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 타도! 유신 철폐!” 짧고 단호한 외침이 캠퍼스를 깨웠다.
1979년 10월 16일 오전. “청년 학도여, 지금 너희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부산대학교 경제학과 2학년 정광민 씨가 유신헌법 철폐와 박정희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유인물을 뿌리며 시위의 불씨를 댕겼다. 도서관을 지나 운동장을 돌 무렵, 행렬에 선 학생 수는 수백에서 수천으로 늘었다. 그날의 장면은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이 만든 ‘부마아카이브(Buma Archives)’에 생생히 담겼다. 아카이브에 보존된 한 학생의 일기는 당시 긴박했던 현장을 이렇게 기록한다.
‘모두 떨고 있었지만,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누가 먼저였는지도 모르게 교문을 향해 달렸다. 독재 타도! 유신 철폐! 구호가 우렁차게 이어졌다. 이 움직임이 결코 끝나지는 않을 것 같다. 너무나 오랫동안 억눌린 울분이기에…’.
부산대에서 시작된 외침은 곧 도시 전체를 저항의 함성으로 덮었다. 학생들의 행렬은 남포동과 서면으로 이어졌고, 퇴근길 시민이 합세하며 마침내 민주화의 불길이 치솟았다. 다음 날 파출소와 경찰서, 도청이 공격당하는 등 항쟁은 더 격렬해졌다. 사흘째 시위는 경남 마산과 창원으로까지 확산했다.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병력을 투입했지만, 항쟁의 열기는 식지 않았다.
그날, 시위에 참여했던 시민은 이렇게 회고했다. “젊은 학생들이 거리로 나선 순간, 우리 모두의 두려움이 희망으로 바뀌었다.”
항쟁이 시작된 지 열흘 뒤인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되며 유신 체제는 종말을 맞았다. 비록 부마민주항쟁은 며칠 만에 진압됐지만, 두려움을 이겨낸 시민의 함성은 민주화의 역사를 새로 썼다.
부마민주항쟁은 4·19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과 함께 한국 현대사 4대 민주화운동으로 꼽힌다. 하지만 지난 세월 그 의미가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다. 그러다 40주년을 맞은 2019년, 항쟁일인 10월 16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며 위상을 찾았다.
46년이 흐른 지금, 같은 교정을 걷는 청년에게 부마민주항쟁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한 부산대 학생은 “부마민주항쟁이 멀게만 느껴졌는데, 우리 학교에서 시작됐다는 걸 알고 나니 자유의 무게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은 “요즘 세대의 저항은 꼭 거리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온라인에서 목소리를 내고, 사회 문제를 공유하며 연대하는 것도 또 다른 형태의 저항”이라고 했다.
1979년 10월 16일, 그들은 왜 책상 앞이 아닌 거리로 나섰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유신 독재에 신음하는 이웃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어서다. 분노와 부끄러움, 그리고 시대를 향한 책임감이 학생들을 교문 밖으로 이끌었다.
부산대 교정 한편에는 ‘부마민주항쟁기념비’와 ‘10·16기념관’이 있다. 온라인의 부마아카이브에 더해 이 공간들은 단지 과거의 흔적을 담은 곳이 아니다. 현재를 향해 말을 거는 ‘깨어 있음’의 상징이다. 2025년 부산대 학생들은 46년 전 그날의 함성이 스민 교정을 걷는다. 민주화를 갈망한 선배들의 발자국 위에 발걸음을 겹친다. 선배들의 결연한 외침을 듣는다.
부마민주항쟁은 오는 16일 46주년을 맞는다. 새로운 전환을 준비한다.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은 지난 13일 우원식 국회의장을 만나 항쟁 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해 달라고 요청했다. 항쟁일을 국가기념일로 만든 시민 염원이 다시 한번 빛을 발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