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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의 중국인 이야기 <37> 명분 위해 역사에 끼어든 운명

‘얼음공주’ 포사 웃음 보려… 유왕, 봉화로 제후 농락하다 천하 잃어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11-03 19:38:35
  •  |   본지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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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국지색’에 빠진 서주

- 국정 팽개치고 첩 웃기기에 열중
- 잘못 피운 봉화에 제후 쩔쩔매자
- 표정없던 포사 갑자기 함박웃음

# 궁생은 ‘양치기 소년’

- 날이면 날마다 거짓봉화 올려
- 화가 난 제후 오랑캐 침공에도
- 나타나지 않자 점차 쇠락의 길

# 종법제 한계 드러나다

- 문왕 동생 이유로 제후가 된 괵
- 국정 못 돌보자 백성 원망 받아
- ‘실력보다 연줄’이 파국 불러 와

신화나 전설은 어느 민족에게나 있고 정체성의 원형이 된다. 나라가 세워지고, 문자에 의해 역사가 기록되기 시작하면 아득한 고대의 일은 황당해 믿기 어렵거나 너무 과장되었음을 짐작하더라도 구전된 이야기를 바탕으로 신화나 전설의 시대를 만들어내는 것은 동서를 불문하고 다르지 않다. 단순히 알지 못하는 무지 때문만이 아니라 뿌리의 자긍심으로 결속을 다지고 항구적 지속을 도모하기 위해서다. 중국에 있어서는 삼황오제를 비롯하여 구주(九州)를 개척하고 하나라를 세웠다는 우임금 이야기 등이 그에 해당할 것이다.
   
서주의 유왕과 포사의 일화를 그린 그림. 이유 없이 멋대로 피워 올린 봉화를 보고 출동한 군대가 헛걸음을 하고 이를 본 포사가 웃는 모습이 담겼다. 오른쪽 사진은 중원 서쪽 봉화대 유적.
상나라에 들어서 문자가 등장하고, 갑골편에 이어 청동기 명문으로 역사의 흔적을 남기기 시작했으니 주나라에 이르러서는 대나무를 이용한 죽간(竹簡), 비단과 같은 천을 이용한 백서(帛書) 등으로 더욱 다양한 기록을 남겼을 것이다. <사기>를 비롯한 중국의 사서들은 그런 역사의 조각을 바탕으로 후대의 사가들이 제법 사실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그런데 서주 말의 역사에 느닷없이 전설시대에나 있을 법한 황당한 이야기가 끼어든다.

■멸국의 운명으로 태어난 여인, 포사

   
섬서성 한중시 석문잔도의 포사 상.
옛날 하후씨가 쇠락했을 때 신룡(神龍) 두 마리가 하제(夏帝)의 뜰에 머물며 ‘우리는 포(褒)의 선왕들이다’했다. 이에 점을 치니 용들을 죽이거나, 쫓거나, 머물게 하거나 모두 불길하다는 점괘가 나왔다. 다시 점을 치니 용의 타액을 받아서 보관하면 길할 것이라 했다. 제물을 올리고 제문을 지어 기원하자 용은 사라지고 타액만 남아 상자에 담고 땅에 남은 흔적은 없앴다.

하가 망하자 상자는 상에 전해졌고, 상이 망하자 다시 주에 전해졌다. 여(厲)왕 말년에 감히 열어보니 그 타액이 뜰에 흘러 지워지지 않았다. 이에 여왕이 전해지는 술법에 따라 여자들을 발가벗겨 큰 소리로 떠들게 하니 타액은 검은 도마뱀으로 변해 왕의 후궁으로 기어들어 갔다. 그때 후궁에 있던 6, 7세가량의 어린 계집종이 도마뱀과 마주쳤다. 그녀가 비녀를 꽂을 나이가 되자 남자와 접촉 없이 아이를 낳았고, 두려워서 버렸다.

선(宣)왕 때에 이르러 아이들이 ‘산뽕나무로 만든 활과 기(箕)나무로 만든 화살통이 주를 망하게 하리라’는 동요를 부르고 다녔다. 선왕은 그런 활과 화살통을 파는 부부를 잡아 죽이게 했다. 그들 부부가 도망가다가 계집종이 낳아 버린 아이를 발견하고 거두어 포나라로 달아났다. 훗날 포의 사람들이 유(幽)왕에게 죄를 짓게 되자 절색으로 자란 계집종의 아이를 왕께 바쳐 죄를 빌었다. 그녀의 이름이 포사(褒姒)였다.

얼마나 허술한지 드러난 숫자로 따져보자. 여왕 말년에 상자를 열었다니 그가 백성에게 쫓겨 도망가기 이전이다. 그로부터 공화 정치가 행해진 기간이 14년이었다. 뒤이은 선왕의 재위 기간은 기원전 872년부터 781년까지 46년간이었다. 뒤를 이은 유왕 재위 3년이 되던 해 포사가 왕궁에 들어왔고 왕이 총애했다. 6, 7세 되던 후궁의 계집종이 비녀를 꽂을 나이라면 대략 16세 이후 18세 이전일 것이다. 공화정치 기간이 끝나기 전에 포사를 낳은 셈이니 그녀가 여왕의 총애를 받을 때는 이미 쉰 살은 넘긴 나이인 것이다.

굳이 끼워 넣어야 했다면 선왕이 상자를 열어본 것으로 하면 되었을 일이다. 그 총명한 사가(史家)들이 몰랐을 리 없다. 그런데 굳이 여왕을 끼워 넣은 것이다. 뭔가 다른 까닭이 있지 않았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왕이 나라를 결딴내기 때문이다. 포사라는 ‘절색미인’, 왕의 ‘총애’ 등에서 이미 짐작했겠지만 하의 걸왕, 상의 주왕처럼 나라를 망친 왕의 전형적인 레퍼토리가 또 등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선왕은 나름 ‘중흥’으로 기록되었다. 그런 왕의 적자가 나라를 망친 것으로 하기보다는 쫓겨난 여왕이 할아버지이니 그로부터 비롯되었다면 훨씬 그럴듯하지 않을까. 그래야 패권의 장에 나선 이들의 명분도 당당할 테고 말이다.

상나라도, 주나라도 그렇게 시작해놓고 무슨, 하는 여지가 남을 수 있다. 하지만 그때와는 그릇, 파이가 달랐다. 황하 중류의 작은 무대가 아니라 100여가 넘는 제후국의, 장강 이남까지를 아우르는 그야말로 천하라 이를 거대한 무대였다. 더군다나 분봉제의 그물에 걸려 아직 누구도 절대 패자가 될 힘은 없었다. 여전히 허울이나마 천자를 두고, 땅과 백성의 수를 늘려 국력을 키워야 했다.

어쨌거나 전설 같은 이야기와 버무려진 몰락의 과정을 지켜보자.

■봉화의 불장난, 제후를 희롱하다

당시 주나라의 가장 큰 위협은 서쪽의 견융이었다. 나라를 무너트릴 만한 위협은 아니어도 무시로 변방을 괴롭히니 그로 인한 피해와 불안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변방의 군사만으로는 그들을 대적하기에 부족했고, 중앙에서 군사를 모아 달려가면 이미 썰물처럼 빠져 멀찍이 달아난 뒤였다.

주 왕실은 더욱 빠른 대응을 위해 봉화대를 고안해냈다. 서쪽에서 도읍까지 몇 리 간격으로 봉화대를 세우고, 적의 침공을 발견해 봉화를 올리면 이웃 봉화대로 이어져 즉시 주변과 도읍에 전파되는 방법이었다. 밤에는 불을, 낮에는 연기를 피우는 방법으로 인근의 제후들은 즉시 지원에 나서는 체제였다. 또한 천자의 명으로 봉화가 오르면 제후는 즉시 경성(京城)으로 군사를 보내야 했다.

유왕 3년, 포사가 아들 백복(佰服)을 낳았다. 당시에는 신국(申國) 제후의 딸이 왕후의 자리에 있었고, 아들 의구(宜臼)는 이미 태자로 책봉된 터였다. 하지만 유왕은 왕후와 태자를 폐하려 들었다. 대신과 경사들이 반대했지만 소용없었다. 폐위된 왕후와 태자는 신국으로 도망갔다. 돌아온 딸과 태자를 본 신후(申侯)는 이를 갈았다. 이때 이미 제(齊)·노(魯)·진(晉)·위(衛) 등 강성한 제후국은 사실상 주 왕실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을 정도로 주의 역량과 위엄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신후 역시 주 왕실에 불만이 적지 않았으나 딸이 왕후의 위에 있었기에 배반하지 않았을 뿐이다.

유왕 궁생(宮湦)이 그처럼 총애했지만 포사는 도무지 웃음을 보이지 않아 거액의 포상금을 내걸기도 했다. 한번은 비단 찢기는 소리에 포사가 미소를 짓자 나라의 비단이 거덜 나도록 거둬들여 찢었지만 이내 시들해졌다. 어쩌다 봉화가 잘못 올라 사방 제후의 군사들이 경성으로 달려오는 일이 있었다. 그 허둥지둥하는 모습과 잘못 피워진 봉화라는 사실에 허탈해 돌아가는 것을 보고 포사가 웃음을 터트렸다. 얼마 뒤 유왕은 일부러 봉화를 피우도록 명했다. 견융이 침공해온 줄 안 제후들은 다시 황급히 군사를 이끌고 경성으로 달려왔다. 그러나 성 위에서는 주연이 한창일 뿐 견융의 군사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황당한 제후들의 넋 나간 모습에 포사는 또 웃음을 터트렸다. 이에 유왕은 기뻐하며 수시로 봉화를 피워 올려 제후들을 희롱했다.

■연(緣)의 문화를 만든 종법제

당시 유왕은 괵석보(虢石父)를 경(卿)으로 삼아 정사를 맡겼는데 백성들은 모두 원망했다. 괵석보는 간사한 데다 아첨을 잘하고 이익을 탐하는 자였기 때문이라니 유왕의 실정에는 그의 책임도 적지 않으리라. 본디 혼군(昏君)은 충간보다 아첨하는 이를 가까이하게 마련이지만, 이 괵나라는 상당히 문제가 있었다. 사서에 등장하는 괵의 제후나 신하 중 제대로 정사를 보필한 사람은 선왕 대의 괵 문공 정도이다. 괵은 주 문왕의 동생이라는 혈연으로 제후에 봉해졌으니 사실상 주나라를 세운 무왕 발의 삼촌 자격이다. 앞서 몇 차례 하남성 삼문협의 괵나라 유물로 그들의 영화를 생생하게 보았다. 핏줄과 연(緣)을 중시한 분봉제와 그것을 얽어매는 종법제의 한계와 결과를 역사가 증명한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분봉제와 종법제를 만든 주공 단을 공자는 꿈에서라도 만나고 싶다 추앙했고, 그 문화의 세례를 받은 후대들은 여전히 연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 사천지역 파촉인, 매운 맛 즐기는 만큼 성격도 ‘화끈’

- 중국 4대 요리 중 하나 사천요리
- 마라탕·마파두부 강한 맛 매력적
- 현지인 ‘유비삼형제’처럼 의리파

앞서 시작한 이야기니 이어야겠다. 지난 회의 산동, 회양요리와 함께 중국 4대 요리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사천요리(川菜)는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매운맛과 강한 향신료의 세계를 느낄 수 있는 사천요리 가운데 훠궈(왼쪽)과 마파두부.
사천요리를 말할 때의 사천은 사천성과 중경(重慶 : 충칭)지역을 아우른다. 고대에는 파촉(巴蜀)으로 불렸고, 1997년 직할시로 분리되기 전까지 중경은 사천성에 속해 있던 동일 문화권이다. 두 지역은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로 여름에는 몹시 무더운 데다 장강의 원류인 금사강과 합류하는 민강, 타강, 가릉강을 비롯한 여러 강이 산재해 습도까지 높다. 특히 중경은 호북성 무한(無漢 : 우한), 강소성 남경(南京 : 난징), 강서성 남창(南昌 : 난창) 등과 함께 중국의 ‘4대 화로’로 불리는 도시 중에서도 가장 무더워 한여름에는 햇볕 아래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10여분이면 땀이 줄줄 흐를 정도이다.

사천요리는 무엇보다 매운맛과 강한 향신료가 특징이다. 무더위와 높은 습도의 환경에서 땀을 배출해 건강을 유지하는 데는 매운맛이 제격이다. 대표적인 마라탕이나 훠궈(火鍋)는 이제 국내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는데, 입이 마비될 정도로 얼얼한 매운맛이라는 뜻의 마라(麻辣)는 매운 건고추, 초피나무과 열매인 화자오(花椒), 후추, 정향, 팔각 등을 섞은 향신료다.

훠궈의 경우 현지에서는 강이 많은 지역 특성에 따라 다양한 민물고기 육수가 깔끔한 맛으로 닭고기 육수와 함께 애용된다. 마파두부는 사천성 성도(成都 : 청두)시에 유명한 전통식당이 있지만 워낙 다양한 관광객이 찾다 보니 퓨전화되어 본래의 맛은 아닌 듯싶다. 오래전 중경시의 한 재래시장에서 만난 전통의 마파두부는 정말 마라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강한 맛이었지만 숟가락을 놓을 수 없이 매력적이어서 그 뒤 한참 동안 다른 도시의 마파두부에 시큰둥한 적이 있었다.

   
음식은 사람의 DNA에도 영향을 미치는 모양이다. 매운맛을 즐기는 파촉의 사람들은 화끈한 성격에 삼국지의 유비·관우·장비의 우애처럼 의리를 중시한다. 여인들은 높은 습도로 촉촉하고 비단처럼 매끄러운 피부를 자랑하지만 생활력 강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거리에서 자신과 같은 옷차림을 보면 다시 그 옷을 입지 않을 만큼 개성도 강하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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