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징용자 귀환·미귀환 여부 표기
- 174명 3·1운동 유공자 인정될듯
'쇠갈쿠리(쇠갈퀴)로 개잡듯이 학살' '죽창으로 복부를 찔렀음' '곡괭이로 학살' 등 일본의 관동(關東·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의 참혹성이 '일본 진재(震災)시 피살자 명부'를 통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일제 강제징용자 명부인 '일정시 징용자 명부'에는 징용자의 귀환과 미귀환 여부가 표기돼 있다. '3·1운동시 피살자 명부'의 일부를 대조한 결과, 174명이 순국자로 새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4일 국가기록원과 독립기념관,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이하 강제동원 피해조사 위원회) 등에 따르면 주일본 한국대사관에서 발견된 23만 명의 명부 67권의 분석을 통해 이런 사실이 새로 드러났다.
먼저 국가기록원 의뢰로 일본 진재시 피살자 명부' 분석을 한 김도형 독립기념관연구소 연구위원에 따르면 명부에 실린 관동대지진 피살자 290명, 3·1운동 때 피살자 명부에 일부 포함된 52명 등 342명 중 실제 피살자는 198명이다.
나머지 144명은 3·1 운동 관계자나 독립운동 참가자, 강제동원된 사람들, 연도를 착각해 잘못 기재된 것으로 보인다고 김 연구위원은 밝혔다.
명부상 피살상황 란(欄)에 어떻게 학살을 당했는지가 일부 기재돼 있다. 경남 창녕 출신의 한용선(당시 23 세) 씨는 '쇠갈쿠리로 개 잡듯이', 경남 함안 출신의 차학기(당시 40 세) 씨는 일본인 '죽창에 복부를 찔려 학살'됐다고 적혀 있다. 경남 밀양 출신의 최덕용(당시 26 세) 씨와 이덕술(당시 22 세) 씨는 '군중이 피습해 살해'당했고, 울산 출신의 박남필(당시 39 세) 씨와 최상근(당시 68 세) 씨는 '곡괭이로 학살됐음'이라고 기재됐다.
김 연구위원은 "관동대지진 때 일본인들은 한국인을 총 또는 칼이 아닌 죽창이나 곡괭이로 참혹하게 살해했던 사실이 명부를 통해 확인됐다"면서 "또 자경단원뿐 아니라 일본헌병 등 학살가해자에 대해 언급이 있는 것도 주목할 점"이라고 말했다.
'일정시 징용자 명부'에 징용자의 귀환·미귀환 여부, 어디로 동원됐는지 적혀 있는 점도 새로운 사실이다. '3·1운동시 피살자 명부'의 일부인 경기도와 충청도 지역 명부를 현재 3·1운동 독립유공자 명부와 대조한 결과, 174명이 유공자로 새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