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천·흰여울마을 석면 노출 우려
- 우레탄폼으로 덮는 등 보강 허술
- 건강·미관상 위해 빨리 제거해야
- “집주인 수십 년 안 나타나 방치”
- 개량 비용 부담 탓에 주저하기도
“말로만 문화마을, 부산 대표 관광지라고 추켜세우면 뭐 합니까. 골목 안으로 들어오면 석면 지붕이 천지사방에 널렸는데,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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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영도구 흰여울문화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이 11일 슬레이트 지붕이 많은 골목길을 지나고 있다. 이원준 기자 windstorm@kookje.co.kr |
10일 오전 부산 사하구 감천문화마을 주민 이창호(79) 씨가 뼈대만 남은 빈집과 녹슬고 깨진 노후 슬레이트 지붕을 보여주며 이같이 말했다. 이 씨는 1970년부터 54년째 이곳에서 살며 옷 수선집을 운영하고 있다. 이 씨는 “사하구에 지붕 철거 신청을 하고 싶어도 집주인만 할 수 있다고 한다”며 “집주인이 수십 년째 나타나질 않는데 어떻게 신청을 하나. 석면 먼지는 이웃 주민과 관광객이 들이마셔야 한다”고 말했다.
좁은 골목을 나오니 한 무리 관광객이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사진을 찍는 등 감천문화마을의 익숙한 풍경이 펼쳐졌다. 그러나 관광객이 주로 다니는 큰길에도 ‘석면 시한폭탄’은 여전했다. 작은 소품 가게 옆에는 녹색 페인트가 벗겨진 슬레이트 지붕이,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카페 아래에는 우레탄 폼으로 덮은 슬레이트 지붕이 눈에 띄었다. 상인 A 씨는 “영업 중에 가게 창문과 문을 항상 열어놔 석면 먼지가 들어올까 봐 걱정되지만, 세입자 신세에 건물주 눈치가 보여 섣불리 말을 못 하겠다”며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이 피해를 입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밝혔다.
감천문화마을은 지난해 기준 276만 명이 방문했고 약 60%가 외국인인 부산의 대표 관광지다. 하지만 동시에 사하구 노후 슬레이트 지붕(2526개)의 48%(1223개)가 몰린 노후 슬레이트 밀집지역이기도 하다. 시 관계자는 “기존 슬레이트를 철거하지 않고 덮어 씌운 지붕이 문제다”며 “허술한 보강 작업으로 노후 슬레이트가 드러나 있어 주민 건강에 악영향을 주지만, 겉으로는 새 것처럼 보여 철거나 교체 신청을 꺼린다”고 설명했다.
‘석면 시한폭탄’인 노후 슬레이트 지붕이 방치된 부산 골목 명소는 이 곳뿐만이 아니다. 이날 오후 영도구 흰여울 문화마을에도 짠 바닷바람에 풍화된 노후 슬레이트 지붕이 곳곳에 있고 관광객이 그 아래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경기도에서 처음으로 흰여울 문화마을을 찾은 B(40대) 씨는 “탁 트인 바다 풍경과 낡은 집을 개조한 가게를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는데 석면이 나오는 지붕을 관광코스 바로 옆에 두고 있는 줄은 몰랐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시와 일선 지자체는 4억2000만 원을 들여 노후 슬레이트 지붕의 철거와 교체에 나섰지만 실효를 거둘지는 의문이다. 슬레이트 지붕이 있는 건물의 상당수가 무허가여서 토지 소유주만 철거 신청이 가능하다. 철거 허가가 나더라도 건물의 일부가 아닌 전체를 없애야 해 참여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는 게 주민의 이야기다. 게다가 지자체장이 임의로 집 전체를 철거할 수 있지만 향후 행정소송에 패소할 가능성도 있어 선뜻 나설 수 없는 상황이다. 국제신문은 2023년 기획시리즈 ‘슬기로운 물만골 탐구생활’을 통해서도 이러한 문제를 줄곧 지적했다. 특히 슬레이트 지붕을 걷어 내고 싶어도 개량할 비용이 없어 신청을 주저하는 사례가 많은 만큼 이에 대한 지원이 절실하다는 지적은 계속 나온다.
부산시의회 김형철(연제2) 의원은 “석면으로부터 주민의 건강권을 지키는 것은 물론 관광객들에게 슬레이트 지붕이 부산의 이미지로 인식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 철거 비용과 함께 개량 비용까지 지원할 수 있는 방안 등을 고민해 조례를 만들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