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알고 지낸 이웃 주민을 만취 상태에서 아무 이유 없이 흉기로 여러 차례 공격해 살해한 60대에게 징역 20년의 중형이 떨어졌다.13일 법조계에 따르면 부산지법 형사7부(신형철 부장판사)는 살인 혐의로 기소된 A(60대) 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더불어 2년간 보호관찰을 받을 것을 명령했다. A 씨는 지난 1월 3일 부산 영도구 자신의 집에서 함께 술을 마시던 이웃 B(여·50대) 씨를 흉기로 이유 없이 공격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았다.

1심이 인정한 범죄사실을 보면 A 씨는 B 씨와 약 10년 전부터 이웃 관계로 지냈다. 그는 B 의 동거인인 C 씨와도 친해져 한두 달에 한 번씩 두 사람의 집을 찾아가 술을 마시곤 했다. 다만 술에 취하면 이웃 주민에게 욕하거나 고함을 치는 등 폭력적 성향을 보이기도 했다.

당일에도 A 씨는 오전 11시 두 사람의 집을 방문해 막걸리 6병을 나눠마신 뒤 그날 오후 3시께 귀가했다. 그러다 그는 B 씨로부터 “네 집에서 술을 좀 더 마시자”라는 제안을 받았다. 마트에서 막걸리 두 병을 구매해 B 씨와 함께 자신의 집으로 들어간 A 씨는 같은 날 오후 6시께 알 수 없는 이유로 격분해 흉기를 들고 B 씨의 왼쪽 어깨와 겨드랑이를 수십 회 찔렀다. 그리곤 촛대로 B 씨 머리를 때렸다.

그는 당일 오후 6시30분께 “내가 사람을 죽였다, 죽어간다”는 취지로 112에 신고 전화를 넣었다. 그는 신고 받은 경찰관과 대화하는 중에도 계속해서 촛대로 B 씨의 머리를 여러 차례 때렸다. 근처 대학병원으로 옮겨진 B 씨는 결국 다음 날 오후 1시25분께 외상성 폐손상으로 인한 폐부전으로 목숨을 잃었다.

A 씨는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당시 시커먼 형체의 러시아인 남자가 먼저 피고인을 덮쳤고 그 뒤편에도 러시아인 남자가 2명 더 있었으며,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과도로 러시아인 남자를 2~3회 찔렀다’는 취지로 진술해왔다. 또 자신은 B 씨에게 아무런 원한이나 악감정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심신미약 상태였다는 점을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112 신고에서도 드러나듯 당시 A 씨가 자신이 사람을 죽이려고 흉기를 휘둘렀고 그 사람이 죽어간다는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을 들어 흉기로 사람을 공격해 살해하려는 의사가 있었다고 봤다. 또 A 씨 자신은 당시 아무런 피해를 받지 않은 점을 토대로 누군가로부터 공격을 받는다고 여겼을 만한 이유도 없었다고 판단했다.

A 씨는 한국 성인 범죄자 재범위험성 평가척도(KORAS-G) 평가 결과에서 ‘중간’ 수준에 해당하는 점수를 받았다. 또 대검찰청 임상심리분석관은 그를 두고 ‘피고인의 종전 범죄 및 이 사건에서 음주 상황에서의 범죄 행동이 관찰되고, 음주 관련 문제 행동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분석 청구 전 조사 결과에서도 ‘피고인이 향후 유사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재판부는 “A 씨는 오랜 기간 알고 지낸 피해자와 술을 마시던 중 피고인 스스로도 기억하지 못할 만큼 사소한 이유로 피해자의 몸통, 팔, 어깨 부위를 수십 여회 찌르고 피해자의 머리 부위를 둔기로 수회 내리치는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했다”며 “피해자는 극심한 육체적·정신적 고통 속에서 생을 마감했고, 무연고자로 장례가 치러졌다. 피고인은 중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러시아인 괴한이 자신을 먼저 공격하여 방어할 의사였다고 주장하며 이 사건 범행에 따른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