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사진) 미국 대통령이 한반도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에 따른 우리 정부의 비용 부담과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의 재협상 또는 폐기를 공식화해 파문이 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100일을 이틀 앞둔 27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사드 배치에 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며 그 비용을 10억 달러(1조1300억 원)로 제시했다. 또 한미 FTA와 관련해서는 '(미국 입장에서) 끔찍하다'는 단어까지 써가며 "재협상을 하거나 종료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사드 비용 문제와 한미 FTA 종료 등을 직접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이들 시나리오는 한국 입장에서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최악의 상황으로 간주돼 왔다. 우리 정부의 위상과 경제 전반 등에 상당한 타격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외교부와 국방부가 이날 "'사드 비용을 미국이 부담한다'는 원칙에는 변화가 없다"고 선을 그었으나, 미국의 압력이 거세질 경우 현실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경제계 역시 초긴장 상태다. 재협상이든 종료이든 한미 FTA에 변화가 생기면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미 FTA 재협상으로 양허정지가 이뤄질 경우 우리 경제의 손실액은 자동차 업종(133억 달러·15조1800억 원)을 중심으로 올해부터 2021년까지 총 269억 달러(30조7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완성차 업체에 대한 납품과 대미 수출 비중이 큰 동남권 자동차부품 및 철강 업체 등도 큰 피해가 예상된다.

정부를 향한 비판도 커지고 있다. 이런 시나리오가 그동안 꾸준히 제기됐는데도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며 대응책을 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 18일 "한미 FTA 개선을 추진하겠다"는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의 발언에 대해서도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는 말만 반복했다. 결국, 한미 간 정치·경제 문제에서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할 우리 정부가 존재감과 위기관리 능력을 상실한 채 일격을 당한 셈이다.

이석주 기자 sereno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