둥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교조적으로 추종하는 소련 유학파의 주장을 ‘낡은 녹음기’에 비유했다.

■“중국혁명 원하지 않아”

중국의 사회주의혁명전략을 놓고 벌어진 마오쩌둥과 소련 유학파의 갈등은 결국 당내 권력투쟁으로 발전했다. 마오쩌둥과 소련 유학파의 권력투쟁은 스탈린에 의해 이미 씨앗이 뿌려졌다. 레닌이 사망한 이후 트로츠키와의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스탈린은 중국의 사회주의혁명은 시기상조라고 했다. 중국은 자본주의가 충분히 발전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부르주아혁명이 우선이라고 했다.

스탈린은 장제스의 반공정책으로 1차 국공합작이 결렬됐음에도, 당시 공산당 최고지도자였던 천두슈에게 분열의 책임을 물어 숙청하기도 했다. 농촌농민혁명을 주장했던 마오쩌둥 역시 권력투쟁 과정에서 숙청과 복권을 반복했다. 1949년 공산당은 최종적인 승리를 위해 양쯔강 도하작전을 준비 중이었다. 패색이 짙어진 장제스가 마오쩌둥의 공산당에 평화회담을 제의했을 때 스탈린은 이를 수용하라고 요구할 정도였다. 훗날 국경분쟁으로 중소 관계가 악화됐을 때 마오쩌둥은 “스탈린은 중국의 사회주의혁명을 원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조건이 아닌 의지

마오쩌둥은 마르크스주의자로서 토대인 객관적 물질적 조건이 상부구조인 사회체제를 결정한다는 유물론적인 입장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생산양식의 변화에 따라 자본주의는 반드시 멸망하고 사회주의가 도래할 것이라는 역사유물론도 수용했다. 그렇지만 마오쩌둥은 중국이 처한 딜레마를 해결해야 했다. 당시 중국의 객관적인 조건은 자본주의가 발전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농촌경제에 의지하고 있던 반봉건사회였다. 자본주의가 발전하지 못해 혁명을 주도할 노동자 수도 턱없이 부족했다. 마오쩌둥은 이런 딜레마를 프롤레타리아(노동자) 계급에만 의존하지 않고 지주와 자본가를 타도하겠다는 무산자(농민노동자) 계급의 혁명의지를 통해 해결하려고 했다.

마오쩌둥은 유물론자였지만, 중국이 처한 상황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는 중국에서 자본주의가 성숙할 때까지 입을 열고 감이 떨어지길 기다릴 수 없었다. 그래서 혁명을 주도할 무산자계급의 의지로 중국 사회주의혁명을 완성하려고 했다. 영국 런던대학의 슈람(S. Schram)은 마오쩌둥 사상에 담긴 이런 특징에 주의주의(主意主義, Vountarism)라는 이름을 붙였다.

■꿈은 이루어진다

주의주의는 객관적인 지식이나 조건보다 인간의 의지에 의존하는 것이다. 마오쩌둥 사상의 주의주의적인 특징은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 시기에 그가 즐겨 인용했던 고사인 우공이산(愚公移山)과 즐겨 사용했던 말인 일궁이백(一窮二白)에서 도드라지게 드러난다. 우공이산은 손으로 산을 옮긴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일궁이백은 가난하고, 백지 상태와 같은 인민이 오히려 중국 혁명에 도움이 된다는 뜻으로 사용했다.

마오쩌둥은 미미하게 출발했던 공산당이 국민당과의 내전에서 승리해 끝을 창대하게 마무리 지은 경험이 있다. 이런 경험은 마오쩌둥에게 꿈은 실현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문화대혁명은 이런 자신감의 또 다른 표현이다. 그는 모든 인민이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주의자가 되면 계급과 착취 없는 공산사회가 완성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오쩌둥에게 꿈은 현실적인 조건과 관계없이 의지만 있으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신봉수 위원은

   
▷동아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중국 베이징대 정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국제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 성균관대 동아시아 학술원 연구교수, 고려대 중국학연구소 연구교수를 지냈다. 지금은 고려대 중국학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마오의 사회주의 중국과 대안적 근대성’, ‘서양정치사상 중심의 정치발전론에 관한 비판적 고찰: 마오쩌둥 사상과 덩샤오핑 이론’, ‘국제규범에 대한 중국의 전략적 사회구성: 주권, 민주주의’ 등이 있다. 지은 책으로 『마오쩌둥-나는 중국의 유토피아를 꿈꾼다』(한길사), 『중국은 제국을 꿈꾸는가』(프로네시스), 『정치 혁명』(나무발전소), 『현대와 중국:충돌 굴절 변용』(나무발전소, 출간 예정) 등이 있다.

신봉수 고려대 중국학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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