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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장자 600명 스토리 발굴 영국인 “그 누구도 잊히지 않길”

UN공원에 잠든 용사들…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2 <20> 마틴 데이비드 우든 전 주한 영국대사

  • 김진룡 기자 jryongk@kookje.co.kr
  •  |   입력 : 2023-11-19 18:20:27
  •  |   본지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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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7~2015년 英 외교부 근무
- 10년간 한국 있었던 ‘한국통’
- 유엔기념공원 일 맡아서 하다
- 안장자 이야기 수집 작업 시작

- “유해가 다른 곳에 묻혔거나
- 기록 없는 소년 전사자도 많아
- 이 발굴은 끝이 없는 작업일 것”

“유엔기념공원 영국군 안장자 이야기를 발굴하다 느낀 점이 있다면, 숨진 이들의 나이가 너무 젊다는 점입니다. 안장자의 자세한 정보를 찾을 수 없을 때는 더 슬프지요. 그들의 가족이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그로 인해 슬픔이 지속할 걸 생각하면 많은 감정이 스쳐 지나갑니다.”

마틴 데이비드 우든(68) 전 주한 영국대사가 영국 런던의 자택에서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영국군 이야기를 발굴하면서 느낀 소회를 전했다. 그는 1977년부터 2015년까지 영국 외교부에서 근무했다. 이 가운데 세 차례, 총 10년간 한국에서 근무해 국내 사정에 밝은 지한파다.

그는 한국에서 근무할 당시 유엔기념공원 국제관리위원회 일도 맡았다. 이때문에 횟수를 셀 수 없을 만큼 자주 유엔기념공원을 방문하기도 했다. 은퇴 후 2020년 12월 우연히 SNS에 올라온 한 게시글을 보다가 영국군 안장자 이야기 수집 작업을 시작했다.

“재한유엔기념공원관리처가 올린 글에서 안장자 이야기를 발굴한다는 내용을 보게 됐습니다. 한국이란 나라, 그리고 제 가족의 역사를 연구해 본 경험이 있어 안장자 이야기를 제공할 수 있을 것 같았죠. 유엔기념공원의 직원이 영국군 안장자 이름을 공유했고, 저는 이를 발굴해 전달하고 있습니다.”
유엔기념공원 내 영국군 안장자 구역의 모습. 김태훈 PD
■영화 같은 안장자 이야기

그는 자신이 발굴한 안장자 이야기를 소개했다. 1920년 영국에서 태어난 앤토니 팩 중위 이야기였다. 팩 중위는 영국 왕립 슈롭셔 경보병대 소속이었다. 이 부대가 한국전쟁에 파병됐고 자연스럽게 그도 한국으로 향했다. 팩 중위는 1952년 7월 10일 한국의 한 전쟁터에서 적진으로 돌진하던 중 전사했다.

“이 이야기에서 신기했던 것은 그의 집안 배경이었어요. 그의 어머니가 영국 비밀정보부(SIS)에서 일했던 베티 솔프라는 비밀 요원입니다. 베티는 미인계로 영국에 이득이 되는 정보를 빼내는 것으로 영국에서 유명했습니다. 팩 중위의 아버지가 외교관이었는데, 미국 워싱턴에서 근무하면서 베티를 만났고 결혼해 낳은 자식이 팩 중위에요.”

제2차 세계대전 초기였던 1940년 5월과 6월 프랑스 덩케르크에서 펼쳐진 철수 작전에 참여했던 해롤드 리들의 이야기도 전해줬다. 1920년생이던 리들은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자 참전했다. 독일군의 공세가 이어지자, 당시 연합국은 덩케르크에서 대규모 철수 작전을 펼쳤다.

철수를 준비하던 급박한 상황에서 리들은 벨기에 출신의 한 가족에게 몸을 의탁했다. 그러나 곧장 독일군에게 발각돼 포로로 붙잡혔다. 독일군은 리들을 도운 벨기에 가족의 부모를 죽였고, 딸을 수용소에 보냈다. 당시 이 가족이 살던 마을에서는 딸이 리들의 정보를 독일군에 흘려 리들이 잡혀갔다는 소문이 돌았다.

“물론 이 소문은 사실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리들은 석방됐고, 벨기에 가족의 딸을 찾으러 갔어요. 1년 뒤 리들은 딸을 찾았고 사랑에 빠져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습니다.”

한 편의 영화 같은 스토리는 아름답게 막을 내리는 듯했다. 그러나 예비군이던 리들은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터지자, 영국 왕립 얼스터 라이플 부대 소속으로 참전하게 됐다. 결국 리들은 1951년 4월 25일 임진강 전투에서 전사했다.

■안타까운 사연도

마틴 데이비드 우든 전 주한 영국대사가 자택에서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영국군 안장자의 이야기를 조사하고 있다. 김태훈 PD
우든 전 대사는 한국전쟁이 끝난 후 사망한 영국군 이야기도 들려줬다. 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 정전 협정을 맺었지만, 일부 영국군은 한국에 남아서 치안 유지 업무 등을 했다. 영국 더 퀸즈 오운 캐머런 하일랜더즈 부대 소속 존 갤러웨이, 존 맥거, 윌리엄 스티븐슨, 더글러스 우드 병장도 이 업무를 수행했다. 그러던 중 1955년 11월 6일 새벽 1시15분 이들이 묵던 병사 숙소에 대형 화재가 발생했고, 이들은 결국 숨졌다.

“전쟁이 끝났어도 모든 군대가 철수한 건 아니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영국군도 그랬죠. 유엔기념공원에 있는 대부분의 안장자가 전쟁터에서 돌아가셨지만, 이들처럼 전쟁이 끝나고 심장마비, 교통사고 등으로 돌아가신 사례도 있어요.”

영국군 한국전쟁 참전용사가 전해준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영국 왕립 슈롭셔 경보병대 소속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알렉산더 아일랜드는 1950년 11월 4일 다른 부대 동료인 레이 로저스와 담소를 나누며 탱크 뒤편에 타고 이동하고 있었다.

로저스는 자기 형제가 1944년 6월 제2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있었던 상륙 작전에 참전했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아일랜드가 대답하려는 순간 적군 저격수의 총알이 날아왔고 그 자리에서 아일랜드가 전사했다. “참전용사 로저스에게 이 이야기를 직접 들었는데, 70년이 지났지만 마치 어제 이야기처럼 전해줬습니다. 그는 이 이야기를 전하면서 잊히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계속되는 안장자 스토리

현재 유엔기념공원에는 총 890명의 영국군이 안장돼 있다. 우든 전 주한 영국대사는 이들 가운데 짧게나마 600명 이상의 이야기를 발굴했다. 다만 비슷한 이름도 있어 정확한 신원을 확인해야 하는 작업이 남아 있다. 또 당시 19, 20살 정도밖에 되지 않은 군인이 많아 관련 기록이 적다 보니 보강 작업이 더 필요하다.

“영국군 이야기를 찾는 작업을 끝내고 싶지만, 이 작업은 끝이 없습니다. 최대한 많이 찾아야 해요. 유해 수습이 안 되거나 다른 곳에 묻힌 영국군 안장자 이야기도 있는데 이들의 이야기도 찾고 싶습니다.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캐나다 호주 등 영연방 국가의 안장자 이야기도 찾으면 좋겠죠. 영국군뿐만 아니라 다른 안장자도 잊혀지지 않길 바랍니다.”

한국전쟁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아 그에게 남북통일 가능성에 관해 물었다. “1978년 제가 처음 한국에 갔을 때라면 가능하다고 답했을 겁니다. 그땐 이산가족도 많았고, 서로 알고 싶어 했죠. 그러나 지금 세대는 북한과 교류하지 않고, 북한 사람에 애정을 품고 있지도 않습니다. 정치적으로 볼 때도 과거보다 이 이슈에 힘이 많이 떨어진 상태예요. 그렇지만 대화의 물꼬를 트면 다른 방법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면 남북이 자유무역협정을 맺어 농산물 교환을 하는 등 뭔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시작해 다른 방법을 찾다 보면 통일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자유에 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남북한 주민이 서로 악의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 부각돼야 합니다. 또 한국전쟁 때 유엔군으로 참전한 국가들이 더 이상 전쟁을 바라지 않는다는 점도 최대한 활용해야죠. 무엇보다 폐쇄적인 북한을 전 세계에 노출하면 평화와 자유에 조금 더 가까워질 겁니다.”

영국=김진룡 기자 jryongk@kookje.co.kr

영상=김태훈 PD

※제작지원 : BNK금융그룹

※취재협조 : 재한유엔기념공원관리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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