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현지시간) 서방의 한 기자가 지난 17일 친러 반군과 교전 중인 우크라이나 동부 상공에서 피격된 말레이시아항공 MH17여객기의 잔해가 떨어진 흐라보브마을 인근 사고현장에서 촬영을 시도하자 반군으로 보이는 총을 든 군인이 이를 저지하고 있다. 이타르타스 연합뉴스

- 조사 협조하는 척하며 시간끌기
- 냉전 이후로 최악 상황 치달아
- 안보리, 오늘 규탄 결의안 표결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말레이시아항공 여객기 피격 사태 수습을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히고는 있으나 연루 의혹을 절대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푸틴 대통령의 이 같은 '부인 전략'은 서방과의 관계를 냉전 이래 최악으로 이끌어 러시아를 심각하게 고립시킬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AFP통신은 20일(현지시간) 러시아가 자국이나 우크라 친러 반군을 겨냥한 국제조사단의 결론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며 여객기 피격에 대한 책임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을 전했다.

미국 등 서방은 우크라 반군이 러시아 지원을 받아 여객기에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결론에 이르면서 러시아 압박을 강화하고 있으나 결정적인 증거가 확보된 것이 아닌 만큼 러시아는 부인 전략으로 일관하며 사태 추이를 지켜볼 것이라는 지적이다.

파리에서 활동하는 러시아 경제학자 세르게이 구리예프는 "증거가 나오더라도 러시아는 책임을 부인할 것"이라며 "특히 간접 증거밖에 없을 때는 더욱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구리예프는 푸틴 대통령에 반대하는 야권 지도자를 공개 지지했다가 탄압을 받고 작년 프랑스로 떠난 인물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러시아가 우크라 반군 문제와 관련해 '지연전략'을 쓰고 있다고 짚었다. 반군과의 관계를 공식적으로 끊으며 위기 돌파를 모색할 수 있는데도 시간끌기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 외교국방정책위원회 표도르 루크야노프 회장은 "푸틴은 러시아어를 쓰는 이들을 지원하겠다는 약속으로 강력한 민족주의 정서를 불러일으킨 만큼 반군 지원을 철회하기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1983년 KAL기 격추 당시에도 당시 소련은 부인할 도리가 없어 요격을 인정했지만 'KAL기가 소련 영공에 고의로 침입해 정찰활동을 벌였고 계속된 착륙 요구에 불응해 격추한 것'이라며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이 같은 전략이 심각한 고립을 자초할 것이라 전망했다. 서구의 강력한 경제제재로 이란식의 고립상태에 빠질 수 있으며 푸틴 역시 심각한 지도력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율리 니스네피치 러시아 고등경제대 교수는 AFP에 "지금 러시아와 서방은 구조적으로 충돌하는 것"이라며 "러시아의 고립이 매우 심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공교롭게도 이날 마르크 뤼테 네덜란드 총리와의 전화 통화에서 희생자 시신 수습과 블랙박스 회수를 돕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유엔 안보리는 말레이 여객기 피격 사건과 관련한 결의안 조율 작업을 마쳤으며 뉴욕 시간으로 21일 오후 3시(한국시간 22일 새벽 4시) 표결을 실시할 것이라고 마크 라이얼 유엔 주재 영국 대사가 밝혔다. 비탈리 추르킨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는 조율된 결의안이 호주가 제출한 초안에 근거했으며, 여기에 러시아 측 초안 내용 일부가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일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