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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의 중국인 이야기 <21> 주(周)의 조상들

‘농경의 신’ 후직의 후손, 오랑캐 땅에서 주나라 세우다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7-14 18:56:40
  •  |  본지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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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 제후국 주족 꿈틀대다

- 주 시조 ‘후직’, 농경에 힘썼지만
- 하나라 왕들 농업 손 놓고 타락
- 아들 ‘부줄’ 관직 잃자 서쪽 이주

# 요·순도 울고 갈 성인 등장

- 조상유업 계승한 13대 고공단보
- 훗날 흉노인 융적 침입 누차 받자
- 살상 피하려 백성과 기산서 정착

# 포악한 주왕 타도 본격 모색

- 손자 서백 이르러 국력 더욱 강성
- 주 건국 일등공신 ‘강태공’ 모셔
- 아들 무왕도 아버지처럼 받들어

하나라가 씨앗이고 싹을 틔운 것이 상이라면, 이후 3000여 년 중국 역사의 뼈대는 모두 주(周)라는 줄기에서 세워졌다.

주의 역사는 크게 넷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시조 후직(后稷)으로부터 무(武)왕 발(發)이 상을 멸하는 때까지다. 두 번째는 무왕이 상을 멸하고 주나라를 세운 기원전 1046년부터 제12대 유(幽)왕이 사망하는 기원전 771년까지로, 이 시기를 서주(西周)시대라 한다. 세 번째는 기원전 770년 제13대 평(平)왕이 도성을 동쪽으로 옮긴 뒤부터 기원전 476년 원(元)왕까지의 동주(東周)시기로, 춘추(春秋)시대라 한다. 네 번째는 기원전 475년부터 진에 의해 천하가 통일되어 동주가 멸망하는 기원전 221년까지로, 전국(戰國)시대라 한다.

■굶주린 백성 살려낸 후직

   
중국 안양 유리성에 있는 주나라 문왕의 동상. 상나라를 멸한 무왕이 아버지 서백 창을 문왕으로 추증했다.
주족의 시조는 후직(后稷)으로 이름은 기(棄)다. 어머니는 유태씨(有邰氏)의 딸로 강원(姜原)이라 하는데, 전설시대 삼황 중의 한 사람인 제곡의 정비(正妃)였다. 그러나 제곡의 씨가 아니라 들판에 난 거인의 발자국을 밟으니 배 안이 꿈틀거리며 잉태했다고 전해진다. 달을 채워 아이를 낳았으나 불길한 생각이 들어 비좁은 골목에 내다버렸다. 그런데 소와 말이 아이를 피해 지나가기에 다시 산속 수풀에 옮겨놓자 이번에는 사람들이 산속으로 몰려들었다. 다시 도랑의 얼음 위에 버렸지만 날짐승이 날개로 덮고 깃을 깔아주었다. 강원은 신비하여 아이를 거두었는데, 버리려 했었기에 ‘기’라 이름 지었다.

기는 어린 시절부터 놀이를 하면서도 삼과 콩을 잘 심었고, 그가 심은 삼과 콩은 모두 잘 자랐다. 성인이 되자 더욱 농경에 힘써, 토지의 특성을 살펴 알맞은 곡식을 심으니 백성들이 모두 그를 따랐다. 요 임금은 이런 기를 발탁하여 농사를 관장하는 ‘농사(農師)’의 직을 맡겼다. 또한 그를 후직이라 칭하고 희씨(姬氏) 성을 하사하니, 농사의 신 신농(神農)과 함께 선농단(先農團)에 배향된 토지의 신이다. 더 맞춤한 농경민족의 시조가 또 있을까?

후직이 죽고 부줄(不窋)이 대를 이었지만 하의 정치가 쇠락해져 농관(農官)인 ‘직’을 폐지하자 서북쪽, 지금의 감숙성 동부에 해당하는 융적(戎狄) 지역으로 도망쳤다. 부줄과 그 아들 국(鞠)의 뒤를 공유(公劉)가 이었다. 공유는 시조인 후직의 사업을 다시 익혀 농사에 힘쓰며 토지를 살핀 뒤, 섬서성 순읍(旬邑)과 빈현(彬縣) 인근으로 터전을 옮기니―공유의 아들 경절(慶節) 대에 옮겼다는 기록도 있다―사람들이 이곳으로 옮겨와 이때부터 주라는 이름을 얻었다.

농경을 주로 삼던 족이 하필 메마른 서쪽 땅으로 도망쳤다고? 황하가 얼마나 길고, 당시 주인 없는 강 유역의 땅은 또 얼마나 지천이었는데. 어쩌면 주족은 처음부터 서방 오랑캐인 서융의 일파였고, 그들이 중원이 주인이 되자 후직이라는 조상을 윤색하고 요와 연결하여 오랑캐와의 차별성을 꾀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권력을 버려 권력을 얻은 고공단보, 후대를 기약하다

   
‘토지의 신’으로 배향된 후직의 아들 부줄이 도망쳐 터전을 일군 감숙성 메마른 고원.
공유 이후 8대가 더 지난 뒤 고공단보(古公亶父)가 대를 이었다. 후직과 공유의 사업을 다시 익히고 덕을 쌓자 사람들이 모두 그를 따랐다. 훗날 흉노(匈奴)로 불리게 되는 훈육(薰育) 융적이 어느 날 주를 공격해와 재물을 요구했다. 고공단보가 재물을 내주자 얼마 뒤 다시 쳐들어와 이번에는 땅과 백성을 요구했다. 백성들이 모두 분개해 싸우고자 했지만 고공단보는 “백성이 군주를 옹립하는 것은 자신들을 이롭게 하려 함이오. 지금 융적이 우리를 공격하는 것은 우리의 땅과 백성 때문이오. 백성이 나에게 속하든 그들에게 속하든 무슨 상관이오. 백성이 나를 위해 싸운다면 그것은 아버지나 아들을 죽여가면서 군주가 되려는 것이니 나는 차마 그리 못하겠소”라고 했다. 그런 뒤 자신의 사병(私兵)을 거느리고 기산(岐山:섬서성 기산현 일대) 아래로 가서 정착했다.

이쯤 되면 요·순은 고개도 들지 못할 성인 아닌가. 지난 역사, 특히 1000년 가까운 춘추전국의 살육을 돌이켜 정리하며 권력을 위한 그 무도한 살상과 희생, 영락(榮落)의 허망함이 사무친 사마천이 사실상 중국 역사의 뿌리인 주족의 원형에 자신의 이상향을 슬며시 밀어 넣은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실상은 그 무렵 정복 활동에 나선 무정에 의해 북쪽의 귀방이 흔들리며 각 세력이 연이어 이동하는 여파인 듯 싶은데, 어쨌거나 자비로운 이에게 사람이 따르는 법. 고공단보의 인자함에 순읍, 빈현의 사람들은 물론 이웃 부족들까지 귀순해왔다. 이에 고공단보는 융적의 풍속을 개량하고, 도읍과 종묘를 세우고, 각종 관직과 관등을 정하는 등 나라의 형태를 갖추었다. 또한 상나라를 대방(大邦 : 큰 나라)이라 칭하고 자신은 소방(小邦)이라 하여 몸을 낮춤으로서 의심과 견제를 피했다.

   
섬서성 황하유역의 푸른 농경지.
고공단보에게는 태백(太伯), 우중(虞仲), 계력(季歷) 세 아들이 있었다. 계력의 아내 태임(太任)이 아들 창(昌)을 낳았을 때, 붉은 새가 주서(周書)를 물고 방으로 날아드는 길조가 있었다. 고공단보는 ‘네 대에 큰 사업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했다. 형인 태백과 우중은 막내 계력에게 대를 물린 뒤 다시 창에게 왕위를 계승시키려는 뜻임을 알고 스스로 형만(荊蠻 : 장강 이남 초(楚)의 땅)으로 달아나 머리카락을 짧게 깎고 몸에는 문신을 새겨 왕위를 양보했다. 계력이 대를 이어 아버지의 위업을 잘 계승하니 제후들이 그에게 순응했다. 계력이 죽고 아들 창이 뒤를 이으니 바로 서백이다.

창은 후직과 공유의 사업을 따르고, 고공단보의 법도를 본받아 오직 어진 정치에 전념했다. 예의와 겸손으로 사람을 대하고, 재사(才士)를 대접하기를 자신은 밥 먹을 겨를조차 없이했다. 신망 높은 현인(賢人)과 재사를 모으기 위해서였다.

■서백 창, 마침내 강태공을 낚다
   
주나라 건국의 일등공신으로 꼽히는 태공망 여상. 흔히 강태공으로 불린다.
주(周)나라 건국의 일등공신이 태공망(太公望) 여상(呂尙)이라는 데에는 역사에 이의가 없다. 흔히 강태공(姜太公)이라 불리기도 하는 그는 본래 강(姜)이 성이었으나 조상이 우임금의 치수를 도운 공로로 여(呂) 땅에 봉해져 여씨가 되었다. 태공망, 강태공은 태공(太公)으로 불리던 창의 아버지가 오래도록 바라고 기다리던(望) 사람이라는 뜻에서 비롯된 호칭이다.

어느 날 창이 사냥에 앞서 점을 쳐보니 위수(渭水 : 감숙성과 섬서성을 흘러 황하에 합류하는 최대 지류) 북쪽으로 가면 큰 인물을 만날 것이라 하여 따랐더니 강가에서 낚싯대를 드리운 노인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입으로는 ‘빨리 낚시 바늘에 걸리라’며 중얼거리는데 낚싯대는 바늘도 없이 허공에 드리워져 있었다. 기이하게 여긴 창이 다가가 말을 걸자 그는 천문과 지리, 정치와 군사, 학문 등 모든 방면에서 탁월한 식견을 보였다. 바로 여상이었다.

창이 천하의 도를 묻자 여상은 “천하는 군주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니라 만백성의 천하입니다. 천하의 이익을 백성과 나누는 군주는 천하를 얻고, 천하의 이익을 혼자 차지하려는 군주는 반드시 천하를 잃습니다”라고 했다. 이에 창은 두 번 절하고 스승으로 삼아 함께 성으로 돌아왔다.

서백 창이 “상의 왕이 포악하여 무고한 사람들이 많이 죽고 있습니다. 공이 나를 도와 천하의 백성을 구할 방법을 찾아보십시오”라고 하니 여상은 “하늘이 아직 상 왕에게 재해를 내리지 않았다면 앞서 거사를 입 밖에 내지 마십시오. 백성의 마음이 아직 상 왕을 등지지 않았다면 거사를 서두르지 마십시오. 반드시 하늘이 재앙을 내리거나 백성이 변란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거사를 꾀해야 합니다” 라고 자제시켰다.


◆ 훈·골적·석경… 신석기 시대 제례 악기 대거 출토

- 섬서성·하남성·산서성 등서 발굴
- 인간 심성 기르는 교육수단 활용
- 음란한 음악은 망조로 여기기도

하의 걸과 상의 주, 두 참주(僭主)의 음란과 포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아무래도 마뜩찮다. 아무리 몸을 낮추고 빛을 감추며 때를 기다린다 해도 신흥강국의 도광양회(韜光養晦)를 까마득히 모를 리는 없는데, 더구나 그들 두 군주는 나름 빼어난 자질로 당대의 패권에 당당한 이들 아니었던가. 부질없는 짓인가 싶지만, 인류의 행보에서 빠지지 않았고, 변혁의 시기마다 그 빌미로 등장하는 음악, 춤, 술의 역사를 캐고 싶은 까닭이다.
   
술의 등장에 대해서는 앞서 ‘의적’에 관한 이야기로 실마리를 잡아보았지만 아무래도 음악이 먼저일 것 같다. 소리는 움직이는 대부분 생명체가 의사 전달의 수단으로 삼은 것이지만 그 연장인 음악 또한 감정 표현의 수단으로 함께했을 것이다. 다만 인류에 관한 그 구체적 증거로 삼을 것은 후대에 민간의 가사(歌詞 : 노랫말)를 채집한 시경(詩經)이 있어 서방의 시편과 비교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역사를 가름하기에는 너무 부족하다.

다행히 기원전 5000년께 신석기시대 유적인 섬서성 서안시 반파(半坡) 유적에서 문자 이전의 음악을 증명해줄 수 있는 악기 훈(塤)이 발견되었다. 훈은 도기로 빚은 관악기의 일종으로 감숙, 산서, 하남, 산동성 등 황하 유역 대부분 문화권은 물론 사천성 봉절(奉節)현 흥룡동(興隆洞) 삼협(三陜)댐 건설 현장에서도 발견된 바 있다. 하남성 무양(舞陽)현 북무도진(北舞渡鎭) 가호(賈湖)유적에서는 뼈 피리인 골적(骨笛)이 출토되었는데, 맹금류의 다리뼈 양쪽 관절을 잘라 7개의 구멍을 뚫어 만든 것이었다. 이밖에도 산서성 분하(汾河) 유역의 양분(襄汾)현 도사(陶寺)유적에서 토고(土鼓 : 북), 타고(鼉鼓), 석경(石磬) 등이 발굴되어 유사한 악기들이 신석기시대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사용되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처럼 인류의 행보에서 빠지지 않은 음악은 동서를 막론하고 예(禮)와 관련지어 인간의 심성을 수양하는 교육수단으로 승화되었으며, 계급적 성격을 드러내기까지 했다. 그래서 음악이 경박, 음란하면 나라가 망하는 징조라고도 했으니 걸과 주, 두 참주에게도 적용된 것이리라. 그렇다면 귀를 막아도 들려올 것처럼 그치지 않고 넘쳐나는 오늘의 음악은 어떠한지 설핏 궁금해진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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