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선박 관련 소송과 분쟁을 관할하는 전문법인인 해사법원을 부산에 유치하겠다는 움직임이 12년째 한발짝도 나가지 못한 채 표류하면서 부산시와 지역 정치권, 지역 법조계를 향한 시민의 비판 여론이 비등하다. 특히 내년 총선 일정 등을 감안할 때 해사법원의 부산 설치 내용이 담긴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20대에 이어 이번 국회에서도 자동 폐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마저 나온다.

5일 부산 연제구 부산시티호텔에서 해사법원 설립을 위한 국제해사법컨퍼런스가 열리고 있다.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5일 부산시티호텔에서 부산시가 주최한 ‘해사법원 설립을 위한 국제해사법 컨퍼런스’는 해사법원 설치를 위한 국회 입법을 촉구하는 성토의 장이 됐다. 해사법원 설치추진 부울경협의회·해양자치권 추진협의회·한국해양대·부산변호사회·해운항만업계 관계자 60여 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해사법원이 부산에 설치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지 어느덧 10년이 훌쩍 넘었다. 아직도 해사법원을 부산에 설립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언급해야 하니 식상할 지경”이라고 입을 모았다. 부산변호사회의 해사법원 유치 업무를 담당하는 최재원 변호사는 “2019년 사법정책연구원이 해사법원 필요성을 제기했고 이번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발의된 지도 한참 지났다. 그럼에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에서조차 논의되지 못했다는 것은 정말로 큰 문제”라며 “일본이 해사법률산업을 발전시키지 못해 중국에 밀린 것처럼 한국 역시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부산변호사회를 중심으로 부산에서는 2011년부터 해사법원의 부산 설치를 요구했다. 우리나라에는 해상·선박 관련 소송과 분쟁을 관할하는 전문법원이 없어 발생하는 문제는 적지 않다. 각종 소송을 해사법원이 있는 다른 나라에 의존해 매년 5000억 원에 달하는 분쟁 해결 비용이 유출된다. 무엇보다 세계적인 수준인 우리나라 해운산업이 해양금융업이나 해운중개업 등과 연계한 고부가가치산업으로 성숙하기 위해서는 전문법원을 통한 양질의 해사법률서비스가 절실하다는 게 법조계의 확고한 입장이다. 부산항은 국내 물동량의 75%를 책임지고 부울경은 세계 1위 선박 건조량을 소화한다. 국내 법원의 해사재판부가 100건 정도의 본안을 처리하는데 대부분이 부산고법·지법에서 이뤄진다. 하지만 부산에 이어 인천·서울·세종 등이 유치 경쟁에 뛰어들면서 해사법원 국내 설립 자체가 제자리걸음 중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도 해사법원의 부산 설치를 담은 국민의힘 안병길(부산 서·동) 의원의 ‘법원조직법 개정안’ 등 각 지역 국회의원이 발의한 해사법원 설립안이 6건이나 계류 중이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김영춘 전 의원이 같은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으나 국회의 임기 종료로 폐기됐다.

특히 법안 통과의 키를 쥔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국민의힘 김도읍(부산 북·강서을) 의원이 맡고 있는 상황에서도 해사법원 부산 유치를 위한 입법 활동이 진척을 보이지 못하면서 지역 여론이 들끓는다. 김도읍 의원 측은 "그간 법안 통과를 위해 노력했으나 설립 여부에 관한 법원행정처의 입장이 불분명한 점 등으로 인해 한계가 있는 상황"이라며 "앞으로도 해사법원 설립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지역 법조인은 “해양수도를 자임하는 부산의 정치권이 다른 분야도 아닌 해사법원을 부산에 설치하는 법안 하나 통과를 시키지 못한다니 한심할 뿐”이라며 “시와 지역 법조계도 부산에서 구호만 외칠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와 연대해 정치권을 강하게 압박하는 모습을 보여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