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란한 음악은 망조로 여기기도
하의 걸과 상의 주, 두 참주(僭主)의 음란과 포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아무래도 마뜩찮다. 아무리 몸을 낮추고 빛을 감추며 때를 기다린다 해도 신흥강국의 도광양회(韜光養晦)를 까마득히 모를 리는 없는데, 더구나 그들 두 군주는 나름 빼어난 자질로 당대의 패권에 당당한 이들 아니었던가. 부질없는 짓인가 싶지만, 인류의 행보에서 빠지지 않았고, 변혁의 시기마다 그 빌미로 등장하는 음악, 춤, 술의 역사를 캐고 싶은 까닭이다.
술의 등장에 대해서는 앞서 ‘의적’에 관한 이야기로 실마리를 잡아보았지만 아무래도 음악이 먼저일 것 같다. 소리는 움직이는 대부분 생명체가 의사 전달의 수단으로 삼은 것이지만 그 연장인 음악 또한 감정 표현의 수단으로 함께했을 것이다. 다만 인류에 관한 그 구체적 증거로 삼을 것은 후대에 민간의 가사(歌詞 : 노랫말)를 채집한 시경(詩經)이 있어 서방의 시편과 비교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역사를 가름하기에는 너무 부족하다.
다행히 기원전 5000년께 신석기시대 유적인 섬서성 서안시 반파(半坡) 유적에서 문자 이전의 음악을 증명해줄 수 있는 악기 훈(塤)이 발견되었다. 훈은 도기로 빚은 관악기의 일종으로 감숙, 산서, 하남, 산동성 등 황하 유역 대부분 문화권은 물론 사천성 봉절(奉節)현 흥룡동(興隆洞) 삼협(三陜)댐 건설 현장에서도 발견된 바 있다. 하남성 무양(舞陽)현 북무도진(北舞渡鎭) 가호(賈湖)유적에서는 뼈 피리인 골적(骨笛)이 출토되었는데, 맹금류의 다리뼈 양쪽 관절을 잘라 7개의 구멍을 뚫어 만든 것이었다. 이밖에도 산서성 분하(汾河) 유역의 양분(襄汾)현 도사(陶寺)유적에서 토고(土鼓 : 북), 타고(鼉鼓), 석경(石磬) 등이 발굴되어 유사한 악기들이 신석기시대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사용되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처럼 인류의 행보에서 빠지지 않은 음악은 동서를 막론하고 예(禮)와 관련지어 인간의 심성을 수양하는 교육수단으로 승화되었으며, 계급적 성격을 드러내기까지 했다. 그래서 음악이 경박, 음란하면 나라가 망하는 징조라고도 했으니 걸과 주, 두 참주에게도 적용된 것이리라. 그렇다면 귀를 막아도 들려올 것처럼 그치지 않고 넘쳐나는 오늘의 음악은 어떠한지 설핏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