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가운 햇볕에 벌겋게 타들어가는 피부,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찌는 날씨, 그래도 멈출 수 없는 노동. 한 택배기사는 “여름이 두렵다”고 말합니다. “택배 배송을 하다 보면 숨이 차고 심장이 조이는 것 같은 통증을 느끼거나 현기증이 나는 때가 있습니다. 특히 여름철은 이런 증상이 더 심해요. ‘이대로 계속 일하면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든 적도 많습니다.”

지난 3일 부산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뜨거운 햇빛 아래 작업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후변화 탓에 재난 수준이 된 여름철 폭염으로 노동자들의 작업 환경은 하루가 다르게 ‘달아오릅니다’. 매년 여름이면 ‘살인적 더위’로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습니다. 그러면 정치권은 폭염에 취약한 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보호할 대책을 논의합니다. 더위가 한풀 꺾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이야기가 쏙 들어가고요. 법이 미적대는 사이 더운 여름 공기 순환도 잘되지 않는 대형마트 지하 주차장에서 카트 정리를 하던 노동자, 에어컨 설치 공사를 하던 노동자가 숨졌습니다.

근로복지공단에 집계를 보면 온열질환 산업재해 신청 건수는 ▷2018년 35건 ▷2019년 26건 ▷2020년 13건 ▷2021년 19건 ▷2022년 23건 ▷2023년 31건 ▷2024년 57건으로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2020년부터 지난 4월까지 온열질환 산업재해로 승인된 건수는 145건으로, 이 가운데 사망사고는 17건에 달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정부는 폭염에 노출되는 장소에서 작업해 온열질환이 발생할 우려가 있을 때 사업주가 적절한 휴식 시간을 부여하도록 가이드라인을 마련했습니다. 지난해 5월 ‘폭염 대비 근로자 건강 보호 대책’을 수립해 체감온도 33도를 넘으면 매시간 10분, 35도를 넘어가면 매시간 15분 휴식을 주도록 했는데요. 그러나 정부의 가이드라인은 ‘권고’에 그쳐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었죠.

이에 국회는 지난해 10월 사업주의 보호 조치 의무에 ‘폭염·한파에 장시간 작업함에 따라 발생하는 건강 장해’를 명시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후속 조처로 ‘체감온도 33도 이상일 때 작업 장소에서 폭염 작업을 할 경우 2시간마다 20분 휴식을 부여한다’는 의무 조항이 포함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개정안도 마련했지만, 여기서 제동이 걸립니다.

윤석열 정부 규제개혁위원회가 “획일적 작업 중지 명령은 사업장에도 부담”이라는 이유로 철회를 권고한 것인데요. 문제 조항 외에도 ▷사업장 온·습도계 비치 ▷폭염 때 조치 사항 기록 ▷실내 폭염 작업장 냉방시설 설치 ▷온열질환 발생 의심 때 119 신고 등 다양한 사업주 의무 사항을 구체화한 내용이 담겼지만, 이 또한 시행에 공백이 생기게 됐습니다. 애초 안전보건규칙은 산안법 개정안 시행에 맞춰 지난달 1일 시행될 예정이었지만, 고용노동부가 규제개혁위 철회 권고 조항을 재검토하고 다시 입법예고하기로 하면서 시간만 흐르고 있습니다.

대신 노동부는 일단 법적 강제력이 없는 기존 ‘가이드라인’을 바탕으로 현장을 지도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실성에 의문이 제기됩니다. 강기영 민주노총 부산본부 미조직전략조직국장은 “법에 규정된 내용이 아니다 보니 사업장에서 휴식 여부를 판단할 수밖에 없고, 법적 강제력이 없어 실행되기 어렵다고 본다”며 “노동부가 신속하게 안전보건규칙을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