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韓 부산~日 규슈 잇는 해저터널
- 유라시아·유럽까지 연결 기대
- 건설 20년, 100조 드는 대공사
- 생산 유발 33조 경제효과 추산

- 다만 조사기관별 편익 온도차
- 양국 합의·과거사 문제 ‘큰 산’

- 조사 사갱 간 신한일미래포럼
- “국경 초월 연결, 동북아 평화로”

가깝고도 먼 나라. 한국인이 일본을 지칭할 때 흔히 쓰는 수식어다. 지리적으로 가깝지만, 아직 풀지 못한 과거사 문제 등으로 인한 두 나라 사이의 심리적 거리감을 담은 표현이다. 한일관계는 정치·외교 상황에 따라 냉탕과 온탕을 오가지만, 두 나라가 ‘경제 공동체’로서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음은 분명하다. 공동의 번영을 위해 두 나라가 실용적으로 협력해야 할 부분이 존재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약 540m 길이의 한일해저터널 조사 사갱 해수면 아래 56m 지점까지 내려간 신한일미래포럼 방문단이 현장 책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특히 올해 한일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은 가운데 1980년대부터 본격화한 ‘한일해저터널’ 건설 논의가 또 다시 제기된다. 일본과의 굴곡진 역사가 곳곳에 남아 있는 부산과 거리가 가까운 규슈를 해저터널로 연결, 경제적 이익뿐만 아니라 평화와 유대의 가치까지 실현한다는 취지다. 국제신문은 신한일미래포럼과 함께 일본 사가현 가라쓰시를 방문해 한일해저터널 개통에 대한 그간의 움직임과 시도의 흔적을 살펴봤다.

■40년 전 뚫린 ‘가라쓰 조사 사갱’

일본 사가현 가라쓰시의 한일해저터널 조사 사갱 내부에 붙어 있는 예상 완성도.

지난달 27일 찾은 일본 사가현 가라쓰시의 한일해저터널 조사 사갱. 이곳은 40여 년 전인 1986년 한일해저터널 건설을 위한 지질조사를 위해 뚫린 갱도다. 약 540m 길이의 조사 사갱은 해수면 아래 56m 지점까지 이어졌다. 현장 책임자인 오쿠보 소장을 따라 4인용 전동차를 타고 조사 사갱 안으로 들어갔다. 5분을 조금 넘게 달리자 뚫리다 만 갱도 끝을 마주했다. 이 지점에는 한일해저터널 완성 예상도가 붙어 있었다.

오쿠보 소장은 “우리가 조사 사갱 입구가 있는 지상 75m에서 해저 56m까지 내려온 것”이라며 “한일해저터널 건설 시도의 장소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지금은 막혀 있는 이 갱도를 계속 뚫어 나가면 터널의 개통 가능성도 열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곳에서 만난 사토 히로후미 국제하이웨이 건설사업단 이사장은 “(한일해저터널 조사 사갱) 현장을 시찰하고 나서 이 사업의 가능성을 느끼시는 분이 많다”며 “이곳뿐만 아니라 이키섬과 대마도 부지도 매입해 터널 개통을 위한 지질조사를 10년 이상 해왔다. 그 덕분에 한일해저터널 건설 계획이 더욱 명확해졌다”고 말했다.

한일해저터널 추진이 논의된 기간만큼이나 기술적인 지형 및 지질조사도 오랜 기간 이어졌다. 한국 측인 부산발전연구원이 제안한 한일해저터널 노선은 부산 강서구-가덕도-남형제도-대마도-이키섬-일본 후쿠오카를 연결하는 총 길이 223㎞ 안이다. 이 노선은 최대 수심이 190m에 해저 구간과 육상 구간이 각각 147㎞, 76㎞다. 건설 기간은 10년, 건설비는 약 92조 원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측인 일한해저터널연구회는 일본 사가현 가라쓰시-이키섬-대마도-경남 거제도-부산 가덕도를 잇는 총 길이 288㎞ 노선을 제안했다. 이 노선은 최대 수심이 160m로, 해저 구간과 육상 구간이 각각 128㎞, 92㎞다. 건설 기간은 최대 20년이 걸리고, 건설비는 약 100조 원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된다.

■‘경제성’ 두고 엇갈린 전망

조사 사갱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방문단.

신한일미래포럼은 한일해저터널 건설이 동북아 지역에 획기적인 변화를 일으킬 국가 간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이라고 강조한다. 한일해저터널 개통으로 일본은 시베리아횡단철도, 유로터널 등과 연결되는 파급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이 구상안이 실현되면 유라시아 육상 교통망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이용 교통수단의 다양화에 따른 요금 절감과 함께 해상 수송 대비 시간 절약 효과도 누릴 수 있게 될 것으로 전망한다.

중앙대 허재완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한일해저터널 개통으로 인한 경제적 효과는 상당하다. 여객 수요는 2040년 연간 956만 명, 2060년 1295만 명에 이를 것으로 집계됐으며, 화물 수요는 각각 5126만ｔ, 7177만ｔ에 달할 것으로 분석됐다. 시장경제연구원은 이 사업으로 인한 생산 유발액이 33조6200억 원, 부가가치 유발액은 13조432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또 26만 명의 고용유발 효과를 낼 것으로 전망했다.

부산이 한일해저터널 기점이 되면 동남권 지역이 새로운 성장 거점으로 부상, 수도권 일극주의를 해소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한일해저터널이 현재 수도권 중심으로 치중돼 있는 국토개발의 균형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단핵형 국토 공간 구조를 다핵형으로 전환, 동남권이 개발 특수를 누릴 것으로 예상한다.

다만, 한국교통연구원 조사와 부산시의 용역에서는 한일해저터널에 천문학적인 건설비가 투입되는 데 반해 경제성은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조사 기관이나 시기에 따라 한일해저터널 경제성에 대한 결과가 엇갈리면서 이 사업은 1980년대부터 한일 양국에서 본격적으로 공론화되기 시작했으나 아직까지 실현되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신한일미래포럼에 따르면 한일해저터널은 1981년 11월 한국 통일교의 문선명 총재가 서울에서 열린 ‘제10회 과학통일에 관한 국제회의’에서 한일해저터널 건설을 촉구하면서 논의에 물꼬를 텄다. 이어 1990년 5월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일본국회 연설에서 한일해저터널을 제안, 가이후 도시키 총리가 찬성 의견을 표명하기도 했다.

2000년대에 접어 들어서도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일해저터널의 필요성을 언급했으며, 부산에서는 허남식 서병수 전 부산시장이 한일해저터널 문제를 공론화했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2021년 가덕도와 일본 규슈를 잇는 한일해저터널 건설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언급할 정도로 이 사업은 40년 넘게 논의돼 왔다.

■“평화와 유대의 가치 실현”

해저터널이 뚫린 세계적인 사례를 살펴보면, 대표적으로 영국과 프랑스를 연결하는 ‘유로터널(채널터널)’과 일본의 혼슈와 홋카이도를 잇는 ‘세이칸터널’이 있다. 유로터널은 1994년 영불해협(도버해협)을 육로로 연결하기 위해 영국의 포크스턴과 프랑스의 칼레 구간에 건설됐다. 총 길이 50.5㎞로 해저 구간이 38㎞에 이른다. 현재 프랑스 테제베(TGV)의 초특급 열차와 유로스타 등이 유로터널을 지나며, 런던과 파리를 2, 3시간 만에 오간다. 특히 영국 포크스턴과 프랑스 칼레는 35분 만에 이동이 가능한 것으로 유명하다.

1988년 정식 개통된 세이칸터널은 일본의 혼슈와 홋카이도 사이의 쓰가루해협을 관통한다. 총 길이는 53.8㎞로 해저 구간이 23㎞다. 세이칸터널은 일본 4개의 큰 섬 중 끝과 끝인 홋카이도부터 규슈까지 연결되도록 해 여객과 화물을 나를 수 있도록 했다.

다만, 한일해저터널이 지진에서 안전한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신한일미래포럼 관계자는 “일본 안에서도 해저터널인 세이칸터널이 운행되고 있고, 지진은 지하보다 지상이 더 위험하다”며 “한일해저터널을 추진하려는 구간에는 큰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고, 지진에 대비한 방재기술을 적용해 건설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신한일미래포럼은 한일해저터널 개통이 단순한 교통수단 확장으로 인한 경제적 효과 외에도 한반도 및 동북아의 평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실현 가능성을 가시화함으로써 갈등 완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국경을 초월해 한국과 일본이 연결, 유라시아와 유럽으로 뻗어나갈 수 있게 되면서 양국의 글로벌 교류 경쟁력이 함께 높아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일해저터널 사업이 초대형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양국 정부의 합의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두 나라 사이의 풀어야 할 숙제인 ‘위안부’ ‘독도’ 등 과거사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이용흠 신한일미래포럼 이사장은 “한일해저터널 건설은 한국이 대륙과 해양을 잇는 핵심국가로 발돋움해 입지를 확대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이는 한국의 입지를 높이는 것뿐만 아니라 ‘평화문화’ ‘평화경제’를 실현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강조했다.

일본 사가현 글·사진=이유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