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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크롱(왼쪽)과 부인 트로뉴. AP연합뉴스 |
39세 에마뉘엘 마크롱이 프랑스 대통령으로 등극했다.
마크롱은 스스로 자신을 '아웃사이더'라고 표현하고는 있지만, 마크롱은 유복한 환경에서 학업에 뛰어난 성취를 보이면서 전형적인 엘리트코스를 거쳤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비판세력들이 흔히 공격하듯 '귀공자'라고 볼 수 만은 없는 실험정신으로 가득 차 있다. 마크롱은 1977년 12월 21일 프랑스 북부의 유서 깊은 소도시 아미앵에서 의사 부부의 아들로 태어나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 아미앵에서 고교 재학 시절 자신의 불어 선생님이었던 25세 연상의 부인과 브리짓 트로뉴와 사랑에 빠져 훗날 결혼한 스토리는유명하다.
"선생님과 사랑에 빠졌다"는 마크롱의 선언을 10대의 객기로 치부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마크롱은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15년 뒤 결혼을 쟁취했다.
이런 독특한 개인사는 후에 그의 직설적이고 기성체제에 저항하는 듯한 유려한 말솜씨와 함께 젊은 층의 인기를 얻은 핵심요인으로 작용했다.
유년시절부터 학업에 재능을 보인 마크롱은 파리의 최고 명문 앙리 4세 고교로 전학해 졸업한 뒤 파리-낭테르 대학에서 철학으로 박사예비과정(DEA)을 마쳤다. 대학 시절 친구들은 그를 책을 좋아했던 지적인 친구로 기억한다. 마크롱은 철학도 시절 대철학자 폴 리쾨르(1913∼2005)의 저서 집필을 돕는 조교로도 일한 적이 있다. 리쾨르는 생존 당시 자크 데리다(프랑스), 위르겐 하버마스(독일)와 더불어 세계의 '살아 있는 3대 철학자'로 불렸던 현대철학의 거장이었다.
2004년 국립행정학교(ENA·에나) 졸업 후 첫 일터는 경제부처인 재정감독청(IGF)이었다. 이후 성장촉진위원회(일명 '아탈리 위원회)에서 잠시 일하다 2008년 유대계 투자은행 로스차일드로 자리를 옮겼다. 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 등 마크롱의 전 '직장 상사'들은훗날 마크롱의 대권조언에서 중요한 조언자 역할을 하게 된다. 마크롱이 로스차일드행 뜻을 밝히자 친구들은 훗날 정계진출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며 만류했다고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프랑스에서 최첨단 자본주의의 첨병인 투자은행의 이미지는 영미권에 비해 좋지 않다. 그러나 마크롱은 뜻을 굽히지 않았고, 글로벌 금융자본주의의 최전선인 투자은행에서 기업인수합병(M&A) 전문가로 일하며 실물경제와 금융 감각을 익혔다. 당시 동료들에 따르면 마크롱은 일에 익숙지 않아 처음엔 고전했다고 한다. 그러나 마크롱은 특유의 친화력으로 난관을 극복해 나갔다. 모르는 게 생기면 책이나 자료에서 해답을 구하기보다 동료들에게 적극적으로 물어보며 해결했는데, 이런 행동이 동료들을 '무장해제'시켰다고 한다.
마크롱은 '에나크'(Enarque)라 불리는 ENA의 동문 네트워크를 이용해 정부 인사들과의 접촉면을 넓히면서 자신의 단점을 커버해 나갔고, 업계에서 M&A 전문가로 승승장구했다.
명성은 물론 거액의 연봉도 챙겼다. 2012년 네슬레의 화이자 유아식 부문 인수(120억 달러 규모) 공로로 마크롱은 290만 유로(36억원 상당)를 벌었다. 최첨단 영·미식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반감이 살아 있는 프랑스에서 마크롱이 투자은행에서 거액의 연봉을 받고 일한 사실은 그에게 "금융업계의 사기꾼" "야만적인 세계화론자" 등의 꼬리표를 붙이기도 했다. 훗날 대선 레이스에서 라이벌 마린 르펜은 마크롱의 로스차일드 재직 사실을 두고두고 공격한다.
정세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