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쿠바가 17일(현지시간) 53년 만에 국교 정상화를 추진하겠다고 전격 선언한 뒤 쿠바계 미국인의 반응은 양분됐다.

마르코 루비오(플로리다) 연방 상원의원을 비롯한 공화당 인사는 물론 민주당의로버트 메넨데스(뉴저지) 상원의원 등 쿠바에 연고를 둔 정치인들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외교 정상화 선언에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쿠바의 정치·사회적 상황이 전혀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의 일방적인 양보로 이뤄진 국교 정상화 추진을 수용할 수 없다는 게 이들의 반대 이유다.

이에 반해 쿠바에서 이주한 다수 미국민은 쿠바에 사는 가족, 친지와의 통신·왕래가 더 쉬워질 것이라며 양국 정상의 결정을 환영했다.

쿠바계 미국인의 밀집 거주 지역인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 시에서는 양측의 지지자가 충돌해 언쟁을 벌이는 장면이 여러 언론 매체의 카메라에 포착됐다.

미국 일간지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는 18일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쿠바를 탈출해 미국에 이주한 시기에 따라 국교 정상화 사안을 바라보는 쿠바계 미국인의 시각이 확연하게 갈렸다고 소개했다.

1991년부터 쿠바계 미국인의 의식을 조사해 온 플로리다 국제대학 사회학과의 기예르모 그레니어 교수는 "쿠바를 탈출한 이민자의 성향은 1995년을 기점으로 갈린다"고 설명했다.

1995년은 미국 정부가 해상에서 해안경비대에 적발되는 쿠바 난민을 쿠바로 되돌려보내는 대신 육지에 발을 들이는 쿠바인에게 영주권 획득 권리를 부여하는 '젖은 발, 마른 발'(wet foot, dry foot) 정책을 시행한 해다.

이 정책에 따라 극적으로 미국 땅을 밟아 합법적으로 미국 거주권을 손에 넣은 쿠바인은 현재 마이애미 쿠바 공동체의 ⅓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쿠바 공동체에서 발언권이 큰 유력 집단은 1995년 이전에 쿠바를 탈출한 이주민이다.

이들은 피델 카스트로가 혁명으로 집권한 이래 펼친 공산화 정책과 그의 독재 성향에 환멸을 느껴 1950년대부터 꾸준히 쿠바를 떠나 미국에 정착했다.

그레니어 교수는 "초기 탈출자들은 쿠바 혁명으로 삶이 완전히 뒤바뀐 사람들"이라면서 "이들은 쿠바에서 누린 삶을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미국을 찾았다"고 분석했다.

이념적으로 카스트로 정권에 강경할 수밖에 없는 초기 이민자 집단과 달리, 1995년 이후 가난과 여러 이유로 쿠바를 탈출한 이들은 덜 이념적이어서 쿠바에 대한 봉쇄 정책 완화에 찬성하는 경향을 띤다고 그레니어 교수는 덧붙였다.

실제 미국의 지속적인 쿠바 봉쇄에 대해 1995년부터 올해까지 탈출한 이들의 58%가 반대해 미국 정부의 쿠바 탈출 프로그램에 따라 미국에 이주한 1965년부터 1973년 탈출자들(43%)보다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쿠바 반체제인사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이주해 마이애미에서 태어난 페르난도 미로는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와의 인터뷰에서 달라진 세대 차를 전하기도 했다.

그는 "카스트로 정권에 반대해 쿠바 탈출 후 플로리다 주와 푸에르토리코를 떠돌다가 돌아가신 아버지는 오바마 대통령의 이번 정책을 매우 반대했겠지만 나는 언제나 쿠바로의 귀향을 꿈꿨다"며 아버지와 가족의 뿌리인 고국으로 아버지의 유품을가져가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