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학 강서소방서 대응3단장
- 작년 김해공항 기체 화재 지휘
- “사고 7일 전 공항119센터 개청
- 4분 만에 도착, 참사 면해 ‘천운’
- 결과만 보는 사회 시선 아쉬워
- 현장의 책임감도 인정해주길”
지난해 설 연휴 직전인 2025년 1월 28일 오후 10시26분께. 김해국제공항에서 홍콩 첵랍콕국제공항으로 향하려던 에어부산 391편의 기내 선반에서 연기가 피어 올랐다. 항공기 보조배터리 휴대 절차를 강화하는 도화선이 된 에어부산 391편 화재 사고의 시작이었다. 사고 당시 비행기에는 15만ℓ에 달하는 항공유가 가득 차 있었다. 화재가 조기에 진압되지 않았다면 주기장에 있던 비행기가 폭발해 탑승객은 물론 청사 내부까지 사상자가 나올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대형 참사를 막을 수 있었던 건 현장에 투입된 현장대응단과 소방당국의 사투 덕분이었다. 국제신문은 9일 소방의 날을 맞아 당시 현장을 지휘했던 강서소방서 김동학 소방령(현장대응3단장·사진)을 만났다.
■사고 직전 연이은 천운
사고 당시 소방대가 현장에 닿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4분이었다. 사고가 나기 불과 1㎞ 남짓 떨어진 곳에 공항119안전센터가 임시 개청하며 거점 역할을 해냈기 때문이다. 임시 개청과 함께 해당 센터에 배치되며 근무하고 있던 김 단장도 화재 현장에 지체 없이 출동해 현장 지휘에 나섰다. 공항119안전센터의 개청이 대형 참사를 막아낸 첫 단추가 된 셈이다.
김 단장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비행기 꼬리날개 쪽 벌크헤드(동체 격벽)가 불에 타며 열려 있었고, 그 틈으로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연기와 불길은 천장을 타고 조종석 방향으로 거세게 밀려들어갔다. 이날 부산에 강풍주의보가 발령된 데다, 바람 방향이 꼬리날개에서 조종석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 단장은 “연소 속도가 기이할 정도로 빨랐다”고 돌아봤다. 하지만 윈드시어(급변풍) 때문에 예정 시각보다 출발이 약 30분 지연된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그는 “제 시간에 정상 출발했다면 제주도 상공 쯤에서 착륙도 못하고 대형 참사가 났을 것”이라며 “지상에 대기 중이었기에 사상자 없이 승객과 승무원 전원이 조기에 대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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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월 일어난 에어부산 391편 화재 사고. 부산소방재난본부 제공 |
■대원 안전과 시민 안전 사이 딜레마
당시 사고 비행기에는 홍콩으로 떠나기 위해 항공유 3만5000갤런(약 15만ℓ)이 날개에 있는 연료탱크에 가득 적재돼 있었다. 김 단장이 동분서주하는 동안에도 불길이 솟구치는 비행기에서 불과 2~3m 앞에서 대원들이 육탄 진격하고 있었고, 비행기 주기장 바로 뒤편 150m 지점에는 김해공항 여객 터미널과 사무동 건물이 있었다.
김 단장은 “현장에서 10초 동안 거대한 내적 갈등이 일었다”고 털어놨다. 대원의 안전을 생각한다면 유류 폭발에 대비해 대원들을 퇴각시키는 방어 전술을 펴야 했다. 그러나 주기장에 서있는 비행기가 폭발한다면 관제탑은 물론 공항 청사까지 피해를 입을 수 있었다. 최악의 경우 청사에 있던 시민과 직원까지 사고의 희생자가 될 수 있었다.
김 단장은 대원들의 안전을 위해 퇴각할지, 폭발을 막기 위해 뛰어들어야 할지 잠시 고민한 끝에 장화도 제대로 신지 못한 상태로 최전선으로 뛰어들었다. 연료탱크가 위치한 날개만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린다는 생각이었다. 지휘관의 방침이 세워지자 소방 당국은 가용 가능한 특수 장비를 현장으로 대거 집결시켰다. 우선 날개와 동체 하부 주위에 거품막을 입힐 수 있는 고성능 화학차들을 집중 투입했다. 이어 김 단장은 관내 공단에서 수없이 접했던 공장 화재와 항공기 화재의 양상이 유사하다는 점에 착안해 관내에 단 2대뿐인 무인파괴방수탑차 투입을 지시했다. 이 차량은 장비 끝에 달린 파괴기로 구조물을 뚫고 물을 뿌리는 특수 장비다. 현장에 도착한 무인파괴방수탑차는 비행기 동체 천장을 뚫고 들어간 뒤, 기내로 직접 고압 소화수를 쏘아 외부에선 접근할 수 없었던 발화 지점을 정확히 타격했다.
거세던 불길은 1시간 만에 자취를 감췄다. 동체 상부를 완전히 태운 불이 날개 위에서 칼로 자른 듯이 멈췄다. 큰 불이 잡히자 김 단장은 대원들과 함께 기내로 진입해 잔불 정리까지 완벽히 마쳤다. 김 단장은 지휘를 마치고 난 후에야 운동화 차림으로 젖은 얼음밭을 뛰어다닌 그의 발이 퉁퉁 불어 있음을 깨달았다.
■“재난은 무용담 될 수 없어”
김 단장은 “잊을 만하면 주변에서 이야기를 꺼내 그 때가 다시 떠오른다. 재난은 무용담이 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다시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오직 현장 상황에 맞춰 최선을 다해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고백하는 김 단장의 눈시울은 불거져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다시 똑같은 항공기 화재가 터진다 해도, 나는 현장 책임자로서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날개 연료탱크를 방어하기 위한 그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단장이 정작 경계하는 것은 현장의 긴박했던 고뇌는 간과한 채 사후 결과만 놓고 매뉴얼(SOP)대로 했느냐, 잘했느냐 못했느냐를 따지는 사회적 시선이다. 그는 “만약 그때 대원 안전을 생각해서 뒤로 물러섰다가 항공기가 폭발했으면 소극적 대응으로 청문회에 서고 문책을 당했을 것이다. 반대로 공격적으로 대원을 진입시켰다가 사상 사고가 발생했더라도 그 책임은 온전히 지휘관인 제가 져야 한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정형화된 매뉴얼로는 담아낼 수 없는 무거운 책무가 현장지휘관의 어깨에 지워져 있는 셈이다.
인터뷰를 마친 김 단장은 당부의 말을 전했다. 향후 또 다른 재난 현장에서 결과를 놓고 논하기 이전에, 현장지휘관이 내릴 수밖에 없었던 외로운 선택을 한 번 더 상기해 달라는 것이었다. “전국의 현장대응단장들이 가진 사명감은 똑같다. 시민의 생명과 재산, 그리고 내 대원들의 안전이라는 숙명 사이에서 하루하루 외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다. 나중에 또 다른 재난이 발생했을 때, ‘저 사람은 그 현장에서 왜 저렇게밖에 할 수 없었을까’라고 한 번만 더 생각해보셨으면 한다. 지휘관이 짊어진 판단과 책임감을 우리 사회가 조금은 이해하고 인정해 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