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장님과 동료 의원 여러분, 저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행동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책임을 통감합니다." "저의 행동에 대해 후회하며 깊이 뉘우치고 있다는 점을 동료 의원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국민 여러분께도 용서와 이해를 구합니다." "저는 어제 큰 실수를 저질렀고, 잘못을 인정하며, 행동을 고쳐야 한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지난해 10월 캐나다 총선에서 자유당의 승리를 이끌며 '록스타'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던 저스틴 트뤼도 총리. 잘생긴 외모에 정치 명문가 출신의 후광까지 등에 업고 40대 총리에 오르며 탄탄대로를 걷는 듯했다. 하지만 그는 한순간 화를 찾지 못하는 바람에 하룻밤 새 세 차례나 사과를 했다.
그는 지난 18일 오후 캐나다 연방하원에서 법안 표결 도중 'F'자 욕설을 뱉으며 야당인 보수당 원내대표의 팔을 잡아끌었고, 이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게 여성 의원의 가슴을 팔꿈치로 치는 바람에 더 궁지에 몰렸다. 이 의원은 총리에게 미세하게(?) 가격당한 가슴을 움켜쥐며 짧은 신음을 내뱉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출퇴근 시간 지하철에서 옷깃만 스쳐도 '미안하다'고 하는 문화 속에서, 의도와 상관없었다 해도 타인의 몸에, 더구나 여성에게 접촉한 것은 엄청난 실수이며, 결례이다.
이날은 안락사법 통과를 앞두고 여야가 대립 중이었다. 자유당 정부 입장에서는 다음 달 초 회기 종료를 앞두고 시간이 많지 않은 상황. 하지만 야당은 논란이 많은 안락사법에 보다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처리를 지연시키고 있었다. 이 때문에 여당은 법안의 신속한 처리를 위해 토론종결 동의요구안을 제출했고, 이에 대한 표결이 진행 중이었다. 트뤼도 총리는 자신의 돌발 행동과 관련해 "야당 원내대표가 지나치게 느리게 움직였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마디로 법안 통과에 협조하지 않는 데 성질이 난 것이다.
캐나다 언론은 총리가 자리를 박차고 나가 야당 의원들에게 거친 행동을 한 것은 이례적인 장면이라고 지적한다. 영국 의회를 닮은 캐나다 하원은 여야가 마주 보도록 의석을 배치한다. 제2 야당인 신민당의 한 의원은 "다른 나라 의회의 물리적 사태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지만 캐나다 현대사에 이런 일은 전례가 없다"고 비판했다. 제1 야당인 보수당 대표도 "지도자의 자질이 의심스럽다"고 비꼬았다.
하지만 이날 충돌은 잠재됐던 갈등이 표출된 것뿐이라는 게 캐나다 언론의 시각이다. 지난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한 자유당은 힘을 바탕으로 의회를 주도하고 싶어 했으며, 이에 맞서 야당은 여당의 각종 정책에 제동을 걸 명분을 찾고 싶어 했다는 분석이다. 이런 팽팽한 긴장감 가운데 트뤼도 총리가 앞장서 기름을 부었고, 자책골이 되고 말았다. 일각에서는 정치적 경륜이 일천한 젊은 총리의 한계라는 시각도 있다.
멱살잡이는 기본이요, 육박전도 심심찮게 일어나는 한국 국회와 비교하면 이 정도 수준의 소란으로 언론의 주요 뉴스가 된 것이 살짝 부럽기도 하다. 더구나 이런 해프닝을 두고 세 차례나 머리를 숙인 젊은 총리의 행보에도 관심이 더 간다. allellu@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