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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양 누비던 기관장, 재즈와 佛요리 선사하는 오너셰프로

고영삼의 인생 이모작…한 번 더 현역 <38> ‘벨 프홈나드’ 강희영 오너셰프

  • 고영삼 은퇴설계 전문가(사회학 박사)
  •  |   입력 : 2023-11-14 18:53:23
  •  |   본지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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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졸업 후 기관사로 80國 다녀
- 20만t급 초대형 광탄선 운행도
- 항해생활 중 프랑스 부부와 친목
- 어느새 미식 문화에 푹 빠지게 돼

- 귀항 뒤엔 모교 부경대 교수생활
- 일만 않겠다 결심…음식점 개업
- 세계 名스피커·8000장 음반 갖춰
- “일과 삶 균형점 찾는 삶이 최우선”

◇ 강희영의 인생Tip

- 열심히 일했던 당신, 이젠 일도 삶도 즐겨라!

강희영 오너셰프가 그의 음식점 ‘벨 프홈나드’에서 휴식을 취하는 중 색소폰 연주를 즐기고 있다. 사진 오른쪽 중상단에 그의 애장품 하츠필드 스피커가 보인다. 강 셰프의 뒤편에는 음식점 조리대가 있다.
흔히 삶을 항해에 비유한다. 인생살이는 결국 파도를 가르며 좋은 정박지를 찾는 일. 고단함을 이겨내고 계속 나아가는 점에서 유사하다. 그런데 거대한 해양을 헤치며 항로를 개척해 온 기관사들의 실제 인생이모작은 어떠할까? 마침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온’ 분을 찾을 수 있었다. 방문한 곳은 해운대 선프라자 2층의 한 음식점. 입구에 들어서니 대왕고래만큼 웅장한 한 교향곡이 들렸다.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이 영혼을 후벼파는군요. 스피커도 예사롭지 않고요.

▶매우 강렬하죠. 우리는 살면서 이렇게 운명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가끔이라도 들어야 합니다. 스피커는 빈티지 오디오 시스템 JBL D30085 The Hartsfield입니다. JBL이 1954년 생산했을 때 전문가들로부터 궁극의 스피커라는 찬사를 받았고 지금도 세계 3대 명기라 하죠. 이 스피커로 교향곡, 파이프 오르간, 오케스트라 그리고 특히 재즈를 들으면 자아조차 망각할 정도가 됩니다.

-여기를 소개해 주시겠어요?

▶프랑스 가정식 요리점 ‘벨 프홈나드’입니다. 벨 프홈나드(Belle Promenade)는 ‘아름다운 산책’이란 뜻입니다. 친한 사람들 간에 음악과 프랑스 요리를 음미하며 인생의 즐거움을 느끼도록 하는 곳입니다. 저는 오너셰프 강희영입니다.



현재 68세인 강희영 오너셰프는 인생 전환 각도가 특이하다. 젊은 시절 그는 오대양 육대주를 항해한 기관장이었다. 20년을 기관사 기관장으로 배를 탔으니 전 세계 안 가본 곳이 없다.



-젊은 시절 지금과는 아예 다른 일에 종사하셨다더군요. 전환 각도가 놀랍습니다.

1998년 1등 기관사로 승선 중이던 거양 마제스티호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 당시 동문 김순영 박사와 텍사스 A&M대에 유학 중이던 민덕홍 부부가 그가 있던 버몬트에 와서 찍어 주었다.
▶대학 졸업 후 기관사로 배를 탔습니다. 부경대의 전신인 부산수산대 기관학과를 졸업하고 일본기업의 자동차 전용선의 기관사로 직업을 시작했습니다. 80여 개 나라를 누비고 다녔어요. 바다에 빠지면 순식간에 눈을 뜨고 동사하는 영하 30도 극한의 대권(Great Circle) 항로인 북태평양 바다를 헤쳐 나가곤 했어요.

-직업으로서 기관사는 자부심이 많겠군요.

▶저는 17만~20만 t이 넘는 초대형 광탄선(VLOC: Very Large Ore Carrier)을 운행했고 그 기관장으로 퇴직했죠. 상상 이상의 거대한 파도를 극복하고 석탄이나 철광석을 싣고 무사고로 항해할 때 뿌듯하죠. 대서양에서 고장 난 배를 인도양까지 항해해 주기관을 수리하고 일본에 성공적으로 귀항했을 때도 있었죠. 참 보람찬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1984년에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나 보태닉 가든에도 가 보았으니 해외여행이 힘들던 시절부터 전 세계 좋은 곳은 다 다녀보았어요.

-그러한 젊은 시절 장래 꿈은 무엇이었나요?

▶저는 어릴 적부터 음악을 좋아했어요. 그러나 대학 진학 후에는 최고의 선박 엔지니어가 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졸업 후엔 기술력이 한 수 위였던 일본으로 갔죠. 대학 다닐 때 빌려 쓴 학자금 융자도 갚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에겐 수평선 너머에 무언가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늘 있었어요. 또 ‘평범하게 살되 생각은 높게’(plain living and high thinking)가 좌우명이었어요. 그것이 계기가 되어선지 항해 생활 중 프랑스어를 공부했죠. 그러다 39세 때인 1994년 리옹대학 박사과정에 진학하기 위해 프랑스로 갔죠. 전공 교수와 이야기가 되어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상하게 상황이 엉켰어요.

-당황스러웠겠네요.

▶그랬어요. 결국 우여곡절 끝에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그리곤 1996년 부경대 박사과정에 등록했습니다. 그런데 경제적 이유로 다시 배를 타러 나갔다가 2004년에 비로소 배에서 완전히 내렸어요.



일반 기관사들도 접하기 힘든 초대형 광탄선의 기관장이었던 강희영은 만 20년의 ‘항해인생’을 그렇게 마감했다. 죽음의 위험도 몇 번 경험한 긴 세월이었다. 그때 나이는 49세.



-항해 20년을 마칠 때 감회가 엄청났겠군요. 그리곤 무엇을 하셨나요?

▶2004년 마침 모교에서 후배들을 가르칠 기회가 주어졌어요. 2006년에는 박사학위도 받았죠. 20년 동안 기관사 기관장을 한 실전 경험을 이론에 접목해 강의를 했죠. 저의 인생이모작 전환은 나이 오십 정도에 바다인생을 육지인생으로 전환하며 시작한 거예요. 그런데 일만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어요.

-지난날과는 다른 스타일을 생각한 건가요?

▶네. 저 자신을 격려하고 싶더군요. ‘거친 풍랑 헤치며 할 만큼 했다. 이젠 너 자신을 돌봐도 된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반전을 도모했죠. 일을 하면서도 삶 자체를 즐기자는 것. 저는 여유롭게 살기 위해 일을 했는데 어느 틈엔가 일을 위해 사는 사람이 되어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교수로 활동하면서도 주말에는 지인들을 초대해 인생과 일과 음악을 이야기하며 즐겼어요. 김홍희 사진작가, 명리학자 조용헌 선생 등 멋쟁이들도 오셨어요. 조용헌 선생은 저의 요리를 즐기면서 “강 교수님, 이건 이미지 배반이에요!”라고도 했죠. 너무 맛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는 최고의 선박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 분투하는 동안 인생의 기쁨과 슬픔을 겪을 만큼 겪었다. 그 과정에 삶의 어떤 깊이를 맛본 것 같다. 일과 삶 중에서 삶의 팔을 들어준 것.



-요리사로는 어떻게 전환하시게 되었나요?

▶1994년 박사과정 진학은 꼬였지만 프랑스에서 우연히 이베흐(Mme. Martine Hivert와 M. Claude Hivert) 부부를 알게 되었어요. 또한 파리에서 요리사이자 태권도 사범으로 활동하던 자비에르 노작메이어(X. Nozacmeur)를 만났어요. 한국을 사랑하는 분들이셨죠. 그들의 파티에 자주 초대 받아 가 색소폰을 불곤 했는데, 어느 틈엔가 제가 프랑스의 가정에서 즐기는 미식문화에 꽂혔어요. 음식의 조리 세팅 과정과 충분한 시간을 공유하며 대화를 즐기는 생활양식이 참 좋았어요.

-그래도 지금과 같은 셰프가 되려면 많은 훈련을 해야 하지 않나요?

▶그 뒤 수년을 정통요리법 원서들을 구하여 미세한 조리 기술을 다 수련했죠. 지금도 여기 보시듯 한우 고기의 보관이나 조리법에 대해 늘 실습하죠. 또한 프랑스 유학 시절 만났던 요리사들과도 기술을 계속 교류합니다. 그리고 와인 소믈리에 기술도 이수 받았고요.

-색소폰 연주도 예사롭지 않군요.

▶색소폰으로 군악대에서 군 복무를 할 정도였으니 아주 어린 시절부터 친했어요. 저는 특히 클래식 음악에 몰두했어요. 고교 때부터 베토벤 교향곡을 외울 정도로 음악에 진심이었죠. 마에스트로인 장 귀유(J. Guillou)의 파이프 오르간 연주를 듣기 위해 파리의 생 웨스타슈(Saint-Eustache) 성당을 찾기도 했어요. 또 폴란드 그단스크에 있는 올리바(Oliwa) 성당도 방문하여 음악에 푹 빠진 적도 있어요.

-다채로운 빛깔로 인생을 사셨군요. 어떤 삶이 좋은 삶일까요?

▶저는 이곳을 2014년 7월에 개업했습니다. 10년이 다 되어가네요. 기관장 항해 인생 20년 그리고 10년의 대학 교수 인생도 마쳤습니다. 돌이켜보니 저는 음대를 진학하지는 못했지만 음악에 대한 꿈이 있었기에 낯선 어느 항구에 기항할 때마다 음악회 동향을 점검했습니다. 지금도 국내외에서 직접 구한 8000장의 음반을 소장하고 있어요. 연구교수로 재직할 때는 후학들을 위해 모든 걸 쏟아부었죠. 치열한 여름 한낮 같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저만치 미루어 왔던 삶, 즐기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아내 가족 친구들의 사랑 덕분이기도 합니다. 좋은 삶요? 골목 스타일의 음악당 미술관 그리고 극장과 카페가 많은 도시에서 살아야죠. 그리고 저마다 일과 삶의 균형점을 찾아 살아야 해요. 그 균형점의 질을 높여야 해요. 저는 이들을 위해 음악과 음식을 제공하려 합니다.



해운대 앞바다엔 폭풍도 윤슬도 가득하다. 모든 것 계절 따라 피고 진다. 인생길, 어느 계절로 살든 모두 다 이유 있다. 강희영은 이제 계절의 정박지를 지나는 이에게 즐거움을 주는 일을 즐긴다. 치열하게 일 해왔던 강희영은 이제 일 밖에서 인생 가치를 발견하는 전환을 한 것. 그는 어린 시절 베토벤의 교향곡을 특히 좋아해 음악가가 되고 싶었다. 좀 커서는 엔지니어가 되고 싶어 바다를 항해하고 대학 교수 활동도 했다. 그리고 이제는 하츠필드를 통해 나오는 대왕고래보다 웅장한 음악과 함께한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로맹 롤랑(R. Rolland)이 ‘걸작의 숲’이라고 한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프랑스 가정식과 함께 제공해 준다. ‘일하고 있지 않을 때 당신은 누구인가?’라고 질문한 작가 시몬 스톨조프(S. Stolzoff)도 엄청나게 감명받을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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