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반도 정세 전반 긴장 불가피
- 상황따라 남한에 국지도발 우려

미국과 쿠바의 국교정상화 선언 이후 조심스럽게 해빙기류가 점쳐지던 북미관계가 급속히 냉각되는 모습이다.

미국이 소니 픽처스 엔터테인먼트(이하 소니) 해킹사건을 "북한의 소행"이라고 공식 지목하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응징'을 예고한 상태다. 미국이 사이버 범죄와 관련해 특정국가에 책임이 있다고 규정한 것은 이례적이다. 앞으로의 후속 대응 방향과 그에 따른 북한의 반발 강도에 따라 북미관계는 물론 한반도 정세 전반에 긴장의 파고가 크게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19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지금까지 조사결과 북한 정부가 이번 해킹 행위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FBI 조사결과, 해킹 공격에 사용된 테이터 삭제용 악성 소프트웨어와 북한의 해커들이 과거에 개발했던 다른 악성 소프트웨어가 연계돼 있다는 것. FBI는 특히 특정 명령어와 암호화 기술, 데이터 삭제 기법 등에서 유사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반응은 강경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오바마는 "우리는 북한에 '비례적으로'(proportionally)으로 대응할 것"이라며 "적절한 장소와 시간, 방법을 선택해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번 사안에 대해 단순히 일개 영화사에 대한 해킹 차원을 넘어 미국의 안보와 국익을 위협하는 '엄중한 국가안보 위험'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특히 소니의 '인터뷰' 개봉 취소 후 "미국이 북한에 굴복했다"는 비판여론과 쿠바와의 국교정상화 선언 이후 공화당 내에서 "독재자들에게 양보만 한다"는 비판론 제기 등도 오바마 대통령이 북한을 향해 강경한 태도를 취하게 만든 요인으로 평가된다.

이와 관련,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State Sponsors of Terrorism)으로 재지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한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조치를 6년 만에 재검토하는 것으로서, 실제로 재지정되면 북미 관계에 상당한 파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복수의 워싱턴 소식통은 20일 "미국의 여러 가지 '비례적 대응' 옵션의 하나로 테러지원국 재지정에 대해 공식적인 검토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익명의 미국 고위당국자를 인용해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현재 미국이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한 나라는 쿠바, 이란, 시리아, 수단 4개국이다. 쿠바는 미국과 국교정상화 이후 해제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면 무역, 투자, 원조, 국제신용, 금융거래에서 후속 제재가 뒤따르지만 북미간의 교역규모가 워낙 미미한데다 북한이 이미 강도 높고 폭넓은 제재 하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그 효과는 상징적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으로서는 최근 인권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론이 고조된 가운데 테러지원국이라는 오명까지 씌워지면서 국제적 고립이 더욱 심화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후속대응이 어떤 식으로 현실화되든 북한이 강력 반발할 것은 자명해 보인다. 사이버 공간에서 미국과 북한이 '팃포탯'(tit for tat·맞받아치기) 식의 해킹 공방을 전개할 가능성이 있고, 상황에 따라서는 북한이 한국을 상대로 사이버 공격이나 국지도발을 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유화적 분위기가 조성되던 북미관계와 한반도 정세는 급속히 냉각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18일 유엔 총회의 북한인권결의안 채택에 이어 22일 유엔 안보리에서 북한인권을 공식 의제화할 가능성이 커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일부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