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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의 중국인 이야기 <25> 문자 이전의 기록들

사냥·춤·제례 … 신석기 대륙 생활상, 암화에 오롯이 투영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8-11 19:39:08
  •  |  본지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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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순 표현에서 예술로 승화

- 동굴 벽·바위에 새긴 문양·그림
- 라스코벽화·반구대암화 등 다양
- 중국서도 특징별 암화 곳곳 산재

# 북방 주민 유목민 삶 고스란히

- 목단강 어로 모습 담은 ‘벼랑암화’
- ‘음산암화’선 수렵·목축 등 형상화
- ‘아랍선암화’ 방목·무도 장면 선명

# 남방선 원시 농업사회 강조

- 운남성 창원와족자치현 암화엔
- 깃털 머리장식·촌락·개 등 묘사
- ‘장군애암화’ 벼농사 모습 그려

어느 민족에게나 신화와 전설은 있고 그것은 저마다의 근원, 즉 정체성의 원형이 된다. 과학적 이성으로는 믿을 수 없지만 굳이 따져야할 까닭이 없고, 반복해 듣고 새기는 동안 어느새 뿌리로 내려 자리 잡은 듯 수긍하고 동의하게 된다. 중국의 경우 삼황오제를 시작으로 요·순 임금까지가 전설시대에 해당할 것이다. 황하 유역의 땅에서 하늘의 뜻을 받은 사람으로 태어나 성스러운 자질로 혼란한 인간 세상을 다스리며 문명의 문을 열어 사해(四海)를 복속해 천하통일의 기반을 일군다는 스토리.
   
중국에서도 갑골문이 발견되기 이전인 신석기시대에 동굴 벽과 바위에 새긴 다양한 모습의 암화 또는 암각화가 발견됐다. 내몽고 아람산의 암화.
하나라는 그 스토리를 구체화하는 첫 번째 나라였고, 아직 신의 영역이 건재했던 서방 등 다른 세계와 달리 온갖 신은 사람에게 권한을 넘기고 그저 하늘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져 명색만 있는, 인간주도 세상의 시현(示現)이었다.

그렇지만 하를 물려받은 상은 신의 영역과 하늘의 뜻을 받은 인간이 공존하는 결이 다른 나라였다. 하나라보다 미개하지 않았기에 쇠를 다스리는 앞선 기술로 권력을 잡았고 문자를 만들어 위대한 역사 기록의 기틀을 남겼다. 그렇지만 이후 왕조는 기술과 문자는 물려받았으되 상의 정신은 탐탁지 않게 여긴 듯 그 기록에 야박하여 갑골문이 발견되는 근세 이전까지 그 실체가 희미했다. 신과의 공존도 그랬지만, 특히 오랑캐 동이와 밀접한 정체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상을 이은 주는 다시 하를 계승해 신을 배제하고 하늘의 아들, 천자(天子)라는 이름의 절대 권력을 공고히 하여 이후 3천년 역사의 골격을 세웠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거침없는 권력과 그에 복종하는 다수 인민의 침묵을 보노라면 천자의 이데올로기는 여전히 건재한 듯싶다. 물론 도구는 문자였고 수단은 기록이었다.

이제 주의 역사에 발을 디디면 다시 문자 이전의 중국을 되돌아볼 겨를이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드넓은 대륙 곳곳에 터전을 일궈 제각각의 정체성으로 민족을 형성한 그들은 도구는 문자가 아니더라도 수많은 기록을 남겼으니 마지막으로 살펴보고 감이 도리일 것 같다.

   
감숙성 가욕관 흑산의 인물도 암화(왼쪽), 운남성 창원와족자치현의 암화.
■문자 이전의 표현과 기록, 바위그림

그게 기록이었는지 기원의 상징이었는지 단순한 유희였는지, 혹은 깊은 사고의 결정인 예술이었는지 단언하고 구분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인류는 깨어난 의식으로 활동하고 생각하며 무엇인가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가장 가깝게는 조악한 토기의 겉면에 새긴 빗살과 같은 선이다. 그것이 다양한 문양으로 발전하다 기원(祈願)의 상징에 이어 놀라운 예술로까지 승화되어 현대에도 계승된다. 한편 인류는 보다 큰 화폭이라 할 수 있는 동굴의 벽이나 커다란 암석에는 더욱 다양한 문양과 그림을 남겼다. 바로 암화, 암각화(巖刻畵) 등으로 불리는 바위그림이다.

바위그림이라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프랑스 도르노뉴 베제르계곡의 라스코동굴 벽화와 우리나라 울산 울주군의 반구대암각화다. 모두 기원전 1만년 이상의 신석기시대 것들로 빼어난 예술성도 놀랍지만 그 기록적 가치는 너무도 크다. 당시의 환경과 생활상을 보여줌은 물론 그림을 통해 그들의 의식세계까지 추측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이미 앞선 연재에서 신장위구르자치구 호도벽현의 강가석문자도 암화를 보았지만 중국에서도 인류의 분포만큼 암화는 다양하게 발견된다.

■중국 북부, 서부, 남부의 암화들

   
청해성 강찰현의 벽화로, 말 위에 앉아 활을 쏘며 들소를 쫓는 기사도(騎射圖)로 유명하다.
먼저 북방의 것으로는 흑룡강성 해림(海林)현 목단강(牧丹江) 벼랑(崖)의 암화를 들 수 있다. 거기에는 수렵과 함께 목단강에서 배를 타고 어망을 던지는 어로의 모습이 남겨져있다. 내몽고 중부에 위치한 음산(陰山) 암화에는 활을 쏴 큰 사슴을 잡는 수렵, 양을 기르는 목축 및 각종 동물의 형상이 선명하다. 내몽고 아랍선(阿拉善) 암화에는 수렵·방목·무도(舞蹈)·몽고 파오(包)와 유사한 장막(帳幕)의 형상이, 영하회족자치구 오해(烏海)시 하란산(賀蘭山)의 해발만탁자산(海渤灣桌子山) 암화에는 양을 기르는 사람과 다양한 표정의 인면(人面)·각종 동물의 얼굴·태양·별 등의 형상이 있다.

서쪽으로 감숙성 가욕관(嘉峪關) 흑산(黑山) 암화에는 수렵 장면을 위주로 질서정연한 사람들의 진세(陣勢)와 그들의 복장-짧은 치마를 입고 머리에는 꿩의 깃털로 보이는 긴 장식물을 단-을 호랑이, 사슴, 낙타, 새, 뱀 등의 다양한 동물과 함께 볼 수 있다. 청해성 강찰(剛察)현의 벽화는 말 위에 앉아 활을 쏘며 들소를 쫓는 기사도(騎射圖)로 유명한데, 당시 그 땅의 주인이었던 강(羌)족의 용맹성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티베트 아리(阿里)지역의 임모동(任姆棟) 암화에는 위쪽의 태양·달·노골적으로 표현된 남녀의 생식기 아래로 10마리의 새끼를 잉태한 물고기와 새 머리 모양의 가면을 쓰고 춤추는 사람, 그 아래로 가로로 배열된 10개의 항아리와 사슴을 탄 사람, 다시 아래로 아홉 줄에 125마리의 양머리가 질서정연하게 배열되어 있어 성대한 제례(祭禮)와 그에 바쳐진 희생물임을 알 수 있다. 하늘에 대한 숭배, 잉태와 탄생이 가져다 주는 생명에 대한 경배, 다산(多産)이 가져다 줄 풍요에 대한 기원, 그를 위한 희생과 장엄한 의식이니 참으로 자연과 합일(合一)하려는 인간 본연의 모습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을 그림으로 남긴 것은 후손에 대한 가르침으로 보아도 지나친 추론은 아닐 것이다.

사천성 공(珙)현 북인현관애(僰人懸棺崖) 암화에는 말 타는 사람을 주로 다양한 인물 과 생활상, 동물상 및 태양과 방형문 등의 도안(圖案)도 보인다. 특기할 것은 이름에서 보여주는 관(棺)을 벼랑(崖)에 매다는(懸) 오랑캐의 암화라는 것인데 이는 고대 강족의 전통 장례의식이다.

남쪽으로는 운남성 창원와족자치현(滄源佤族自治縣)의 암화가 유명하다. 여기에는 깃털 달린 머리장식을 한 인물과 함께 수렵, 길, 촌락, 원무(圓舞), 제례, 전쟁 무기 등이 비교적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또 소를 방목하는 사람 옆에 개가 따르는 모습도 보여 이미 개를 사육했음을 보여주는 등 주로 생활상을 반영한 그림이다.

그밖에도 광서장족자치구(廣西莊族自治區), 광동(廣東)성, 복건(福建)성 등 암화의 분포는 다양하지만 강소성 연운항(連云港)의 장군애(將軍崖) 암화만 더 살펴보자. 장군애 암화의 특징은 원과 직선을 이용한 단순한 형태의 도형으로 많은 인물상을 표현한 것을 들 수 있는데 조잡해 보이기는 하지만 해학적이기도 하다. 그런데 비슷한 형태로 위쪽을 향하는 방사(放射)의 역삼각형 직선들의 조합은 벼를 표현한 것으로 보여 역시 벼농사가 활발했던 자신들의 생활상을 드러낸 것이다.

■주류 역사 무대선 보이지 않는 암화
중국 남·북부에 고루 분포된 암화는 전체적으로 자신들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동물 등을 주제로 삼았지만 남·북방 각각의 특징을 드러낸다. 북방은 인물과 함께 동물과 수렵 장면이 많아 원시 유목생활이 투영된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남방은 동물, 수렵 장면과 함께 가옥, 촌락, 농경 등과 관련된 장면이 많아 원시 농업사회가 강하게 반영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암화는 도기에 뒤이어 청동기가 등장하며 점차 사라지지만 각종 도기와 청동기, 옥기에 그들의 생각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남북 간의 특징을 한동안 유지한다.

그런데 이미 고개를 갸웃거린 독자들이 있겠지만, 중국문명의 주류라는 황하유역에서는 암화의 흔적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북경원인 화석에서 알 수 있듯 이미 50만 년 전부터 인류가 거주했고, 자칭 중국 역사의 주류라는 이들의 무대임에도 문자 이전의 기록이 드물다는 것은 참으로 의아하다. 그저 환경의 영향 탓으로 얼버무릴 수는 없는 일이니 종족의 잦은 이동이나 각축의 영향인지 다른 까닭이 있는 것인지 깊이 생각해볼 숙제이다.


◆하늘과 땅 만든 창세의 신 ‘반고’ … 사람을 만든 여신 ‘여와’

- 中 인류 탄생신화 나오는 주인공
- 복희씨 아내의 여와 전설도 눈길
- 반인신수 모습 인간의 창작 방증

중국에도 인류 탄생신화는 있다.
   
중국의 인류탄생 신화에서 세상을 만든 것으로 묘사된 반고가 알을 깨고 나와 하늘과 땅을 나누는 모습.
아주 태곳적 우주에는 달걀 모양의 별이 있었고, 그 속은 하늘과 땅조차 분리되지 않은 혼돈이었다. 그런 혼돈 속에서 반고(盤古)가 생겨났고, 1만 8000년의 세월동안 쉼 없이 왼손의 끌과 오른손의 도끼로 혼돈의 덩어리를 쪼갠 끝에 마침내 알이 깨져 하늘과 땅으로 분리되며 반고가 태어났다. 하늘과 땅은 하루에 1장(丈 : 약 3m)씩 높아지고 두터워졌으며, 그에 따라 반고도 하루 1장식 커져갔다. 그렇게 다시 1만 8000년이 흐른 뒤, 반고는 아직도 춥고 어둡기만 한 세상이 안타까워 자신을 희생하기로 마음먹었다.

반고가 죽자 세상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의 왼쪽 눈은 태양이 되고 오른쪽 눈은 달이 되었다. 그가 내쉬던 숨은 바람과 구름이, 목소리는 천둥이 되었다. 피는 강을 이뤄 바다로 나아갔고, 힘줄은 산과 구릉이 되고 길이 되었다. 몸뚱이와 손발은 오악(五嶽 : 동쪽의 태산(泰山), 서쪽의 화산(華山), 남쪽의 형산(衡山), 북쪽의 항산(恒山), 중앙의 숭산(崇山))이 되어 동서남북을 구분했다. 머리카락과 수염은 하늘의 수많은 별이, 몸에 난 털은 풀과 나무가, 뼈와 이빨은 암석과 금속이, 땀은 비와 호수가 되었다.

   
중국 신화에 나오는 여와(왼쪽)와 복희씨.
반고에 의해 만들어진 세상에 어느 날 여신 여와가 내려와 산책하며 둘러보니 세상은 아름다운데 너무 조용하고 심심했다. 그래서 여와는 황하 변의 진흙으로 사람 모양을 빚기 시작했다. 사람을 빚어놓자 그것이 소리를 지르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는데 참으로 보기에 좋았다. 여와는 매일매일 부지런히 사람을 빚었다. 그렇지만 세상은 꽤 넓어 그렇게 일일이 빚어서는 아무래도 다 채울 수가 없었다. 고민하던 여와는 나무 넝쿨을 걷어 진흙물을 묻힌 다음 힘껏 내두르자 사방으로 튄 진흙 방울이 모두 사람으로 변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수명이라는 것이 있어서 때가 되면 죽어 사라지니 그때마다 다시 만들곤 해야 했다. 여와에게 좋은 꽤가 떠올랐다. 사람이 죽으면 매번 새로 만들 게 아니라 그것들을 짝지어서 아이를 낳게 하면 자신의 수고를 덜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의미심장한 것은 여와가 직접 빚은 사람은 귀한 사람이 되지만 진흙물을 흩뿌려 만든 사람은 천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 구전되는 과정에는 이미 굳어진 신분의 차이와 그것을 체념하게 하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와는 그렇게 중국인에게 사람을 빚고 결혼을 주재한 신이지만 다른 이본(異本)이 존재하니 바로 복희(伏羲)씨 아내로서의 여와다. 애초에 독자적인 신이었던 여와가 한나라 대에 이르러 하반신이 뱀의 형상인 반인신수의 모습인 복희의 아내로 등장하니, 신화는 역시 인간의 창작임이 분명하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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