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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물의 땅 요충지…‘고대 창녕식 미학’ 탄생하다

가야사…세계속으로 <7> 창녕 비화가야의 퓨전문화

  • 박창희 경성대 교수
  •  |   입력 : 2024-02-25 18:11:11
  •  |   본지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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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녕은 가야세력·신라 점이지대
- 교동·송현동 고분 비화가야 증명
- 계성동 고분군 일대 교역항 추정
- 진흥왕 척경비는 가야 망국 표식

비화가야의 옛터, 창녕은 물과 불의 땅이다. 낙동강과 원시 자연의 모습을 간직한 우포늪, 부곡(釜谷) 온천이 물의 이미지라면, 화왕산(火旺山)과 억새 태우기, 옛 이름인 불사국(不斯國) 비사벌(比斯伐) 비화(非火) 빛벌은 모두 불의 이미지다. 화왕산 자락인 옥천 관룡사 뒤에 있는 용선대(龍船臺), 일명 배바위는 불과 물이 결합한 문화재다.

창녕은 강한 불기운의 지형을 물이 누르면서 낙동강 변의 비옥한 들판과 함께 산과 물, 들이 조화를 이룬 풍요로운 삶터다. 5~6세기 가야와 신라의 점이지대로서 독특한 퓨전문화를 낳은 고대사의 핫플, 비화가야를 찾아간다.
비화가야의 성립과 발전을 말해주는 창녕읍 교동·송현동 고분군에서 시민이 걷기 행사를 하고 있다. 가야고분세계유산등재추진단 제공
■교동·송현동 고분군의 위용

창녕읍내에서 고암 쪽으로 화왕산 기슭을 지나는 20번 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낙타의 대행렬처럼 봉긋봉긋 이어지는 대형 고분군을 만난다. 사적이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창녕 교동·송현동 고분군이다. 고분군은 크게 네 군데 군집을 보이는데, 실제 가보면 방대한 규모와 경관에 대번에 압도당한다. 이곳에 비화가야 왕과 지배층들이 묻혀 있다는 것은 고고학이 밝혀낸 역사적 사실이지만, 그 실체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뜨겁다.

화왕산 자락의 구릉지 동쪽에서 서쪽으로 뻗어 있는 고분군은 대략 300여 기로, 봉분이 남아 있는 것이 120여 기다. 봉분이 유실된 것까지 합치면 전체 고분이 1000여 기에 달한다. 비화가야 전성기에 접어드는 5세기 중반부터 멸망 이후인 7세기까지 집중적으로 조성된 묘역이다. 약 200년간 1000여 기가 조성됐다면 해마다 5기씩 들어섰다는 얘기인데, 당시 기술력으로 볼 때 놀라운 숫자다. 이는 창녕 일대에 강력한 정치세력이 활동했다는 방증이다.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에도 일제의 ‘임나일본부설 망령’이 배회한다. 일제는 임나일본부를 입증한답시고 1910년대에 교동·송현동 고분군을 파헤쳐 마차 20대분, 화차(貨車) 2량분의 유물을 실어냈다고 한다. 그 후엔 도굴꾼들이 달려들었다. 오구라 다케노스케 등 일본인 유물 수집가들은 기회랍시고 희귀 유물들을 일본으로 반출했다. 현재 국립도쿄박물관의 ‘오구라 컬렉션’이라 불리는 오구라의 수집 유물 중 상당수가 창녕 출토 유물이며, 대표적인 것이 6세기께 창녕 출토 금관이다. 총 2점이 발굴된 가야 금관 중 하나는 서울 리움미술관에 있고 다른 하나는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도쿄국립박물관 동양관 5층 조선유물실에 소장되어 있다.
교동 7호분에서 출토된 녹나무 목관(왼쪽 사진)과 가야 소녀 송현이. 창녕군·창녕박물관 제공
■일본산 녹나무 목관의 비밀

창녕 지역 고분군이 재조명받은 것은 2004년이다. 그해 10월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송현동 고분군을 정비하기 위해 6호분과 7호분을 발굴했다. 두 고분은 경주의 황남대총처럼 무덤이 연접된 표주박 형태였다. 7호분에서는 ‘구유형 목관’을 비롯해 금제 귀고리 한 쌍, 은제 허리띠 조각, 동탁(구리방울), 각종 토기류, 그리고 순장 인골 2구가 나왔다. 목관 주변에서는 밤, 참외씨, 복숭아씨 등이 수습돼 제물로 과일을 넣은 것으로 확인됐다. 무덤 바닥에 오랫동안 물이 고이면서 펄이 조성돼 일부 목재 유물의 보존 상태가 양호했다. 축조 연대는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로 추정됐다.

가장 관심을 끈 것은 7호분 석실 바닥에서 출토된 길이 3.3m의 길쭉한 구유형 목관. 일본산 녹나무로 만든 배가 목관으로 쓰였을 것이란 연구 결과가 나오자 제작지와 유입 경로 등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졌다. 당시 낙동강 동쪽 창녕 땅은 대가야, 아라가야 등 가야연맹 주축 세력과 신라가 대치하던 전략 요충지였다. 신라 접경지대인 창녕에서 일본식 목관이 나왔다는 것은 가야와 신라의 대치 구도에 왜라는 변수가 작용했거나 의미 있는 교류가 있었음을 시사한다.

■순장 소녀 송현이를 만나다

가야문화재연구소는 6, 7호분 발굴을 마무리하고 다시 2년 계획으로 15, 16호분 발굴을 시작했다. 두 무덤 역시 표주박 모양이었다. 15호분은 여러 차례의 도굴로 내부가 교란된 상태였으나, 남녀 2인씩 모두 4인의 순장자 인골이 드러났다. 이 가운데 여성 인골 1구는 보존 상태가 양호했다. 발굴이 끝난 후 고고학, 유전학, 법의학 전문가들이 공동연구를 진행해 인체를 복원했다. 이렇게 탄생한 가야인이 ‘송현이’다. 키는 153.3㎝, 허리둘레는 21.5인치(54.6㎝), 나이는 만 16세로 추정됐다. 성장판이 아직 닫히지 않았고 사랑니 또한 턱 속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소녀의 정강이뼈와 종아리뼈엔 노동의 흔적이 새겨져 있었다. 사망 원인은 중독사 또는 질식사로 밝혀져 안타까움을 주었다.

창녕박물관에 가면 가야의 순장 소녀 송현이를 만난다. 무표정한 모습이 묘한 연민을 부른다. 송현이는 자신이 죽고 1500여 년 후에 박물관에서 현대인을 만날 걸 예상했을까. 무슨 말을 건네야 할 것 같은데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 소녀의 안식과 평화를 기원할 따름이다.

■또 다른 비화가야, 계성동 고분군

비화가야에는 닮은 듯 다른 두 유력집단이 있었다. 계성동 고분군 세력과 교동·송현동 고분군 세력이다. 시기적으로는 5세기부터 6세기 전반이며 계성동 세력이 50년 정도 앞선다. 두 세력은 대략 8㎞ 정도 떨어진 곳에 각각 200기가 넘는 고총고분을 남겨 놓았다.

계성 고분군의 존재는 1917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처음 고분 분포도가 작성되면서 드러났고, 1967년 문화재관리국이 본격 발굴을 시작해 총 5차례의 학술조사가 이뤄졌다. 2019년 재발굴한 1호분은 초대형 석곽(돌덧널)으로, 창녕양식 뚜껑굽다리접시와 긴목항아리, 원통모양 그릇받침 등의 토기류와 금동관 편, 금제 귀걸이와 은제 허리띠장식, 말띠드리개와 발걸이 같은 마구류, 무기류 등이 다량 출토됐다. 특히 1호분 배치 형태는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Ⅰ지구 7호분의 배치 양상과 유사해 눈길을 끌었다.

계성고분군 인근 계성리 유적은 가야 시대 국제마을일 수도 있다는 견해도 있다. 계성천이 퇴적되기 전에는 낙동강과 이어지는 수로가 열려 마한인과 왜인 등이 드나든 국제교역 거점이었을 것이란 추론이다. 당시 해수면은 지금보다 6m가량 높아 낙동강은 국제교역선이 드나든 내해(內海)였다. 창녕군 부곡면 임해진(臨海津, 바닷물이 이곳까지 올라온 나루라는 뜻)은 낙동강이 내해의 교역수로로 기능했음을 시사하는 지명이다. 임해진에서 멀지 않은 부곡면 비봉리 패총에서 7000여 년 전 신석기 시대의 국내 최고(最古) 배 유물이 나온 것도 낙동강 수로와 연관 지어 볼 수 있다.

■진흥왕 척경비가 말하는 가야사

창녕군 창녕읍의 진흥왕 척경비. 박창희
화왕산과 낙동강을 낀 창녕은 지리적으로 신라와 대가야가 만나는 전략 요충지다. 창녕은 신라 입장에서 낙동강을 건너 서진하는 부챗살의 꼭지에 해당하는 지점이다. 신라는 555년 창녕 땅에 신라 행정구역인 하주(下州)를 설치했다. 6세기 전반부터 진행해 온 신라화의 결과였다. 진흥왕은 서기 561년 가야 점령의 표식으로 창녕에 척경비(국보)를 세운다. 비석은 우연히 발견됐다.

“1914년 초봄이었다고 해요. 창녕보통학교 학생 하나가 창녕읍 말흘리 화왕산 기슭에 소풍 갔다가 논두렁에서 큰 비석을 발견했다고 해요. 이를 전해 들은 일본인 교장이 본국에 신고해 조사가 됐는데, 이게 진흥왕 척경비였어요. 발견 전까지는 주민들이 돌다리로 사용했다는 소리도 있어요.” 가야사 연구자 김세호 선생의 생전 술회다.

비석이 세워진 서기 561년(진흥왕 22년)은 대가야 멸망 1년 전이다. 554년 관산성(충북 옥천) 전투로 한강 유역을 장악한 진흥왕은 이듬해 창녕의 비화가야를 병합하고 척경비를 세워 가야 서쪽 지역 진출 의지를 천명했다. 척경비에는 진흥왕을 따라온 군신 42명이 관등에 따라 적혔는데, 그중에는 금관가야의 왕자 김무력(金武力)의 이름도 보인다. 이에 앞서 금관가야 구해왕은 532년 신라의 압박과 회유에 못 이겨 나라를 신라에 들어 바쳤다. 김무력은 구해왕의 아들이자 삼국통일의 주역인 김유신의 할아버지다. 가야계의 김유신 가계가 김춘추(태종무열왕)와 문무왕의 지원 아래 신라에서 출세하는 과정은 그대로 드라마다.

진흥왕 척경비는 신라의 전승 기록이자 비화가야의 멸망 표식이다. 이를 계기로 창녕 땅에는 가야식 미학이 퇴조하고 신라식 미학이 자리 잡는다. 교동·송현동 고분군의 토기들이 신라 양식으로 바뀌어 ‘창녕식 토기’로 변하는 것이 단적인 예다. 가야의 망국과 신라의 득세 사이에 독특한 창녕식 미학이 자리한다.


박창희 경성대 교수(‘살아있는 가야사 이야기’ 저자)

※ 공동기획: 상지건축, 국제신문,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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