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투표

흔히 선진국은 투표율이 낮다고 생각한다. 맞을 수 있지만 틀리는 경우도 많다.

지난해 10월 실시된 캐나다 연방총선의 전체 투표율은 77%였다. 이는 2011년 총선 당시 70%보다 무려 7%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최근 캐나다통계청은 투표율 분석을 통해 시민권을 취득한 지 10년 차 이하 유권자의 투표율이 2011년 56%에서 70%로 무려 14%포인트나 올랐다고 분석했다. 물론 토박이들의 투표율도 2011년 70%에서 2015년 78%로 상승했다.

연령별로는 젊은 유권자들의 선거 참여가 두드러졌는데 18~24세의 투표율은 2011년 55%에서 67%로 무려 12% 포인트 상승한 것을 비롯해 25~34세도 59%에서 70%로 11%포인트 증가했다. 매니토바와 앨버타주 등 국제유가 하락의 직격탄을 맞은 지역의 투표율도 4년 전보다 10% 이상 높아졌다.

이 같은 투표율 변화는 국제사회에서 최근 캐나다의 위상이 추락하고 있다는 우려에다 경기 침체, 지나치게 보수적인 정책 때문에 유권자들이 보수당 정책에 등을 돌린 데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특히 투표율은 저스틴 트뤼도 총리가 이끄는 자유당 정부를 탄생시켰다. 여론 조사 결과를 뛰어넘는 압승이었다. 약 10년 만에 보수당 정권이 물러난 것이다. 트뤼도 총리는 수년 전 찍은 요가 사진 한 장도 전 세계적 주목을 끌 정도로 유명 인사가 됐다. 시리아 난민 3만5000명 수용과 유엔 비상임이사국 도전 등 광폭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정권 교체 효과는 시민들의 피부에 직접 와 닿는다. 우선 보수당 정부가 장벽을 높였던 이민정책이 점차 문호를 개방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영어점수에 대한 기준이 낮아지고, 이민수속에 걸리는 기간도 단축되는 추세다. 예산 기조도 변화 조짐을 보인다. 보수당이 추구했던 균형예산 대신 경기 회복과 인프라 확대를 위해 앞으로 5년간 1200억 달러를 투입하고 중산층 감세와 아동복지, 실업자·노년층 등 취약계층 지원을 대폭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유가 폭락과 원자재 수요의 감소로 대량 실업사태에 직면한 캐나다 서부지역을 돕기 위해 고용보험 지원도 약속했다.

물론 이 같은 공격적 예산에 대해 보수당은 정부의 재정을 악화시키는 정책이라며 날을 세우고 있다. 어쨌든 캐나다 국민들은 투표를 통해 10년간 장기 집권한 보수당 정권을 거부하고, 자유당 정부에 기회를 줬다. 그 투표의 효과는 확실히 나타나고 있다.

이곳 토론토에서도 영주권자와 유학생, 기업체 주재원 등이 제20대 국회의원 총선 재외국민 투표를 실시했다. 지난달 30일부터 6일간 선거가 진행됐지만 분위기는 냉랭했다. 전체 추정 유권자 3만8000여 명 가운데 고작 1000명 남짓 한 표를 행사했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됐을 이런 투표를 굳이 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지 검토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이미 행사한 한 표의 가치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투표로 세상을 바꾸기는 어렵다. 하지만 정치인과 정권은 교체할 수 있다. 교체가 아니면 적어도 겁을 줄 수는 있다. 오는 13일에는 '별수 있겠나'라든가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투표장으로 가자.

allellu@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