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30일 뉴욕주립대학교 얼버니(SUNY)에 다니던 세 명의 흑인 여학생이 버스 안에서 집단 폭행을 당했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흑인 여학생들의 주장에 따르면 20명가량의 백인들이 미국 사회가 가장 금기시하는 N으로 시작하는 단어를 써가며 수모를 주고 폭행을 했다. 하지만 운전기사를 포함한 주변의 어느 누구도 도와주려 하지 않았다고 흑인 여학생들은 주장했다. 이 사건으로 대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학교에서는 학생 시위가 있었고, 인종 차별에 대한 불만이 표출됐으며 토론도 이어졌다. 뿐만 아니라, 민주당의 대선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까지 나서서 이 인종차별 문제를 성토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갑작스러운 전환을 맞았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일 흑인 여학생의 주장이 근거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이런 주장의 근거는 버스 안의 감시카메라 영상이었다. 당시 녹화된 영상을 보면 뒷자리에서 피해자라고 주장하던 한 여학생이 반대편에 앉은 백인 여성과 말싸움을 하던 중 갑자기 일어나 때리기 시작했고 이에 주변의 사람들이 뜯어 말렸다. 흑인 여학생들의 주장과는 달리 백인 여성이 폭행을 당한 것이다.
많은 사람이 배신감을 느꼈고, 여론은 이제 반대로 흑인 여학생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미국 언론의 특성상 이미 이름과 얼굴이 노출된 흑인 여학생들은 이제 증오범죄의 대상이 돼 버렸다. 배신감에서 생긴 분노는 무서운 것이다. 표현되지 못한 분노는 사람들을 정신적, 신체적인 극한까지 끌고 올라가고, 분노로 좁아진 시야는 하지 말아야 할 말과 행동을 일으킨다. 흑인 여학생들의 변호사는 그녀들이 심지어는 살해 협박까지 있다고 했다. 흑인 여학생들에 대한 대중들의 배신감과 그에 뒤따른 폭력적인 말과 행동은 충분히 한국 사회에서도 볼 수 있다.
뉴욕 타임스의 보도에서 흥미롭게 본 대목은 흑인 여학생들의 거짓말 배신 폭력이 아니었다. 그보다 SUNY 다문화 센터에서 일하며 흑인 여학생들을 도와주던 앰벌리 카터의 인터뷰가 눈길을 끌었다. 카터는 인터뷰에서 "이번 논란이 그동안 학생들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인종차별 문제를 캠퍼스에 던져줬다"며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흑인 여성들을 보호하지 말아야 하나요"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세 흑인 여학생들의 거짓말 때문에 일어난 것이지만, 결과는 SUNY에 인종차별 문제를 재인식하는 계기를 준 것이다.
만일 흑인 여학생들의 주장이 허위라는 것이 밝혀지면 법에 따라 응당한 결과를 받아야 한다. 따라서 대중이 흑인 여학생들을 심판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거짓말을 했다고 인종차별 문제를 개선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 역시 어리석다. 그보다 대중은 개인적인 분노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인종차별에 대한 인식과 반성에 더 집중을 해야한다. 그래야 사회 발전이 있을 수 있지 않겠는가. 만일 한국 사회에서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분노가 분노로 끝나는 사회는 자기 꼬리를 먹어치우는 뱀과 다를 바가 없다.
미국 스톡턴대학 철학과 교수 jby663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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