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 여자친구를 살해해 징역 30년형을 확정받은 ‘부산 연제구 교제살인 사건’ 가해자가 살인에 앞서 피해자를 반복적으로 스토킹한 혐의로 비교적 가벼운 형을 선고받았다. 유족은 “경찰의 스토킹 수사가 제때 이뤄져 살인 사건과 함께 기소됐다면 합당한 형이 나왔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부산지법 형사11단독 이호연 판사는 19일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과 폭행 혐의로 기소된 30대 남성 김모(33) 씨에게 징역 1년2개월을 선고하고 스토킹 치료프로그램 40시간 수강을 명령했다. 앞서 검찰은김 씨에게 징역 3년을 구형했다.
김 씨는 2024년 8월 21일부터 같은 해 9월 3일까지 피해자가 연락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는데도 전화와 문자메시지 등을 보내는 방법으로 71차례 스토킹한 혐의를 받았다. 같은 해 5월 5일에는 피해자 주거지에서 말다툼하다 피해자를 밀쳐 넘어뜨린 혐의(폭행)도 받았다.
김 씨는 재판에서 피해자와 관계를 회복하려고 연락했을 뿐 스토킹 범죄를 저지를 고의가 없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그러나 이 판사는 “이성관계에서 관계 회복을 위해 연락하려 했다는 사정만으로는 이 사건 범행의 행위나 태양, 횟수 등에 비춰 그 주장이 타당하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이번 재판은 김 씨가 저지른 살인 사건과 별도로 기소가 이뤄졌다. 피해자 유족이 고인 휴대전화에서 김 씨가 피해자에게 반복적으로 연락한 내용을 발견하면서 뒤늦게 수사가 시작된 것이다. 피해자는 김 씨 문제로 세 차례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도 전해졌다.
유족에 따르면 처음 경찰은 피해자의 휴대전화 속 내용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 등 스토킹 범죄 정황을 들여다 보지 않았다. 유족은 직접 사설 업체에 의뢰해 피해자 휴대전화를 복구, 경찰에 수사를 요청했다. 그런데도 수사에 진척이 없었다가, 2024년 10월 국정감사에서 해당 사안이 지적되자 그제서야 조사가 진행됐다고 한다. 부산경찰청 내부 관리기준상 교제폭력·스토킹 피해자가 1년 안에 3회 이상 신고하면 A등급, 2회 이상이면 B등급으로 분류·관리돼야 한다. 그런데 피해자는 세 차례 신고했는데도 B등급으로 관리됐던 사실이 당시 국회 국정감사에서 지적됐다.
김 씨는 결국 2024년 9월 3일 부산 연제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피해자를 살해했다. 마지막 신고일로부터 약 열흘 만이다. 그는 미리 흉기를 준비한 채 오피스텔 앞에서 약 4시간 기다리다 피해자가 배달 음식을 받으려고 문을 연 틈을 타 집 안에 들어갔고, 재결합을 요구하다 피해자를 흉기로 11차례 이상 찌른 것으로 조사됐다.
살인 사건 1심은 김 씨에게 징역 25년을 선고했지만, 항소심은 범행 경위와 수단, 피해 정도 등에 비춰 형이 가볍다며 징역 30년과 보호관찰 5년으로 형량을 높였다.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김 씨의 상고를 기각해 이 형을 확정했다.
살인 사건과 별도로 이어진 이번 스토킹 재판을 앞두고 유족은 엄벌을 요구하는 시민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유족 측은 반복되는 스토킹과 교제폭력이 살인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스토킹 행위 자체에 대해서도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호소해 왔다.
유족은 경찰 수사가 적시에 이뤄지지 못했다고 호소했다. 피해자의 모친은 이날 “경찰이 처음에는 사건을 단순 살인으로만 조사했고, 스토킹에 대해서는 전혀 수사하지 않았다. 딸의 휴대전화도 열어보지 않은 채 돌려줘 우리가 사설업체에 맡겨 직접 증거를 찾았다”며 “경찰이 뒤늦게서야 다시 수사한 점이 많이 아쉽다”고 말했다.
유족은 양형부당으로 항소하는 한편 김 씨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제기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