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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기관사 될 날만 손꼽았던 형, 귀국 2주 앞두고 전사”

UN공원에 잠든 용사들…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2 <15> 영국군 故 패트릭 데이비드 존스

  • 김진룡 기자 jryongk@kookje.co.kr
  •  |   입력 : 2023-10-15 19:06:21
  •  |   본지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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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세 때 철도회사 입사해 근무
- 한국전쟁 발발 2개월 전 입대
- 18개월이던 복무기간 2년으로
- 최전선서 싸우다 스무살에 숨져

- 처음 전보엔 실종 상태라 적혀
- 母 평생 생환 희망 품고 사셨죠
- 유엔공원 안장된 형 보러가고파
- 그의 희생 덕에 난 축복 받은 삶

“만약 제가 형보다 먼저 태어났다면, 한국에 묻힌 것은 제가 됐을 겁니다. 그렇다면 형은 지금도 삶을 즐기며 살아갔을 텐데요.”
영국 우스터셔의 비샴튼에서 만난 에릭 윌리엄 존스(88)는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의 혈기 왕성한 목소리로 형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의 형은 영국 왕립 슈롭셔 경보병 연대 소속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해 전사한 패트릭 데이비드 존스다.

“형은 저보다 3살이 많았고, 저를 아껴주었습니다. 어머니는 맏아들인 형을 매우 사랑했죠. 어머니는 형의 전사를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형도 어쩌면 전쟁터에서 마지막 순간, 어머니를 찾았던 게 아닐지 ….”

■기관사를 꿈꾸던 형

패트릭 데이비드 존스(가운데 동그라미)가 홍콩에서 근무할 때 동료들과 함께 찍은 사진. 에릭 윌리엄 존스 제공
패트릭은 1931년 12월 21일 영국 슈롭셔의 슈루즈베리에서 네 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11세 때 건축 공부를 하기 위해 기술 학교에 들어갔지만, 15세 되던 해 기차 기관사가 되려고 그만뒀다. 슈루즈베리에서 그레이트 웨스턴 철도(Great Western Railway)에 입사한 그는 증기 기관차 청소부터 시작했다.

부지런했던 그는 어린 나이에도 승진했고, 기차 기관실에서 석탄을 날라 불을 지피는 ‘파이어 맨’이 됐다. 18세 때는 모든 종류의 열차 기관실에서 일할 수 있는 ‘탑 링크’ 파이어 맨까지 올라섰다. 기관사가 될 날도 멀지 않았다.

“형은 자기 일을 사랑했고, 기관사가 되길 원했습니다. 엄청난 양의 석탄을 옮겨서인지 근육이 우람했어요.”

패트릭의 꿈을 가로막는 게 있었다면 국방의 의무였다. 1950년대 영국에서는 만 18세가 된 모든 청년은 의무적으로 복무해야 했다. 그는 1950년 4월 27일 입대했다. 그해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불과 2개월 전이었다.

당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라 의무 복무자는 한국으로 파병되지 않는다고 영국 정부가 발표했다. 파병 갈 수 있는 군인은 직업군인 중 자발적으로 신청한 인원뿐이었다. 영국 정부가 전후 고통 받는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패트릭은 이미 한국으로 향하는 배에 탑승했다. 영국 정부 발표 이전 입대했기 때문이었다. 1950년 10월 4일 그는 영국을 떠나 홍콩으로 향했다. 한 달 만에 도착한 홍콩에서 6개월 정도 복무했다. 1951년 5월 8일 홍콩을 떠나 닷새 만에 한국에 도착했다.

■복무기간 늘어나지 않았다면

패트릭 데이비드 존스의 군 복무 시절 사진. 에릭 윌리엄 존스 제공
그는 보병으로 최전선에 배치돼 전투에 나섰다. 당시 의무 복무 기간은 18개월이었다. 애초 1951년 10월 전역해야 했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시작되자 영국 정부는 의무 복무 기간을 2년으로 연장했다. 4개월 더 늘어난 기간 때문에 패트릭도 여전히 한국의 전장에 머물렀다.

패트릭은 먼 타국 땅에서 직업 군인이었던 사촌도 만났다. 그의 사촌은 탱크 부대 소속이었다. 1951년 4월 벌어진 임진강 전투에서 영국 글로스터 부대 구출 작전에도 투입됐다. 당시 인해전술을 쓴 중공군이 사촌이 탄 탱크를 에워싸 아찔했다.

“사촌은 직업 군인이라 여러 전쟁터를 많이 다녔습니다. 자신이 겪은 전쟁 중 한국전쟁이 최악이라고 저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래도 그는 한국전쟁 초기부터 참전해 마지막까지 무사히 전쟁을 치르고 귀환했죠.”

사촌과 달리 패트릭의 운명은 엇갈렸다. 1951년 11월 17일 경기도 연천군 고왕산 인근에서 패트릭의 부대는 적군의 포격을 막기 위해 작전을 수행 중이었다. 그는 불과 스무 살의 나이에, 이곳에서 전사했다.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됐다.

“형의 마지막 순간은 아직 모릅니다. 형의 마지막을 알고 싶은 게 제 일생의 소원입니다. 다만 적과 싸우다 즉사했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형의 마지막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데, 형이 마지막 순간을 알았을까요.”

■생환의 희망

에릭 윌리엄 존스 씨
패트릭의 소식은 얼마 후 고향에 닿았다. “당시 제가 구독하던 신문이 있었는데, 형이 소속된 부대가 적군과 치열하게 싸운다는 소식을 봤습니다. 저는 이를 보고 형이 거기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전보를 배달하는 아이가 집 문을 두드렸고, 저는 그 순간 형의 소식임을 직감했습니다. 이를 어머니에게 전달했는데, 어머니는 전보에 담긴 소식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습니다.”

전보에는 패트릭이 전사가 아닌 실종이라고 적혀 있었다. 게다가 전방에 있던 패트릭의 부대가 후방의 다른 부대와 교체하기 불과 2주를 앞둔 시점이었다. 부대가 교체되면 패트릭은 영국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에릭 윌리엄 존스(왼쪽)와 패트릭 데이비드 존스가 어린 시절 함께 찍은 사진. 에릭 윌리엄 존스 제공
“외삼촌이자 어머니의 막내동생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혀 5년 만에 풀려난 적이 있었어요. 어머니는 아들의 전사가 확실하지 않아 포로로 잡혀갔다고 여겼습니다. 동생이 겪은 일을 아들도 겪는다고 생각하셨죠.”

패트릭의 어머니는 아들이 포로로 잡혔지만, 집으로 돌아온다는 희망을 품었다. 패트릭의 부대 관계자도 실종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몇 개월 뒤 전사 소식이 왔는데, 이마저도 공식적이지 않았다. “당시 한 동네 살던 형과 같은 부대원이 전쟁에서 돌아와 패트릭의 시신을 찾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동안 실종 상태였는지 알 수 없어요.”

몇 년이 흘러 패트릭이 전투 중 사망했다는 사실이 공식적으로 확정됐다. 다만 가족에게 패트릭의 전사를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 이런 연유로 패트릭의 어머니는 아들이 살아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 “어머니는 생전에 이런 형과 관련한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셨어요. 죽을 때까지 아들을 잃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유엔기념공원 가고 싶은데…

패트릭 데이비드 존스가 한국전쟁 당시 영국의 고향 집에 보낸 편지들. 김태훈 PD
에릭은 패트릭이 살아 고향으로 돌아왔다면 틀림없이 기관사가 됐을 것으로 확신했다. “형은 분명 그레이트 웨스턴 철도로 돌아가 기관사가 됐을 것입니다. 여자친구였던 앤 푸이커와 결혼도 했을 거예요. 가족은 형이 실종 상태일 때 앤과 연락을 주고받았습니다. 그러나 형의 전사가 확실해진 뒤 그렇지 못했어요. 앤도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하니까요.”

할아버지 농장에서 함께 했던 추억도 떠올렸다. “할아버지 농장은 작았지만, 소와 돼지 닭 등을 키웠어요. 여러 곡물과 채소도 있었죠. 특히 완두콩으로 유명했습니다. 할아버지가 수확한 완두콩을 작은 가게를 차려 놓고 팔기도 했어요. 오죽했으면 동네에서 할아버지 별명이 완두콩이었어요.”

패트릭이 안장된 유엔기념공원 방문 계획을 묻자 아쉬운 마음을 털어놓았다. “제가 장거리 비행에 자신이 없어요. 건강하긴 한데 한 자세로 오래 있으면 힘듭니다. 그래도 저의 누나와 조카가 형의 묘지를 찾았고, 방문 영상을 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어요. 우리 가족이 한국을 찾았을 때 형에 대한 한국인의 자세나 마음가짐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좋았습니다.”

형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잊지 않았다. “형의 희생은 절대 헛되지 않았습니다. 형의 희생으로 많은 것을 얻은 분들이 항상 형에게 감사를 표하고 있으니까요. 제 인생을 돌이켜보면 전쟁에 참전하지도 않았고 사회적으로 교육 의료 이런 것을 공짜로 누릴 수도 있었습니다. 1950년대에는 일자리가 많기도 했어요. 이런 걸 생각해 보면 저와 형의 자리가 바뀌었다면, 제가 더 빨리 태어났다면, 제가 이런 축복을 누리지 못했을 겁니다.”

영국=김진룡 기자 jryongk@kookje.co.kr

영상=김태훈 PD

※제작지원 : BNK금융그룹

※취재협조 : 재한유엔기념공원관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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