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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지배가 부른 '거제 옥포항 변사사고', 가스라이팅 범죄 인정될까

<3>옥포항 변사사건, '살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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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옥포항 변사 사건(국제신문 지난달 13일 자 온라인 등 보도)은 여러모로 ‘계곡살인’과 닮았다. 옥포항에서 숨진 A(56) 씨와 또 다른 피해자 B(57) 씨는 기초생활수급자로서 우리 사회의 취약계층이었다. 두 사람은 C(49) 씨의 폭력과 공갈이 뿌리 내리게 한 공포심에 정신을 사로잡힌 나머지 그가 말하는 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 신세로 수년을 살아야 했다. C 씨의 마음이 상할까 싶은 두려움은 A 씨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계곡살인 사건은 대표적인 ‘가스라이팅 범죄’로 인식된다. 그러나 법원에서는 가스라이팅이라는 작위(적극적 행위) 의한 살인 대신 부작위(마땅히 기대되는 일을 하지 않는 소극적 행위)에 의한 살인만이 인정됐다. 옥포항 사건을 수사하는 해경은 가스라이팅 범죄 해당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는데, 법조계는 다양한 요건이 부합해야만 심리 지배에 의한 범죄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계곡 살인’ 피의자 이은해. 연합뉴스
●일상 파고드는 심리 지배 범죄

2일 취재를 종합하면 창원해경은 피의자 C(49) 씨가 지금껏 두 사람을 상대로 벌인 가혹 행위에 관한 증거를 수집하고 있다. A 씨 죽음은 C 씨가 가한 지속적 가스리이팅의 결과임을 입증하기 위해서다. A 씨는 지난 10월 11일 옥포항에 뛰어들어 숨졌다. 그는 심기가 나빴던 C 씨 기분을 풀고자 자진해 물에 들어갔다고 알려졌다. 심리 지배 상태에 빠진 A 씨가 초조함을 덜고자 스스로 위험 상황을 초래했을 수 있다는 게 해경의 추정이다.

상대의 심리를 자신에게 종속시켜 일거수일투족을 옥죄는 ‘가스라이팅 범죄’는 점차 ‘집단 대 개인’에서 ‘개인 대 개인’으로 구도가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1987년 ‘오대양 집단 변사 사건’ 등 종교적 과잉과 같은 커다란 ‘열정’에 지배된 이들이 참극을 당했다. 이에 견줘 최근에는 일상의 평범한 관계에서 형성된 지배-피지배 관계가 범죄로 이어진 경우가 두드러진다. 개인 간 문제이니, 사안이 극단으로 치닫기 전엔 피해가 잘 드러나지도 않는다.

문제는 이 ‘극단에 치달은 사례’가 점차 쌓여가고 있다는 점이다. 일례로 지난 7월 29일 전남 여수에선 자동차전용도로 졸음쉼터에 주차된 차량에서 피해자 두 사람이 서로를 때리도록 지시해 사망, 중상을 당하게 한 3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2018년부터 민사 사건 관련 상담을 통해 알게 된 피해자들의 변호사 비용 등 각종 허위채무를 꾸며 금품을 가로채 왔다. 지난 6월부터는 이들을 차량에서 생활하게 한 뒤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야구방망이나 철근 등으로 서로 폭행하게 시켰다. 이런데도 피해자들은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여 미처 상황을 타개하려는 시도조차 벌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일에는 일가족을 19년간 가스라이팅한 경기 안산의 무속인 부부에게 징역 30년이 구형됐다. 이들은 2004년부터 올해까지 50대 여성과 그의 20대 자녀 등 세 남매를 정신적·육체적 지배 상태에 두고 통제하며 상호 폭행하게 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50대 여성은 남편과 사별한 뒤 이들 무속인 부부에게 심리적으로 의존하며 온갖 지시를 수행했다. 숟가락을 불에 달궈 자녀들의 몸을 지지거나, 심지어는 남매간 성관계를 강요받기도 했다.

가스라이팅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인정 요건 까다로운 가스라이팅

가스리이팅 피해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과 별개로, 심리 지배에 의한 사건이 범죄로 인정되는 요건은 까다롭다. 가스라이팅 범죄는 간접정범, 즉 자신에게 의식이 지배된 피해자를 도구 삼아 저지르는 형태의 범죄다. 이런 유형의 범죄가 입증되려면 상대방에게 자신의 의사가 완전히 지배 조정돼 꼼짝 못 할 정도, 그래서 상대방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의사 능력이 현저히 결여돼있다는 점이 확인돼야 한다.

‘계곡살인’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검찰은 이은해가 남편을 가스라이팅해 직접 살인했다고 주장했다. 고인이 장기간의 생활고와 사회적 고립으로 자존감과 합리적인 판단 능력을 상실해 이은해의 요구를 쉽게 거부하거나 저항하지 못하도록 심리적으로 제압당한 상태였으며, 이에 따라 이은해 등이 피해자가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채 맨몸으로 물속에 뛰어내리도록 했다는 취지다. 그러나 법원은 고인이 이은해에게 전적으로 종속됐다고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됐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고 봤다. 대신 부작위(의무 있는 사람이 의무를 하지 않는 것)에 의한 살인, 즉 물에 빠진 남편을 구하지 않은 점 등은 유죄로 판단했다.

옥포항 사건도 비슷한 사정이란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법률사무소 사름 이구영 변호사는 “예를 들어 5세 아이는 ‘바다에 들어가자’라는 엄마의 말을 들어도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못 할 수 있다. 죽는다는 의미 자체를 이해 못 하기 때문이다. 반면 어른은 지능이 낮아도 바다에 빠지면 죽을 수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안다. 죽음에 관해 의사 결정 능력이 있는 것으로, 이 경우엔 심리를 지배당해 범죄 도구로 전락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부작위 의한 살인’ 가능성도

부작위에 의한 범죄로 판단될 가능성도 있다. 부작위에 의한 살인이 성립하려면 C 씨의 보증인 지위와 그에 따른 보증 의무가 입증돼야 한다. 그가 A 씨의 위험을 방지해야 하는 책임이 있는 사람인지, 당시 A 씨를 위험에서 구하고자 노력했는지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C 씨와 두 사람은 같은 고시원에서 살았다는 우연한 계기로 알게 된 사이로, 혈연 등 서로에 대한 원칙적인 보호 의무는 없는 관계다.

대신 C 씨는 수년간 A, B 씨의 기초생활수급비 등 생계비 거의 전부를 자신이 받아 관리해 왔다. 이동 동선, 현재 위치 등도 수시로 보고받는 등 두 사람의 행동에 일일이 개입했다.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두 사람을 관리한 것이다. 이 경우 불법적이나마 C 씨가 두 사람의 사무를 관리하는 자로서 보호·관리 관계가 형성됐다고 볼 여지가 생긴다.

결국 C 씨에게 살인의 고의가 있었는지, 그가 A 씨를 구조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지를 입증하는 것이 이번 사건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사고 당시 A, B, C 씨는 밤새 소주 20병가량을 마신 만취 상태로 옥포항을 나섰다. ‘바다에 들어가겠다’는 A 씨의 말에 C 씨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A 씨가 입수하자 그와 함께 있던 B 씨는 구조에 나섰지만, C 씨는 별도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동아대 하태영(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부작위에 의한 살인이 인정되려면 ‘네가 죽어도 어쩔 수 없다’는 정도의 의식을 갖고 사고를 방치했다는 점이 입증돼야 한다. 또한 C 씨가 당시 물에 빠진 A 씨를 구조할 수 있는 상황이 맞는지도 검토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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