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자체, 포획법 마땅찮아 골머리
- “먹이활동 못하게 거리 청소할 뿐”
- 일각 “울산처럼 공존 방법 모색을”

부산지역 곳곳이 까마귀로 몸살을 앓는다. 아파트단지와 도로에서는 쓰레기 더미를 파헤치고 난장판을 만들어 놓는가 하면 전깃줄에 줄 지어 앉아 ‘새똥 테러’까지 일삼는다. 최근에는 위협적인 ‘저공 비행’으로 시민을 위협하는 등 까마귀가 도심의 새로운 무법자가 됐다. 이로 인해 까마귀 퇴치를 촉구하는 민원이 빗발치지만 마땅한 해결책이 없어 지자체는 울상이다.

부산 해운대구 좌동 아파트단지 인근 도로에 6일 까마귀떼가 쓰레기봉투를 파헤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이날 사하구 장림동 전봇대 주변에 까마귀떼가 앉아 있는 모습. 김동하 기자

6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도시철도 2호선 장산역 인근. 까마귀 3, 4마리가 종량제 쓰레기봉투를 뜯어 헤집고 있었다. 출근하는 주민이 바로 옆을 지나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부리로 쓰레기를 뒤적이기에 여념 없었다. 까마귀가 파헤친 쓰레기가 도로까지 나뒹굴면서 일대는 아수라장이 됐다. 해운대 좌동 주민 A(40대) 씨는 “비둘기랑 달리 까마귀는 부리도 튀어나왔고 덩치도 커서 무섭다. 아이들이 까마귀에 겁을 먹은 나머지 우산을 쓰고 등교하겠다고 할 정도”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해운대구의 한 골프장에서 까마귀가 지갑과 열쇠 등을 물고 날아가는 일도 있었다. 또 대학가 인근에는 토사물을 쪼아 먹는 까마귀떼가 아침마다 출몰한다. 사하구 하단동 주민 B(50대)씨는 “출근길에 까마귀가 모여 토사물 잔치를 벌이고 비둘기가 순서를 기다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메스껍다”고 말했다.

부산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2022년부터 최근 2년 동안 까마귀 관련 피해 신고 건수는 140여 건에 달한다. 도심에서 피해를 일으키는 까마귀는 주로 텃새인 큰부리까마귀다. 한때 산업화로 인해 자취를 감췄으나 1990년대 이후 도시 녹지 증가 등의 이유로 개체수가 늘었다. 밤에는 도시공원이나 숲에서 쉬거나 자고 낮에는 도심에서 먹이 활동을 한다. 경북대 박희천 조류생태환경연구소장은 “까마귀는 종량제 봉투 안에 분리배출하지 않은 음식물 냄새를 맡고 헤집는다. 5~7세 아동 수준으로 지능이 높아 봉투를 찢으면 먹이를 얻을 수 있다는 학습효과의 영향도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까마귀 피해의 예방책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된 건 까마귀·떼까마귀·갈까마귀 정도다. 큰부리까마귀는 한때 개체수가 급감해 제외됐으나 최근 증가에 따른 피해가 늘어 환경부는 유해조수 지정을 추진한다. 사하구 관계자는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된 종도 부득이한 경우에만 포획이 가능해 직접적인 제재를 가할 방법은 없다”며 “까마귀가 모이지 않도록 쓰레기를 치우는 등 환경정비하는 게 유일한 대책”이라고 전했다.

반면 까마귀 피해를 이색적인 행사로 관광상품화한 사례도 있다. 울산에서는 매년 4만, 5만 마리의 떼까마귀가 월동을 위해 몰려드는데, 지난해 울산시는 까마귀 똥을 맞으면 5만 원을 보상하는 등 ‘운수대똥 울산여행’ 사업으로 까마귀와의 ‘즐거운 동거’를 시도했다. 이로 인해 까마귀는 울산을 상징하는 대표 조류이자 태화강의 관광 명물로 자리매김했다. 물론 지난달 초 태화강 일대 주택가에서 까마귀가 고압 전선을 건드리는 바람에 정전이 되는 일도 있었다. 박 소장은 “큰부리까마귀가 늘어남에 따라 비둘기 개체수가 조절되는 등 도심 생태계 균형이 서서히 맞춰지는 과정이라 본다. 오히려 까마귀와 공존을 위한 환경 개선 과정에서 백로 황새 독수리 등 다른 조류를 보호하는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다”며 “무조건 까마귀를 배척하기보다 너그러운 시선으로 까마귀와의 공존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