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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656> 한자와 한글 ; 우리 국어

  • 박기철 소락소암 암장·전 경성대 교수
  •  |   입력 : 2025-07-27 19:31:06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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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주민센터에서 가족관계등록부를 뗄 일이 있었다. 그런데 내 이름의 한자가 잘못 기재돼 있었다. 박기철 내 이름의 끝 글자는 철(徹)인데 철(澈)로 되어 있었다. 깜짝 놀랐다. 일어날 기(起) 뚫을 철(徹)! 내 이름을 삼삼하게 지어주신 할아버지도 저승에서 펄쩍 놀라셨을 거다. 목적을 끝까지 이루는 관철의 철(徹)이다. 뜬금없이 맑을 철이라니? 조선시대 정철(鄭澈)이 맑을 철을 쓴다. 한글로 박기철은 똑같지만 나 朴起徹과 朴起澈은 완전히 다르다. 결국 내 본적지 해당구청에 정정신청서를 제출해 원래대로 바로 잡을 수 있었다.

우리 국어를 온전하게 하는 한자와 한글
그런데, 앞으로 한자이름이 잘못 기재되어 있어도 나처럼 정정하는 사람이 없어질 듯하다. 한글전용 팽배로 국어에서 한자가 소멸되는 세상에 살고들 있기 때문이다. 한자 이름이 틀렸는데도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며, 설령 안다고 해도 굳이 정정하지 않아도 되는 현실이다. 한자로 내 이름의 의미야 틀리건 말건 상관없는 시대다. 이제 자기 이름을 한자로 쓰지 못하는 사람이 대다수다. 자기 이름 한자를 몰라도 당연히 창피해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한자는 쓰러지고 한글만 남는 시대다. 먹고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으니 뭐가 문제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과연 그럴까?

우선 내가 한글만 써야 한다는 한글전용론에 찬성하는 입장이라고 치자. 그런데 내 아이가 학교에 들어갔다. A선생님은 한글로만 국어를 가르친다. 서랍은 빼었다 끼었다 하는 뚜껑없는 상자, 썰매는 눈 위에서 탈 수 있는 기구, 용수철은 탄력있는 나선형 쇠줄, 독수리는 날카로운 부리 발톱으로 동물을 잡아먹는 새, 아령은 양손에 하나씩 들고 팔운동을 하는 기구라고 가르친다. B선생님은 입에서 넣었다 뺐다 하는 혀 설(舌)처럼 만든 그릇 합(盒)인 설합이 서랍, 눈 설(雪) 위에서 타는 말 마(馬)인 설마가 썰매, 용(龍)의 수(鬚)염처럼 구불구불한 철(鐵)이 용수철, 용(龍)의 혀 설(舌)처럼 생긴 난(蘭)초가 용설란, 머리털 없는 대머리 독(禿) 수리라 독수리라고 한자의 의미를 곁들여서 가르친다고 하자.

나는 과연 A와 B 중 어느 선생님한테 내 아이를 맡기고 싶을까? 자식교육 앞에선 진실이 드러난다. A선생님은 수평선을 가로로 그은 선, 수직선을 세로로 그은 선이라 가르치는데 B선생님은 평평하게 있는 물 수(水)를 써서 수평선, 위아래로 드리울 수(垂)를 써서 수직선이라 가르칠 때 누가 제대로 가르치는 걸까요? B선생님한테 한자를 통해 한글과 국어를 배운 아이가 머리가 좋아져 공부를 더 잘 할 수 있다.

‘ㅃㅞㄺ’처럼 한글은 이 세상 그 어떤 언어의 발음도 쓸 수 있는 최고로 훌륭한 과학적 표음문자다. 한글을 올바로 쓰려면 한자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돈과 상품을 주고받는 결제(決濟)와 사장님한테 허락받는 결재(決裁)를 틀리지 않는다. 당(唐)나라로부터 와서 당면 당근 당나귀다. 북방 오랑캐 호(胡)로부터 와서 호떡 호두 호주머니다. 수천 년 전부터 우리는 국어생활에서 한자를 써왔다. 한자어로 된 우리말이 2/3나 된다. 한자가 사라지면 한글도 망가지고 국어는 엉망이 된다. 자신의 성명부터 한자다. 한자로부터 독립할 수 없는 게 국어다. 독립하면 머릿속이 파편화되어 생각이 빈약해진다. 하이브리드 언어인 우리 국어에서 한자와 한글을 연결하면 의미연결망이 촘촘해진다.

예를 들어 수작 짐작 무작정처럼 아무런 상관이 없이 보이는 단어들이 술따를 작(酌)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연기(演技) 연기(延期) 연기(煙氣) 연기(緣起)의 차이도 안다. 국어력이 향상된다. 사고력 이해력 창의력 소통력이 따라온다. ‘한자+한글=국어’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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