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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의 중국인 이야기 <39> 허울뿐인 천자의 종주국

제후국 鄭(정나라) 노골적 무시에… 周(주나라) 환왕 정벌 나섰다 화살 맞고 도망쳐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11-17 19:17:18
  •  |  본지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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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울어 가는 서주가 의지한 곳은

- 평왕, 성주 낙읍으로 천도한 뒤
- 제후국들 충성·맹세없는 입조
- 보잘것 없던 정나라만 왕에 충성

# 금가는 주 왕실-정나라의 우정

- 환왕 즉위할 무렵 흉년이 들자
- 정 백성, 왕실 영토 침입해 약탈
- 왕 냉대에 정나라는 제사 거부

# 권위 유지위한 특단 조처에도…

- 노나라까지 입조 거부하며 무시
- 주 왕실, 군사 동원했으나 패배
- 정은 융적 침공받은 제후국 도와
- 군주 ‘정 장공’ 위용 천하에 떨쳐

평왕이 성주(成周) 낙읍으로 동천한 뒤 제후들은 다시 입조한다. 그렇다고 충성과 맹서의 발로로 여긴다면 너무 순진하다. 서로를 견제하는 제후국 입장에서 아직은 천자라는 구심점이 필요했을 따름이다. 무도한 왕이 제거되고 새로운 천자가 들어섰으니 제법 입조의 명분이 서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허울뿐인 입조가 무슨 소용이랴.
   
주나라 환왕은 재위 13년, 작은 제후국들과 연합군을 결성해 정(鄭) 토벌에 나섰지만 정의 장수 축첨의 화살에 맞아 부상하고 결국 대패한다(왼쪽 사진). 이 전쟁이 수갈지전이다. 수갈지전을 그린 화상석(畵像石·오른쪽 사진).
기울어가던 서주가 의지했던 것은 괵과 정(鄭)이었다. 앞서 보았듯 괵은 문제가 많은 제후국이었지만 상을 멸하고 주나라를 세운 무왕이 숙부인 괵중(虢仲)과 괵숙(虢叔)을 각각 동괵(하남성 영양(滎陽))과 서괵(섬서성 보계(寶鷄))으로 봉해 비롯되었으니 왕실의 정통 혈족이며 역사도 오래였다. 그렇지만 여신을 휴왕(携王)으로 옹립함으로써 평왕과는 다시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그럼 정은 어떤 나라였을까.

■비루한 정에 의지하는 비루한 왕실

   
제후국 정(鄭)나라 유지에 세운 신정박물관 내부 모습. 종으로 만든 악기 편종이 눈에 띈다.
정은 선왕 22년, 왕이 자신의 서제(庶弟) 우(友)를 섬서성 화현(華縣)에 환공(桓公)으로 봉한 신흥제후국이었다. 그러니 평왕에게는 종조부가 되었고 유왕 시절에는 재상인 사도(司徒)의 직에 있기도 했다. 더군다나 정은 지리적으로도 지금의 하남성 신정(新鄭)에 위치해 낙읍과 가까웠다. 그런데 정이 화현에서 신정으로 옮긴 사연이 기막히다.

기원전 806년경 제후가 된 정 환공(桓公)은 백성을 잘 다스렸다. 그러나 유왕이 포사에 빠져 정사를 제대로 돌보지 않자 태사(太史) 백(伯)에게 걱정했다. ‘왕실에는 재난이 많은데 내가 어떻게 해야 죽음을 피할 수 있겠소?’

백이 답했다. ‘낙하(洛河) 동쪽과 황하, 제수(濟水:하남성 황하 북쪽의 지류) 이남에서는 편안히 지낼 수 있습니다.’

‘왜 그런가?’

‘그곳은 괵(동괵)과 회(檜)가 가까이 있습니다. 그들 제후는 사사로운 탐욕이 크기에 백성들이 잘 따르고 있지 않습니다. 환공께서 그곳에 살기를 희망하신다면 괵과 회의 군주는 공이 사도의 직에 있으니 기꺼이 토지를 떼어줄 것입니다.’

환공은 다시 물었다. ‘나는 남쪽 장강(長江) 가로 가고 싶은데, 어떻겠소?’

‘옛날 화신(火神)이었던 축융(祝融:신화시대의 인물)의 후예가 지금 장강변 초나라의 주인입니다. 주나라가 쇠하면 반드시 초나라가 흥성할 것입니다. 그리되면 환공에게 이익이 되지 않습니다.’

‘서쪽은 어떻소?’

‘그곳의 백성들은 이익만을 탐하니 오래 살 곳이 못 됩니다.’

백의 답을 들은 환공은 유왕의 허가를 얻어 봉국의 백성을 낙하 동쪽으로 옮기니 과연 괵과 회의 군주가 10여 개 읍을 내놓았다. 신정도 정이 새로 옮겨온 도시라는 뜻이다.

한심하지 않은가. 재상이라는 자가 나라의 위기를 감지하고 제 살 궁리부터 한 셈이니 말이다.

아무튼 그런 환공은 신후의 반란 와중에 견융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그런데도 환공의 뒤를 이은 아들 무공(武公)은 제 아비를 죽게 한 원수의 나라와 손을 잡은 것이다. 또 얼마 뒤에는 폐출되었던 신후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이기까지 했다. 명분은커녕 쓸개가 빠지지 않고서야…….

사실 평왕의 처지를 보더라도 결국은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와 외할아버지 등에 업힌 모양새나 비루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래서일까, 평왕은 그 쓸개 빠진 정의 무공을 사도로 임명해 의지했다.

■제사와 입조를 거부하는 제후국

어쨌거나 무공은 재위 27년 만에 죽고 아들 오생(寤生)이 뒤를 이었으니 장공(莊公)이다. 한편 주 왕실도 평왕이 재위 51년 만에 죽고, 아들이 요절한 까닭에 손자 임(林)이 뒤를 이었으니 환왕(桓王)으로 기원전 719년의 일이다.

환왕이 즉위할 무렵 흉년이 들자 정의 사람들이 감히 왕실의 영토에 침입해 수확물을 약탈하고 농성하는 일이 있었다. 환왕 3년, 정의 장공이 입조하자(3년에 한 번 입조했다. 하지 않으면 반역이다) 예로써 대하지 않았다. 게다가 괵의 제후를 중용했다.

환왕으로서는 왕실은 약하고 제 힘은 조금 강하다고 감히 왕의 영토에서 노략질까지 해간 정을 믿을 수 없다고 여긴 것이리라. 그렇지만 장공의 생각은 달랐다. 들은 바로는 자신의 할아버지 환공 이래로 왕실에 충성을 다해왔고, 특히 아버지 무공은 평왕을 옹립하기까지 했는데 그깟 사소한 일에 이토록 냉대하는 서운함과 원망이 있었다. 대를 건너뛴 환왕과 대를 이은 장공의 생각이 그토록 달랐던 것이다.

당시 제후들에게는 저마다 왕실에 대한 의무가 있었는데 특히 유력 제후인 정은 왕실을 대신하여 태산(泰山)에 제사를 올려야 했다. 그런데 태산은 노의 영역이었다. 이에 태산 가까운 곳의 팽전(祊田:산동성 비현(費縣) 내)을 정에 주어 제사 비용을 마련토록 했다. 또 노에게는 왕실에 입조할 때 머물도록 정의 영역 안에 있는 허전(許田:하남성 허창許昌 내)을 읍전(邑田)으로 주었는데, 서주 2대 성왕 때 시행되어 수백 년을 지켜온 일이다.

환왕 5년, 정과 노는 팽전과 허전을 서로 맞교환해 버렸다. 정은 더 이상 태산에 제사를 올리지 않겠다는, 노는 입조하지 않겠다는 뜻과 다름 없었다. 아무리 냉대가 원망스럽고 왕실이 변변치 않았더라도 너무 노골적인 무시였다. 환왕으로서는 왕실의 권위를 유지하려면 특단의 조처를 해야 했다.

■제후국 장수의 화살을 맞는 천자

마침내 재위 13년, 환왕은 진(陳), 채(蔡), 괵, 위(衛)의 군사들을 동원해 정 토벌에 나섰다. 진은 순임금의 후예로 봉해진 제후국이었고, 채와 괵, 위는 모두 희씨 성을 가진 제후였지만 하나같이 고만고만한 실력의 중소국이었다.

정의 장공은 즉시 제중(祭中), 고거미(高渠彌)를 장수로 삼아 응전했다. 결과는 환왕이 축첨(祝瞻)이라는 자의 화살을 팔꿈치에 맞아 부상당하기까지 하는, 왕실 연합군의 대패였다. 이른바 수갈지전으로 수갈은 현재의 하남성 장갈(長葛)시 인근이다. 패퇴하는 연합군을 추적하려는 축첨을 장공이 제지했다.

‘적장을 범하는 일도 삼가는 법이다. 하물며 천자를 어찌.’ 그리고는 제중을 환왕의 진영으로 보내 병문안했다. 무시는 하면서도 함부로 왕실을 범했다가는 천하 제후가 어찌 나올지 모르니 그저 공격을 받아 방어했을 뿐이라는 명분을 만든 것이었다.

이듬해인 환왕 14년에는 산동성 임치 지역의 제(齊)가 북융의 침공에 시달리고 있었다. 장공은 아들 홀(忽)에게 군사를 주어 제를 지원했고, 북융의 군사를 물리쳤다. 이에 정 장공의 위용이 천하에 널리 퍼졌다. 하지만 그 5년 뒤, 43년간의 재위를 끝으로 세상을 떠나니 천하에 떨친 위용이 무망했다.

군주 한 사람이 죽는다고 곧바로 쌓아온 모든 것이 사라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무릇 뛰어난 군주의 위용에는 그만한 국세(國勢)와 인재 등 여러 뒷받침이 있어야 하는 법이니 말이다. 그러니 장공의 후예 또한 그를 바탕으로 더 큰 위용을 쌓아갈 수 있는 일이었다. 과연 정의 위용이 어떻게 될지는 뒤에 다시 보도록 하자.

   

# 전국시대 한여름 서리, 5년간 가뭄… 역사 속 기상이변 기록들

- 당시 편찬된 ‘죽서기년’에 담겨
- 온난·한랭기 재앙으로 여겨져
- 최근 베이징 등 미세먼지 극심
- 폐·기관지 질환자 급격히 늘어

‘효왕 7년 겨울에 큰비와 우박이 쏟아졌다. 장강과 한수가 얼고, 소와 말이 얼어서 죽었다.’

‘이왕 7년 겨울에 비와 우박이 쏟아졌는데 그 크기가 숫돌과 같았다.

‘여왕 22년, 가뭄이 크게 들었다.’ 이 가뭄은 여왕 26년까지 계속됐다.

‘유왕 4년 6월, 한여름 서리가 내렸다.’

   
미세먼지가 400㎍/㎥ 정도인 스모그에 덮인 천안문. 500㎍/㎥가 넘으면 아파트 4층에서 길 가는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다.
전국시대에 편찬되었다는 ‘죽서기년(竹書紀年)’의 기록이다.

‘유왕 2년(BC 780년), 도성과 부근의 삼천(三川:위수(渭水), 경수(涇水), 낙수(洛水)) 유역에 큰 지진이 발생했다. …… 이 해에 삼천이 말랐고 기산(祁山:섬서성 보계시 소재)이 무너졌다.’

‘사기’ ‘주본기’의 기록으로 나라가 망할 조짐을 하늘이 먼저 알아 경고했다는 뉘앙스다. 알 수 없는 하늘의 재앙! 두려움은 점점 하늘의 아들이라는 ‘천자’를 향한 의심과 원망으로 변해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황하 유역 하, 상, 서주시기 유적에서는 상아, 코뿔소 등의 뼈와 함께 가공된 상아 유물이 다수 발굴된다. 코끼리나 코뿔소, 물소는 물론 오늘날 베트남, 미얀마 등지에서 서식하는 죽서(竹鼠:개만 한 크기의 쥐의 일종), 맥(貊:포유류의 맹수) 등의 뼈 무더기는 당시 황하 유역의 기후가 오늘날보다 최소한 평균 섭씨 2∼3도 높은 데다 다습하였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또한 호랑이, 표범 등의 뼈도 발견되고 사슴 등 초식동물의 뼈는 무더기로 발굴된다. 이는 당시 황하 유역 중원지역이 오늘날 열대 삼림 지역과 비슷한 자연환경이었음 말해준다. 과학적으로도 신석기시대 후기부터 기원전 1000년경까지 대략 5000여 년간의 중국 기후를 제1차 온난기로 분류한다.

그런 기후 환경에서 황하보다 훨씬 남쪽의 장강과 한수가 얼어붙었다는 것은 엄청난 기상이변이 아닐 수 없다. 제1차 온난기가 끝나고 제1차 한랭기가 도래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 기후 변화라는 인식이 없었던 사람들에게는 기이한 재앙으로 받아들여졌다. 다행히 소빙하기에 해당하는 제1차 한랭기는 짧게 끝나고 평왕 원년인 기원전 770년경부터 다시 온난다습한 제2차 온난기가 도래했다.

일상에서 느끼는 섭씨 2, 3도의 차이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평균기온 2, 3도는 밀림을 건조한 초원으로 만들고, 매머드(맘모스)를 얼음의 동토에 묻어 멸종시킬 수도 있다.

베이징에서 500㎍/㎥(마이크로그램 퍼 제곱미터)가 넘는 미세먼지를 겪은 적이 있다. 아파트 4층에서 길가 사람이 또렷하지 않았다. 폐와 기관지 관련 질환도 급격하게 늘고 있다. 하지만 성장을 유지하지 않으면 하늘과 땅처럼 큰 빈부격차의 분노가 어떤 사태를 야기할지 모르는 딜레마가 현대의 천자와 집권층의 고민이다.

   
이제는 인간이 만드는 기후의 재앙. 무엇보다 다시 난방의 계절이 왔으니 서풍과 함께 밀려올 여파가 걱정이다. 대책이라고는 동풍을 기다리는 것뿐이라면….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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