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래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정유정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정유정이 자신의 살인 욕구 실현을 위해 피해자를 잔혹한 방식으로 살해해 엄벌이 필요하다고 보면서도 정유정의 가정환경 등을 종합했을 때 검찰 구형대로 사형을 선고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살인 등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정유정

부산지법 형사6부(김태업 부장판사)는 24일 살인, 사체 손괴·유기 등 혐의로 기소된 정유정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30년간 전자장치부착 명령도 내렸다. 재판부는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하며 “피해자는 극도로 잔혹한 방식으로 죽었다”며 “사회 구성원에게 이유 없이 범행 대상 될 수 있다는 공포를 주고 모방 범죄를 일으켜 불신을 조장했기에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정유정은 이날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인 채 재판부의 선고를 듣기만 했다.

정유정은 지난해 5월 26일 과외 선생님을 구하는 척 부산 금정구 피해자의 집을 찾아간 뒤 흉기를 111차례 휘둘러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뒤 일부를 경남 양산 낙동강변에 유기한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정유정이 일면식도 없는 피해자를 잔혹하게 살해한 이유가 수사기관과 동일하게 ‘살인 욕구 실현’인 것으로 판단했다. 검찰에 따르면 정유정은 어린 시절 부모가 이혼하면서 조부와 함께 살았다. 학창시절에는 아버지와 함께 살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무너지면서 크게 좌절했고, 대학 진학 실패와 공무원 시험 준비 과정에서 거듭 좌절감을 느꼈다. 재판부는 가족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커지면서 정유정이 지난해부터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살인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봤다.

재판부는 “지난해 도서관에서 살인 범죄 관련 도서를 대수 대출하고 지난 3월부터 인터넷에서 살인죄, 살인 방법, 시신 유기, 고유정 살인사건, 홍은동 여중생 살인사건 등을 검색했다”며 “피고인은 애초 경찰에서 우발적 살인을 주장하다 아버지가 동석한 진술에서 심경의 변화로 인해 계획적이었다고 밝혔는데 그때 ‘사람을 죽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실제 행동에 옮겼다’고 진술했다. 신빙성이 높은 진술”이라고 설명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통합 심리 분석 결과에서 정유정은 타인의 심리 상태에 대한 이해나 공감이 부족하며, 대인관계에서 주로 자신의 이익에 관심이 있으며 다른 사람이나 외부적 요인을 과도하게 원망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유정 측은 범행 후 상세불명의 양극성 정동장애 등을 진단 받았다며 심신미약을 주장해왔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범행 후 진단을 받았고 범행 당시 사물 변별 능력, 의사결정 능력이 떨어졌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범행을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준비했으며 통합 심리 분석 결과에 따르면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현저한 사고 능력 저하가 관찰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앞서 검찰은 범행의 치밀성과 잔혹성에 비춰 사형을 구형했다. 재판부는 정유정이 계획적으로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사실은 인정했지만 사형 선고에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재판부는 “미리 흉기를 챙겨갔고 범행을 하면서 마실 맥주까지 챙겨갔다. 피해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중학생 교복을 입고 가는 등 이 사건은 치밀한 계획에 의한 것”이라며 “부검 결과에 따르면 피해자가 치명상을 입어 저항하지 못하게 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흉기를 휘둘렀다. 피해자의 몸에 잔혹성이 그대로 남았다”고 설명했다.

사형 선고에 관해서는 “사형은 돌이킬 수 없는 궁극의 형벌이어서 피고인의 나이, 성장과정, 전과유무, 범행 동기 등 모든 사항을 철저히 심리하고 심리 후 사형이 정당하다는 사정이 밝혀질 경우에만 선고할 수 있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이라며 “피고인의 경우 불우한 성장환경이 면죄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피고인의 비정상적인 성격을 형성하게 하고 사회 규범 체계를 내재화하지 못하게 하는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범죄 전력이 없고 반사회적 행위는 범행이 있기 1년 전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피고인의 일생에서 극히 일부분에 한정된 기간”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20대인 피고인이 교화돼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할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이런 점들은 사형에 대한 부정적인 양형의 사유가 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