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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막눈에서 힙한 래퍼로 “가슴 속 맺힌 말들 가사에 담았죠”

고영삼의 인생 이모작…한 번 더 현역 <37> 수니와 7공주

  • 고영삼 은퇴설계전문가(사회학 박사)
  •  |   입력 : 2023-10-31 18:58:20
  •  |   본지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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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칠곡군 거주 80대 할매들
- 가난·배움의 恨 딛고 한글공부
- 詩·글꼴 만들고 그룹 결성까지
- 한국전쟁의 상흔 간직한 세대
- 부산엑스포 염원 랩으로 화제

◇ 칠곡할매들의 인생Tip

- 건강을 챙겨라. 새로운 것 즐겁게 배워라. 가족을 화목하게 하자

왕성한 활동기를 일컫는 인생일모작의 뒤에는 경험치를 기반으로 한 번 더 뛰는 인생이모작기가 있다. 그리고 이 뒤에도 반드시 도달하는 인생 단계가 있다. 이른바 인생삼모작기. 흔히 말하는 인생 말년이다. 복잡한 사회관계도 경제적 의무도 종결된 시점. 젊은 시절의 욕망과 불안을 뒤로하고 평온해지는 완성의 단계다. 그런데 이 시점에 다시 ‘힙하게’ 활동하는 할매들이 계셔서 화제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페이스북을 통해 ‘칠곡 누님들’이라 호칭하며 감사 메시지를 올렸단다. 팔십 중반을 넘은 이들이 무엇을 하셨기에 그럴까? 이들이 살고 계신 경북 칠곡군 신4리의 경로당을 찾았다.

<사진설명: 래퍼 할매 걸그룹 ‘수니와 7공주’가 칠곡 성인문해교실에서 공연 후 한자리 모였다. 앞줄 왼쪽부터 분위기 메이커 이필선(87) 카리스마 서무석(87) 왕언니 정두이(92) 소녀 감성 홍순연(80) 리더 박점순(82), 뒷줄 왼쪽부터 칠곡글꼴 추유을체 주인공 추유을(89) 칠공주의 브레인 이옥자(80) 귀염둥이 막내 장옥금(75) 미모 담당 김태희(80) 그리고 수니와 칠공주 기획자 겸 매니저로 활동하는 정우정(52) 칠곡군 성인문해강사.>

-할머님 안녕하세요? 할머님들은 어떤 분들이신가요?

▶우리들은 경북 칠곡군 지천면 신4리에 살고 있는 할매들입니다. 8명이 ‘수니와 7공주’라는 레퍼그룹을 결성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오늘 만난 이는 8인의 힙합 걸그룹이다. 즉 8인의 레퍼들을 만났다. 그런데 할매들이다. 그러니까 할매 걸그룹이다. 명성을 모르는 이들은 의아해할 것이지만 이 8인의 할매 레퍼들은 평균 나이 85세. 최연소 75세, 최고령자 92세다. 단연 세계에서 제일 고령의 레퍼들이다.



-최근 할머님들이 부산 세계 엑스포를 기원하는 랩을 하셨고, 이에 감사하는 국무총리님의 메시지도 있어서 부산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찌 된 것인가요?

윤석열 대통령이 5명의 칠곡할매글꼴 할머니를 대통령실로 초대해 찍은 사진.
▶칠곡군은 전통적으로 호국 평화의 고장입니다. 한국전쟁 때 북한군들의 공격에 맞서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냈다는 자부심이 많은 곳이죠. 이번에 전 국민의 염원인 부산엑스포가 꼭 유치되는 것이 호국이라고 생각하여 랩으로 노래한 것입니다. 여기 정우정 선생님이 도와주어서 그리된 것입니다.

-(정우정 선생에게) 애초 어떻게 기획된 것인가요?

▶저는 이곳 어르신들에게 한글을 가르쳐 온 문해 강사입니다. 경북도에서 주최하는 성인 문해 한마당에 출전하려고 준비하다가 우연히 MZ세대 그러니까 손자뻘들의 랩 장면을 보여드렸는데, 박점순(82) 할머님께서 “그 정도는 우리도 자신 있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박점순 할머님이 리더가 되어 함자에서 ‘수니’를 따내고 일곱 분이 함께하시어 지난 8월 ‘수니와 칠공주’ 그룹을 결성한 겁니다. 할머님들이 워낙 긍정적이시라 일사천리로 연습했어요. 그리고 칠곡군 박종석 공보팀장께 알려드렸더니 좋아하시며 직접 촬영 제작해 주셨어요. 총리실에도 보냈다고 들었습니다. 부산 세계 엑스포 유치를 위해 BTS 이정재 같은 셀럽만이 아니라 시골 할머니까지도 염원하고 있다는 콘텐츠를 만든 것이죠.

-(정우정 선생에게) 그런데 랩 가사를 만들기가 어렵지 않나요?

▶쉬운 일은 아니죠. 그런데 마침 우리 멤버 중 김태희(80) 할머님께서 경북 문예대잔치에 나가시어 시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신 ‘나의 꿈’이란 시가 있었습니다. 이를 랩 풍으로 번안하자고 생각했고, 이를 기초로 첫 번째 랩 ‘환장하지’의 가사를 만들었습니다.

-‘환장하지’는 마음이 답답하여 미치겠다는 말인가요? 김태희 할머님 한번 불러보시겠어요?

▶(랩) 나 어릴 적 친구들은 학교에 다녔지. 나 담 밑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었지. 설거지 해~, 애 보기 해~. 내 할 일은 그거지. 환장하지.

-(김태희 래퍼에게) 놀랍군요. 어떻게 이게 가능하신가요?

▶맹훈련을 했지요. 그런데 사실 우리는 처음이 아닙니다. 이제까지 8년이나 정우정 선생에게 한글을 배워왔어요. 그러면서 글을 못 배운 한을 극복한 동지 의식이 있어요. 우리 8인의 래퍼그룹 멤버는 아니지만 여기 계신 추유을(89) 할머님도 한글 문자를 계속 연습하시어 2020년 12월에 그 유명한 ‘칠곡할매글꼴’을 만드셨어요.

-칠곡할매글꼴요?

▶(할머니들 이구동성으로)현재 한컴과 MS 오피스 프로그램에서 사용되고 있고 특히 국립 한글박물관 문화유산에 등재된 글꼴입니다. 80이 넘은 우리 칠곡군 할매들이 만든 독특한 한글 글꼴이죠. 추유을 할머니도 5개 서체 중 한 종의 개발자입니다. 윤석열 대통령께서 올해 국민에게 보내신 연하장에 대해 칠곡군에서 응답 연하장을 보낼 때 이 추유을체를 사용했었어요.



알고 보니 8인의 레퍼들은 걸그룹을 결성하기 전부터 이미 다이내믹한 몸풀기를 해오셨던 것. 포스트 모던한 문화적 재생의 만만찮은 징 소리를 크게 울렸던 분들이셨다.



-(박점순 리더에게) 지금 랩은 몇 곡인가요?

▶7곡인데 곧 2곡 더 발표할 것입니다, ‘환장하지’ 발표 뒤에 ‘학교 종이 댕댕댕’, ‘교가’, ‘에브리바지 해피’ 등을 계속 발표했어요. 내가 만든 ‘황학골 셋째딸’도 있고요. (할머니가 다음 랩을 직접 연출) ‘흑잿골 아니~, 송정골 아니~, 황학골에 셋째 딸로 태어났쓰. 오빠들은 모두 공부 시켰쓰. 딸이라고 나는 학교 구경 못 했쓰. 에이~ 우라질 우라질 우라질’. 우리 랩은 대부분 배우지 못한 한을 표현했고요, 남편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 한국전쟁 때의 심정을 담은 랩도 있습니다. 모든 랩은 할머님들이 초안을 만들면 정우정 선생이 다듬어 곡을 붙였어요.

-(할머니들께) 젊은 시절 어떻게 지내셨는지 말씀 좀 해주세요.

▶ “얼굴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남자에게 스무 살에 결혼해 왔는데, 이틀 만에 남편이 입대를 해버려서 서러운 일도 참 많았어요.”(정두이·92). “19세에 시집와 너무 가난하게 지냈는데, 흉년이 든 어떤 해는 쑥만 먹었기에 그 뒤 10년 동안 쑥을 보기도 싫었어요. 그러다 집 뒤에 탄광이 생겨 일해서 번 돈으로 이곳에 논을 사 이사 왔지요.”(홍순연·80) “여자라고 학교를 못 다니게 해서 공부도 못했고 종이도 연필도 없어서 글자를 못 배운 게 한이었지만 그냥 평생 농사나 열심히 지으며 애들 낳고 키우는 재미로 살아왔지요.”(서무석·87)



할머님들의 인생일모작기는 전쟁의 상흔, 가난, 배우지 못함의 3개 트라우마 상황에 지배를 받은 듯했다. 여자이기에 학교 공부도 못하게 해서 농사꾼 남편에 의지해 5명 이상의 아들딸 낳아 키우며 그저 성실히 살아오신 것. 그런데 현재는 아무도 남편이 생존해 계시지 않은 것이 특이했다. 여성들의 장수 이유는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했다.



-지금까지 살아보니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부부가 백년해로하는 거지요. 친오빠의 친구와 결혼했는데 먼저 저세상 가버렸어요. 지금 큰아들과 같이 살지만 영감이 그리울 때가 많아요.”(이옥자·80). “그저 건강하게 잘 사는 것이 중요하지 뭐가 있겠어요.”(모두). “젊을 때는 공부가 중요해요. 가난하기는 다 가난했으니 그렇다 치지만 못 배운 한이 제일 큽디다. 면사무소에서 문서가 와도 읽을 수가 없었어요.”(모두)

-무엇을 할 때 인생이 재미있다고 느끼시나요?

▶“아들딸들이 와서 외식할 때.”(이옥자), “객지에 나간 아이들이 찾아오거나 저거끼리라도 오손도손 잘 지낼 때.”(장옥금·75), “이젠 가난도 없고 풍족해서 늘 좋심다. 8년째 배우는 한글 공부도 좋아요.”(정두이), “마을회관이 있어서 너무 좋아요. 한글과 요가를 매일 배울 수 있고, 같이 계신 할머니들의 아들딸들이 먹을 거를 안 끊기게 갔다 줍니다.”(이필선·87), “집에도 심심치 않게 생활지도사들이 와서 안부를 물어 줍니다. 보건소도 2~3달에 한 번씩은 갑니다. 칠곡군 좋아요. 가을에 누가 단풍 구경이나 시켜주면 좋겠어요.(시끌벅적)”(모두)



인생의 가치에 있어 연령이 주는 효과가 이렇게 강력하다. 삼모작기에는 과도한 욕망과 원망심이 사라진다. 그 대신 사랑 배움 보호 감사를 챙기는 지혜와 부드러움이 스며든다.



-할머님들, 부산 세계 엑스포 응원 랩 한 번 더 해주세요.

▶(랩) “대구포 아니! 황태포 아니! 엑스포는 부산엑스포! 엑스포는 부산엑스포!~~”



젊은 래퍼들의 옷과 모자를 하고서 래퍼들의 동작을 그대로 하시는 할매 걸그룹의 에너지는 장난이 아니었다. 가사가 귀에 착착 달라붙었다. 칠곡군의 ‘수니와 칠공주’는 한국이 만드는 하나의 현상이다. 역사를 살펴보면 한반도에 이토록 평화와 번영이 지속된 적은 없었다. 전쟁의 상흔과 가난을 극복하고 선진화 글로벌화하는 한국의 ‘K 현상’이다. 필자는 이 현상을 보면서 칠곡군이 하는 고령자 복지지원의 소중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의 한글 문해 교육이 튼실하지 않았다면 어찌 할매시인 할매영화 할매글꼴이 탄생할 수 있었겠는가? 또한 한글 문해 강사의 진심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극한 세대공감이었다. 일각에 사회 통합을 걱정하게 하는 일이 있을지라도 우리 사회에는 이렇게 세대 협력을 묵묵히 수행하는 이들이 있다. 성공인생이란 인생삼모작까지 끝이 좋아야 하는 법. 칠곡군의 주체들은 한결같이 ‘K 현상’의 훌륭한 롤 모델이 되고 있다. 할매들 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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