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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의 중국인 이야기 <47> 성복지전 승리로 패자 된 문공

문공, ‘충신 개자추’ 산에서 나오게 하려 불 냈다가 되레 목숨 빼앗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1-12 19:47:29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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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나라 왕 오른 문공, 신하 잃다

- 즉위 뒤 보필한 이들에게 벼슬
- 정작 공로 가장 큰 개자추 잊어
- 등용 위해 은둔한 곳 찾아 사과
- 산불 냈지만 모친과 함께 죽어

# 춘추시대 두 번째 패자 문공

- 승승장구하던 진, 초나라와 전쟁
- 3사 후퇴 약속 지키려 진격 않아
- 이에 화난 적 장수 역습해 대승
- 감동한 주 왕실, 진 패자국 칭해

# 진 멸망… 조·한·위나라 탄생

- 문공 죽은 뒤 후계자 문제로 혼란
- 세 가문 반란 일으켜 권력 잡아
- 주나라, 그들에 각각 제후국 인정

진(晋)의 군주로 문공(文公)이 즉위하자 지난 정권에서 권세를 누렸던 여성과 극예 등이 반란을 일으켰다. 문공은 진(秦) 목공의 도움을 받아 진압하고 도망쳤던 어(圉)까지 죽인 뒤 내정을 정비했다. 나라가 안정되자 논공행상을 실행했는데 개자추(介子推)를 빠트렸다. 그는 문공이 적나라로 피신할 때부터 보필하며 위나라 국경 부근에서 식량이 떨어져 굶주림에 시달릴 때는 자신의 허벅다리 살을 베어 먹이기도 했던 충신이었다. 개자추는 논공에서 빠지자 홀어머니와 함께 면산(綿山:산서성 진중(晉中)시 소재)으로 들어갔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문공이 사람을 보내 사과하며 돌아오라 했지만 듣지 않았다. 문공은 그가 산에서 나오게 할 생각으로 불을 질렀는데 개자추 모자는 불에 타 죽고 말았다. 크게 후회한 문공은 소사(燒死)한 그의 기일인 청명에는 뜨거운 음식을 먹지 않았으니 청명절 한식(寒食)의 유래가 되었다.
   
진나라 문공이 패자로 인정받은 천토회맹을 재현한 석조물. 충신 개자추가 논공행상에서 제외되자 어머니를 모시고 산세 험한 면산으로 들어갔다.
■성복에서 3사후퇴 약속 지키고 승리

문공이 즉위한 얼마 뒤 주 왕실에서 양왕의 동생이 반란을 일으켰다. 정나라로 피신한 양왕은 문공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아직 안정을 찾지 못한 터라 머뭇거렸다. 이듬해, 진(秦) 목공이 구원의 군사를 일으키자 문공은 즉시 주나라로 진격해 왕의 동생을 진압하고 양왕을 복귀시켰다. 양왕은 보답의 뜻으로 하내(河內)와 양번(陽樊) 두 땅을 문공에게 할양했다.

문공 4년, 이번에는 초(楚) 장왕의 침공을 당한 송나라가 도움을 청해왔다. 당시 초나라는 조(曺), 위(衛)와 우호적인 관계였는데 이들 두 나라는 진(晋)과 송(宋) 사이에 있었고 문공의 망명 시절 박대한 나라였다. 숙부 호언이 계책을 내놓았다. “우리가 조와 위를 공격하면 초(楚)는 두 나라를 돕기 위해 송(宋)에 대한 포위를 풀 것입니다.”

진(晋)의 군대는 위(衛)를 공격해 오록(五鹿) 지방을 점령하고 수도를 압박해 그 군주를 도망치게 했다. 이어서 조(曺)를 공격해 자신을 냉대했던 군주를 붙잡아 크게 꾸짖으니 옛날의 치욕을 씻을 수 있었다. 또한 이 무렵 진(秦)에서 얻은 다섯 아내와 적나라에서 헤어졌던 부인이 돌아와 7년 만에 해후했다.

초 성왕은 조와 위가 함락되자 송에 대한 포위를 풀고 철수하려 했다. 당시는 중원을 넘보는 초의 위협이 거세 그를 저지하면 패자로 인정받을 정도로 군사력이 막강했다. 하지만 보급로가 길어지면 불리한 데다 초 성왕은 문공을 흠모했기에 그와 겨루는 것을 피하려는 뜻이었다. 그런데 문공이 초에 머무를 때 반감을 보였던 장군 자옥이 강경하게 철수를 반대하며 진(晋)을 칠 것을 주장했다. 화가 난 성왕은 적은 병력만 자옥에게 내주며 공격을 허락하고 자신은 철수했다.

마침내 초와 진의 군대가 성복(산동성 서남부 하택(荷澤)시)에서 마주치니 이른바 성복지전(城濮之戰)이다. 그때 진(晋)의 연합군은 제(齊)·진(秦)·송(宋)이었고, 초의 연합군은 진(陳)·채(蔡)·허(許)·정(鄭)이었다. 그런데 문공은 공격이 시작되기도 전에 전군을 후퇴시켰다. 장왕에게 했던 3사 후퇴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사흘 연잇는 후퇴에 불만이 터져 나오자 호언이 밝혔다. “이것은 신의와 정의의 싸움이다. 주군께서 옛 약속을 지키는 것이니 마땅히 초도 이에 응해 군사를 철수시켜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자옥은 공격을 개시했다. 이에 문공은 말에 호랑이 가죽을 씌운 전차로 응전하니 초나라 말들이 놀라 나뒹굴고 달아나 첫날의 전투는 싱겁게 끝났다. 다음날 진(晋)의 군대는 진격하다가 두려운 척 말머리를 돌리는데 전차 뒤에는 나무섶을 매달고 있었다. 그 먼지가 자욱해지니 초의 군사들은 시야를 확보하지 못해 허둥거렸다. 그때 기습부대가 양쪽 옆구리를 치며 협공하니 초의 군대는 대패했다. 자옥은 전멸에 가까운 패배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니 문공은 큰 위협이 사라졌다며 기뻐했다.

■천토에서 회맹을 주재하다

   
면산 앞에 서있는 개자추 모자상.
진(晋)의 연합군이 개선하자 주 양왕은 천토(踐土:하남성 원양(原陽)현)까지 마중 나왔다. 문공은 양왕을 위한 임시 궁전을 짓고 포로와 전리품을 바쳤다. 양왕은 문공을 패자로 인정하는 의례용 수레, 붉은 옻칠을 한 활과 화살, 검은 옻칠을 한 활과 화살, 수수로 담근 술 한 동, 친위대 3백 명을 하사했다. 문공은 세 번 사양하는 예를 갖춘 뒤 하사품을 받고, 제 · 노 · 송 · 채 · 정 · 위 · 거나라 제후들과 회맹의 의식을 치르니 이를 ‘천토회맹’이라 한다. 이로써 문공은 당당한 당대의 패자가 되었다.

귀국한 문공은 논공에서 전투를 지휘한 선진보다 호언을 제1 공로로 포상했다. 이의가 있자 문공은 이런 말로 모두를 설득했다. “호언은 신의를 중요하게 여겼고, 선진은 계책으로 승리했다. 전쟁의 승리는 눈앞의 이익이지만 신의는 먼 앞날을 내다보는 것이다. 영원한 덕이 큰 것이기에 제일의 공으로 하였다.”

문공 7년, 문공은 진(秦) 목공과 연합하여 정나라를 공격했다. 명분은 성복지전에서 초의 편에 섰다는 것이었지만 문공의 유랑시절 냉대한 나라였다. 수도를 포위한 문공은 옛날 자신을 죽이라 했던 숙첨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숙첨이 자결하자 정 군주는 그의 사체를 내주고 용서를 빌었다.

2년 뒤 문공은 세상을 떠났다. 62살, 너무 늦은 나이에 즉위했기에 재위 기간은 9년에 불과했지만 공은 실로 컸다. 양왕을 복위시키고, 초의 중원 침탈을 저지해 당대의 패자가 되었지만 그것은 군사력보다는 신망의 승리였다. 초 장왕이 그를 흠모해 먼저 철수하지 않았다면 결코 장담할 수 없는 전쟁이었다. 또한 떠오르는 서북의 강자 진(秦) 목공의 호의도 큰 역할을 했으니 낭만의 시대가 아니라 그의 인품과 신망이 낭만을 이끌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내치도 빛났다. 인재를 발굴해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제도를 정비해 내실을 다지니 진(晋)은 문공 사후에도 다른 제후국과 달리 한동안 강성함을 지킬 수 있었다.

   
■전국(戰國) 초기, 조·한·위에 삼분

문공의 뒤를 이은 아들 환(歡)이 7년 만에 죽자 또 재위를 두고 소란이 일었다. 태자 이고(夷皐)가 어린 것이 빌미였고 권력을 탐하는 권세가가 나선 까닭이다. 더하여 그 모친까지 끼어들며 더욱 복잡해졌지만 정경 조돈(趙盾)이 잘 수습해 태자를 재위에 올리니 26대 영공(靈公)이었다. 그는 매우 황음무도했지만 조돈 등이 정무를 잘 처리해 나라가 위태롭지는 않았다. 그러나 영공은 조돈의 충간을 못 마땅히 여겨 죽이려다 오히려 그의 집안 동생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처럼 자질 없이 핏줄로 대를 잇는 동안 6경(卿)인 한(韓) 위(魏) 조(趙) 범(范) 중행(中行) 지(智)씨의 권세가 제후를 능가할 지경이 되었다.

35대 출공(出公) 때 지백(智伯)이 조 · 한 · 위 씨와 결탁해 범씨와 중행씨의 영지를 분할해 나눠 가졌다. 분노한 출공이 제나라와 노나라에 알려 그들 4경을 공격하려 하자 반란을 일으켰다. 출공은 제(齊)로 도망치던 도중에 죽고 실권을 쥔 지백은 다른 3경에게도 땅을 바치라고 요구했다. 한, 위씨는 만 호의 땅을 내놓았지만 조씨의 양자(襄子)는 거절했다. 이에 지백은 한, 위씨의 군사까지 동원해 조양자를 공격해 진양성에서 대치했다. 불리했던 조양자는 한, 위씨에게 밀사를 보내 ‘조가 망하면 다음은 누구 차례겠소?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린 법이오. 우리가 합쳐 지백을 칩시다.’ 설득했다. ‘순망치한(脣亡齒寒)’의 출전이다.

이제 진은 조, 한, 위 세 가문의 세상이 되었다. 마침내 38대 열공(烈公) 19년, 주나라 위열왕은 그들에게 각각 제후의 칭호를 하사하고, 20년 뒤에는 아예 진(晋)을 멸하고 그 땅을 3분 했다. 춘추를 이은 전국시대 7웅(雄) 중 세 나라가 그들이었다.


◆맹렬한 여성의 삶을 지운 中 역사… 유가사상 통치이념 탓

- 여성 음란·방탕한 존재로 부각, 남성 중심 가치관이 키운 편견
- 베일 속 위대한 업적들 기려야

   
중국 전통악기를 연주하는 여인.
보았지만 여난(女難)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이다. 그렇다고 여성을 내내 반복된 음란과 방탕, 마침내는 망국의 원인으로 매도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사실은 권력으로 너무 많은 비(妃), 부인, 첩을 두었던 남성의 끝없는 욕망이 문제였다, 제대로 감당하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비단 중국 역사에서의 일만도 아니다. 고대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동서를 막론하고 성은 노골적이고 탐욕스러웠으며 억압의 배경이 있었다.

또한 그 원초적 욕망이 이성으로 순화되는 것을 문명화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점은 서양은 신화, 문학, 미술 등으로 성에 대한 많은 기록을, 시정(市井)의 매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남겼다. 과연 중국에서는 권력자의 성만 문란했던 것일까.

중국에도 정나라 시(詩)의 음란함을 비난하는 따위의 기록이 있다. 당시의 시는 요즘 유행가 가사와 비슷했으니 시대상을 알기에는 맞춤하다. 그런데 음란하다 해봐야 ‘그대 날 사랑하고 생각해 주신다면 치마 걷고 진수라도 건너가겠어요’ 하는 정도이다. 물을 건너기 위해 ‘치마를 걷는’ 정도가 무슨 그리 대수라고. 통일제국 진(秦) 이후에는 청루(靑樓), 기녀(妓女) 등의 글귀도 보인다. 성의 매매가 수반되었음이 엿보이는데 굳이 가무, 풍류를 덧씌운 것이다.

회화에서도 여성의 속살을 드러내는 경우는 없었다. 존중하고 아껴 보호하려는 뜻이었을까? 남성의 문란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다.

치열한 백가쟁명(百家爭鳴)의 논쟁이 있고 난 뒤 유가(儒家)가 통치이념으로 자리 잡으면서 여성은 황실과 같은 일부 권력 계층을 제외하고는 모두 은둔의 세상으로 사라졌다. 그렇지만 뒤늦게 찾아낸 상나라 여장군 ‘부호(婦好)’나 영화 ‘뮬란(木蘭)’의 그녀에서 알 수 있듯 기록을 지우고 묵살했던 것이다. 어찌 그녀들뿐이겠는가. 심지어는 근세 청나라 이후 나라와 민중을 위해 치열했고, 그 기록이 버젓함에도 지금껏 외면당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기록하지 않아 은둔이 되었을 뿐 삶 곳곳에서 맹렬했던 그 여인들이 이제 베일 밖으로 나오고 있다. 여전히 구분의 그림자는 짙지만 다시 가려지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 어느 곳의 여성보다 서러웠지만 강인한 그들이야말로 우리가 손잡아야 할 파트너이자 ‘펑요우(朋友:친구)’가 아닐까 싶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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